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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꿈꿔본다
    세월은 끊임이 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시간 가운데 일, 주, 월, 년이라는 각각의 시점을 두고 그 기간의 일을 매듭짓고 새로 시작하게 된다. 지금은 새로운 한해에 할 일을 계획하고 시작하는 시기이다. 개인이든 조직체이든 마찬가지다. 서산시는 지난해 말 올해(2024년)를 빛낸 10대 성과로 초록 광장·예천지구 공영주차장 조성사업 추진, 제3기 수소도시 선정, 충청권 최초로 서산을 모항으로 하는 국제크루즈선 취항, 제76회 충남도민체육대회 성공 개최 등을 선정 발표했다. 올해에는 서산공항과 시 신청사 건립 기본 및 실시설계 추진, 대산과 성연 산업단지 조성, 문화예술타운 조성, 수석지구 등 도시개발사업, 해미국제성지 순례 방문자센터 조성, 대산~당진 고속도로 건설 추진, 아시아 조류박람회 개최 등으로 새로운 도약과 성과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서산은 전국의 어느 시군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런 눈부신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계획한 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하여 ‘5천만이 살고 싶은 서산’으로의 기반을 닦는 데까지 지속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5년 단위 구상을 전제로 2030년 제111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유치를 제안하고 싶다. 1920년 처음 개최한 전국체전은 국내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서 1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민족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대규모 행사이다 보니 1994년 이전에는 주로 대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중소도시에서도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1995년 제76회 대회는 경북 포항시를 주 개최지로 하고 도내 여러 곳으로 나눠 열렸다. 충남에서는 2001년 천안시에서, 2016년 아산시에서 개최한 바 있다. 2006년에는 인구가 14만여 명에 지나지 않는 경북 김천시에서 열렸다. 김천시의 전례를 볼 때 시세나 다양한 지역 성장 인프라를 갖춘 서산이 5년 여 시간을 갖고 준비한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국체전이 대체로 시·도를 돌아가며 개최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2030년에 충남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서산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때는 고속도로망도 확충되고 항공망도 갖추게 됨으로써 육·해·공 교통망을 고루 아우르는 도시가 될 것이다. 여기에 부춘산을 배후로 둔 신청사도 멋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니 자축의 의미도 크다고 본다. 전국체전을 치르게 된다면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각종 체육 시설 확충과 도시 기반 정비를 촉진할 수 있다. 시민들의 스포츠 활동을 북돋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지역 이미지 제고와 문화․관광자원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접객업소 시설 개선, 서비스 향상, 서산의 특산물을 중심으로 만든 독특한 음식으로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 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형 행사를 치르기 위하여 공무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마음껏 발휘하여 행정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열망을 모아 선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뜻있는 시민들에게 자원봉사 기회를 줌으로써 지역사회 참여와 보람 있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도민체육대회를 비롯하여 몇 차례 대규모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추진하면 여느 대회 못지않게 치를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전국체전은 개최 지역에서 전 종목 경기를 치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경기장이나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항상 유효하다. 스포츠만큼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분야는 흔치 않다. 단순히 체육 행사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갖는 의미가 크다. 국위 선양과 국제적 인식을 높이는데도 한 몫 한다. 86년 아시아경기대회, 88년 하계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경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를 증명한다. 여러 나라가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하여 굵직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기 위하여 국력을 기울여 발 벗고 나서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서울시가 2036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20여 년 전, 이탈리아에 간 적이 있다. 이 때 사람들이 ‘코리아’를 잘 알지 못하기에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라고 하니 엄지 척 하며 “오! 코리아”라고 알아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동안 서산시가 하드웨어적인 발전과 문화, 예술, 체육 분야에서 쌓은 성과를 집약하여 이제 전국체전에 관심을 두어도 좋을 것이다. ‘2030 프로젝트 제111회 전국체전 유치’는 불가능하지 않고 못 할 일도 아니다. ‘헛된 꿈’은 더욱 아니라고 본다. 50개에 이르는 경기 종목에 3만여 명의 임원과선수단에 더하여 수많은 응원단과 관람객이 찾아온다면 아마 서산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가 중심이 되고 각 계가 참여하는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거시적인 노력과 활동을 새해의 화두로 삼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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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7
  • 새해인사
    새해가 되면 메일과 휴대 전화에 카톡과 문자가 넘쳐납니다. 멋진 동영상도 보내고 장문의 글도 받습니다. 받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처 답을 못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잊지 않고 보내주신 한분 한분의 성의와 사랑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사의 무게감이 떨어짐을 느낍니다. 마치 으레 차려주는 밥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디지털시대 문명이 주는 편의주의 앞에 진심의 모습이 덜하기 때문일 듯싶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연말에는 우편물이 넘쳐났습니다. 성탄절 카드와 연하장 때문이었습니다. 문방구에는 예쁜 카드가 줄줄이 걸려있고 연하장도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마음에 드는 카드를 구하기 위해 문방구를 순회하기도 했습니다. 카드는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봉투를 열면 캐럴이 흘러나오는 카드도 있었습니다. 카드를 보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정성 들여 손수 글씨를 써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성이 보였고 온기가 전해져왔습니다. 요즘의 문자나 카톡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성이 흠뻑 담긴 새해 인사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카드나 연하장은 없애지 않고 일 년 내내 보낸 이의 마음을 곁에 두기도 했습니다. 옛 생각이 나서 성탄절 카드나 연하장을 찾아 문방구를 가보았으나 주인조차도 그걸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 연하장은 아예 없었고 카드가 있기는 했으나 우편 규격에도 맞지 않는 소품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아내나 이성 친구끼리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300원을 주고 한 장 샀습니다. 예쁜 장식의 조그만 카드였습니다. 아내에게 몇 자 적어 내밀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포기하고 대신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그리움을 담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자그만 연두색 종이에 어머니라고 쓰자 눈물이 낫습니다. 휴지를 찾고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올해 94세 되신 김낙중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새해 인사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땅속으로 숨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지만, 정말 ‘이럴 수는 없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마음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구스러워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나뿐이 아니라 선생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분들 스무 명을 적어놓고 이렇게 차곡차곡 전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인사는 아무나 하면 되는 게지 순서가 무슨 대수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셨으니 94세까지 장수하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탄절 카드나 연하장은 아날로그 시대의 방식이고 산물이라면 현재는 디지털시대에는 카톡이나 문자로 인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고 편리한 방법이라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사에 정성과 마음이 없다면 그건 허례일 뿐입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스마트 폰이라는 똑같은 기계로 문자보다는 한 통의 목소리가 훨씬 더 정다움을 느낀다는 걸. 집에 돌아와 가까운 분들 이름을 적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열 명이 넘어가니 전화를 드릴 만한 분들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통화했던 분도 계셨고 이미 문자를 드린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음성으로 다시 인사드려야겠다고 억지로 스무 명을 채웠습니다. 실제 전화해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통화 중이거나 응답하지 않으신 분도 많았습니다. 먼저 병원에 계신 분들께 드렸습니다. 한 결같이 고마워하셨습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여러 날 되었지만, 아직도 여러분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통화를 할 계획입니다. 전화를 드리다가 문득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과 도움을 받고 살았나 싶었습니다. 형편 되는대로 몇 분을 모시고 그런 자리를 가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의를 표시했다는 마음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오늘은 또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선배님을 초청했는데 오히려 선배님께 신세를 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계셨다고 하시면서 굳이 거금을 내셨습니다.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문자로, 카톡으로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은 인사보다 노 선생님 덕분으로 진짜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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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7
  • “할아버지! 제가 신문에 나왔어요”
    을사년 새해 첫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가 신문을 가지고 왔다. “할아버지! 신문에 제가 나왔어요.” 무척 기쁘고 자랑스런 모습이었다. 나도 무척 기뻤다. 문득 60여 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 생각났다. H일보 소년 기자로 나의 글이 활자화되었을 때 기분이었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필자와 신문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중고교 시절 신문을 즐겨 읽다 보니 글짓기와 웅변, 연설을 좋아했다. 글과 말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바로 읽기와 듣기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양분이 바로 신문의 덕분이다. 신문의 은혜라는 생각이다. 신문과 두 번째 인연은 19살 때다. 제11회 신문의 날 기념 표어 모집에 ‘전진하는 사회의 지혜로운 안내자’로 응모하여 전국 1등을 했다. H일보에 취직할 기회를 얻기도 했었다. 오는 4월 7일이 제69회 신문의 날이니 58년 전 이야기이다. 세 번째 인연은 1990년 대전일보 기자가 된 것이다. 그해 정부의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 설치계획 입체 보도로 정부의 밀실 행정의 부당성을 지적, 제3회 이달의 기자상에 이어 기자의 최고 영예인 제23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는 서산타임즈와 인연이다. 창간부터 글을 썼다. 지역인사를 찾아 ‘조규선이 만난사람’을 100여회 연재했다. 이 신문에는 우리지역의 새로운 소식들이 담겨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있다. 이렇게 신문은 내 삶이었다. 이런 연유인지 매일 아침 신문을 즐겨 읽는다. 새해 첫날에는 각종 신문을 구해 읽는 것이 습관이다. 그날 신문사설과 각계각층 인사들의 신년사,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시대의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새해 첫날 신문을 구하기 위해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신문 가판대를 찾았다. 수년간 운영하던 가판대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가게를 운영하는 여사장님의 설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을 오갈 때 가판대 신문을 구입해서 버스에서 신문을 읽곤 했는데 이젠 신문을 구할 수 없게 됐다. 시대의 변화상이다. 수소문하여 각 종 신문을 배달하는 센터를 찾아 구입했다. 신문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있다. 지식, 정보, 지혜도 담겨 있다. 또한 신문은 이미지 메이킹의 수단이다. 나를 알게 하고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 또한 자기를 홍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의 출세는 남이 알아주는 사람이 됐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행복은 남으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 큰 걱정이다. 나라가 무척 시끄럽다. 대통령 탄핵 등 국민이 불안하다. 그러나 결국 시민의 생각이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단단히 마음먹어야 한다. 똑똑하고 현명해져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시민이 알아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국가의 역할, 누가 어떻게 통치하고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도 시민의 생각이 만든다. 지식인들의 사상과 철학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통이 없고 불안과 공포가 없는 행복한 사회를 바란다. 그런 세상을 신문을 통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새해에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우리 사회는 밝고 풍요롭게 될 것이다. 새해 첫날 만난 손자가 예쁘다. 그러면서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사랑받고 행복하게, 꿈을 마음껏 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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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7
  • 대한민국의 을사년은?
    격동의 2024년이 지나고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도전과 변화를 겪었고,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정치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고, 경제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국내 소비 위축,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는 저출산과 고령화, 빈부격차, 세대 갈등 등 오랜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대로 떠안았다. 문화는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긴 했지만, 그 외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2024년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은 해였고, 우리는 그로 인해 많은 실망과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런 격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서로 협력하며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가려 노력했다. 이제 을사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과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계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으며, 미중 간의 갈등은 기술 경쟁과 경제적 1,000일을 넘기며 장기화 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은 경제와 안보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적 외교가 절실하다.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외교 노선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국제 무역의 변화 속에서 수출 주도형 경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외교적 지혜가 요구된다. 우리나라 국방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과 핵 위협은 여전히 큰 위협으로 자리하고 있다. 을사년에는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안보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사이버 보안, 우주 기술 등 미래전 대비 역량을 강화하여 국방력을 첨단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국방이 단순히 군사력 강화에 그치지 않고, 국민 안전과 평화 유지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외 경제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많은 국민이 여전히 경제적 불안을 느끼고 있다. 청년 실업률과 가계 부채 문제는 해결이 시급하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 그리고 지역 사회가 힘을 모아 경제 구조를 혁신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특히 지방 경제의 활성화와 농촌의 재도약은 대한민국 전체 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경제는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제이며, 그 중심에는 국민의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포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빈부격차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큰 과제로 남아 있으며, 세대 간 갈등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이제 단순히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책적 접근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를 포용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을 개선하며, 젊은 세대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더불어 노년층이 사회에서 역할을 찾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자산이다. 지난해 우리는 K-팝,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전통과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문화는 단순히 소비되는 콘텐츠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특히 지역 문화를 발굴하고 이를 활성화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방 축제와 전통 문화가 국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모든 국민이 문화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항상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외교 모든 분야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 때, 을사년은 진정한 희망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노력과 열정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밝았다. 모두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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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7
  • 동지팥죽
    지난 12월 21일은 동짓날이었습니다. 바람도 불고 눈발도 날렸습니다. 이제 겨울이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로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입니다. 동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팥죽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동짓날에는 의례 팥죽을 먹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유래를 찾아보니 중국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듯합니다. 중국에 ‘공공씨’가 망나니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귀신을 쫒기 위해 아들이 평소 팥을 두려워한 것을 생각하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전염병 귀신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팥죽을 쑤면 제일 먼저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방과 헛간 또는 장독대 같은 곳에 한 그릇씩 갖다 놓고 ‘고수레’라고 하면서 대문이나 벽에 죽을 뿌렸다고 합니다. 악귀를 쫓는 동시에 아마도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한 짐승들에 대한 배려라고 합니다. 문득,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월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전날 밤,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맞아 가정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신이 그걸 보고 넘어가 장자의 죽음을 피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를 기념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을 명절로 지킵니다. 양의 피와 붉은 팥죽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은 없을까?(극동으로 이주하며 아득한 조상들의 유월절 풍속이 팥죽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라는 기독교인다운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시장에 나갈 때까지 동짓날인 걸 몰랐습니다. 재래시장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쳐다봤더니 ‘원조 팥죽’이란 글씨가 보였습니다. 비로소 동짓날인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팥죽이 먹고 싶었습니다. 줄을 선 사람들은 팥죽을 사 들고 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탁자 하나 놓여 있는 좁은 식당 안에는 남자 손님 두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 곁에 앉았습니다. 아주머니는 팥죽을 주면서 부족하면 더 달라고 했습니다. 훈훈한 인심이 난로처럼 따사로웠습니다. 옛날 시골 인심이 이러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 손님은 직장 동료인 듯했습니다. 옛날 시세 풍속을 더듬어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일인데도 지금은 전설처럼 까마득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팥죽을 먹다가 문득 어느 장로님 생각이 났습니다. 공교롭게도 구역예배 드리는 날이 동짓날이었습니다. 좀처럼 예배를 드리지 않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구역장인 장로님은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사달은 예배를 드린 후에 나온 팥죽이었습니다. 팥죽을 본 장로님이 “난 죽을 좋아하지 않으니 밥이 있으면 밥을 달라.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인 집사님이 “우리 집엔 밥도 없고 라면도 없으니 그냥 팥죽을 드시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감정만 상한 채 팥죽을 놔두고 헤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권사님은 ‘둘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필자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전에 팥죽을 먹고 체한 후 팥죽을 보기만 해도 싫다고 했습니다. 팥죽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집사님은 마침 동짓날이니 별미를 대접해야겠다며 정성스럽게 팥죽을 쑤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싫어도 정성 다해 내왔으니 장로님은 그저 드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면서도, 집사님은 아무리 정성 들여 쑤었다 해도 굳이 싫다는 걸 억지로 먹으라는 처사는 옳지 못하다고 권사님은 양비론을 내세웠습니다. 문득 황희 정승 생각이 나서 ‘장로님도 맞고, 집사님도 맞고, 권사님 말도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그의 소설 <사랑의 파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는 나의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 세계 전체는 내게로 귀착되고 있었다. 지구의 무게 중심은 나를 따라 이동할 터였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을 흔히 만납니다. 마치 세상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의 쇠락은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작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존중하는 사회,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고 산다면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을 퍼주며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라는 넉넉한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이 팥죽만큼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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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5
  • 잘못된 의료 개혁 빨리 고쳐야 한다
    정부는 잘못된 의료 개혁을 고쳐야 한다. 피해는 아무 잘못 없는 국민들이 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급한 게 죽고사는 문제이다. 한국은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사들이 필수의료 의료를 안 하려는 게 문제다. 이게 처단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가 부족 하다면 늘려야 한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필수의료가 부족한 것은 의사 수의 부족과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필수의료는 의대 입학 정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대 목동 병원 교수들 구속 시키면서 죽였다. 의료수가로 또 한 번 구속하면서 두 번 죽인 셈이다. 의대 정원 늘리면 의사야 늘어나겠지만 필수의료 인력이 늘 것이라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이다. 의대 정원이 훨씬 적었던 30년 전에도 내과와 소아과는 서로 하려하고 필수의료가 이렇지는 않았다. 정부의 ‘의료개혁’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응급실 찾아 뺑뺑이는 기본이다. 초과사망자, 즉 이런 일이 없었다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분의 수가 2천명을 넘은지 오래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더 무너져서 복구가 힘든 지경까지 왔다. 내년도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은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인턴, 공중보건의, 군의관 공급도 중단되었다. 몇 조원의 국가예산을 당겨썼지만, 의료개혁은 커녕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만 의료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다. 때를 놓쳐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면, 복구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OECD평균보다 의사 수 적다고, 맞는 말이다.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OECD에서 꼴찌에 가깝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지만 병원접근도 당일 전문의 진료 가능 한 것도 의사의 근무량이 많아서 그렇다. 의사 근무 강도는 OECD 추종을 불허한다. 의사 당 환자를 가장 많이 본다. 대한민국은 의사가 부족 한 게 아니라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총각 장가 못 간다고 애 많이 낳으면 해결 되나? 농촌이 살기 좋아야 해결 된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다 도시로 간다. 한국에 제일 많은 게 편의점, 공인중계사무실, 병의원이라고 한다. 필수의료과 해서는 위험하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성형 피부 미용으로 진료 하니 부족 한 거다. 그러니 의대 증원보다 필수과 해도 법적으로 보호 받고 먹고 살 수 있게 수가만 조정하면 된다. 아무리 의대를 늘려 봐도 먹고 살 수 없고 처벌 받는데 누가 필수의료를 할 것인가? 한국을 의료천국이라고 한다. 무료, 250원, 1500원 본인 부담금으로는 빵 집 가는 것보다 병의원 가는 게 더 쉽다. 건보재정이 파탄 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의료 이용에 대한 유인동기가 된다. 적정 수준의 본인부담이 존재해야 의료 시장의 규모 확대를 제어할 수 있다. 고령화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걸 고쳐야지 의대 증원 불 난데 기름 붙는 짓이다. 백번 양보해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래도 입시가 불과 7~8개월 남은 상황에서 기존발표를 뒤엎고 의대 정원을 50% 증원하는 것은 ‘광적인 행정’이다. 고등교육법 34조의5는 ‘입학연도의 2년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6개월 전까지’입학전형에 관한 기본사항을 수립·공포하여야 한다. 이는 수험생의 예측가능성과 입시의 안정성을 위해서다. 이에 저항하는 전공의, 의대생, 의사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은 폭력적 ‘의료에 계엄 선포’이다.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강화방안, 의사 과학자 양성방안, 그리고 합리적인 의대 증원 규모 등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여야는 절박한 각오로 당장 수습에 나서야 한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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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4-12-25
  • 방사선의 이해와 오해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CT촬영을 여러 번 했는데 몸에 영향이 없는냐는 등 X선을 이용한 영상검사의 안전성과 원전 등 방사선 관련 사회이슈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적잖게 당황하게 된다. 사실 방사선 이론지식은 전문의 과정 중에 습득한 지식뿐이고 지금은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칼럼을 요청받아 이에 대해 상식수준의 도움이 되고자 알아보았고 방사선의 이해와 오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방사선이란 발생된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즉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입자나 파동을 말하며 빛, 소리, 열, X선 등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물질(공기 중의 라돈, 음식물, 땅, 바다, 물 등)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긴 방사선과 우주로부터 나오는 방사선 등 먼 옛날부터 있었던 자연방사선과 의료, 핵발전 등 인위적으로 필요에 따라서 발생시킨 인공방사선이 있다. 인공방사선은 의료용 방사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외 TV, 형광등,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인공방사선은 전체의 3~4%를 차지한다. 인체에는 피폭량이 중요한데, 단위는 발생된 방사선 중 인체에 흡수된 에너지의 양인 흡수선량(absorbed dose: 1rads=1cGy 방사선검사에서 검사선량을 말할 때)과 인체에 방사선이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방사선감수성이 다른 각각의 인체부위가 받는 영향을 고려한 피폭선량을 말하는 유효선량(effective dose, 1Sv=100rem)으로 표기한다. Sv(시버트)는 스웨덴 방사선물리학자 막시밀리안 시버트에서 유래한다. 일반인의 방사선 선량한도는 ALARA의 개념에 준하여 5년간 평균하여 연 1mSv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하였으나, 단일한 1년에 대하여 1mSV를 넘는 값은 인정될 수 있다. (단,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경우는 예외로 연간 50mSv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5년간 100mSv) 하지만, 방사선에 의한 진단이나 치료목적의 의료 상 피폭(medical exposure)은 선량한도의 적용에서 제외된다. 의료목적으로 방사선의 사용이 최선이며 이는 피폭으로 인한 이득을 환자자신이 돌려받기 때문이다. 일례로 항암치료의 한 형태로 방사선 치료를 할 경우는 6000mSv까지 의도적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위에서 기술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1977년 확립한 개념적 기준으로 뜻은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피폭선량을 최소한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일상에서 자연 방사선에는 노출이 되며 우리나라는 연간 3mSv정도는 된다. 이는 단순흉부촬영 대략 20장 정도를 해마다 찍는 것과 같다. (흉부촬영 1회의 유효선량은 0.1~0.3mSv정도이다.) 다른 생활방사선의 예를 들면, 브라질의 가라바리시 주민의 경우 고도가 높아서 연간 10mSV정도(복부CT 1회선량) 노출된다. 북유럽은 7mSv, 뉴욕을 비행기로 왕복하는 경우 흉부X선 1회 촬영분은 되고 땅에서 0.4, 음식물에서 0.35, 공기 중에서 1.3mSv정도는 된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으로 공포 마케팅이 됐던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방사선량 목표치는 연간 0.05mSv이며 실제 측정값은 0.01mSv미만이다. 물, 공기, 음식물 섭취에서 노출되는 방사선보다도 훨씬 적은 값인 것이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1년 동안 방사선 작업 시 4.4mSv정도 노출되는데 북유럽에 그냥 사는 것 보다 적은수치이다. 이점은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선 유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만하다. 흉부방사선 1회가 담배 1.5개피의 흡연으로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정도로 거의 미미한 확률에 비해 흉부방사선 1회의 의학적 이득이 얼마나 비교되지 않을 만큼 이득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불가능한 수치(연간 1mSv)를 넘지 말아야 할 기준수치로 정한 것은 개념적으로 방사선은 유해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노출을 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설명하자면, 방사선의 노출선량과 장해발생 관계에서의 확정적(결정적)영향 때문인데, 이는 짧은 기간 급성으로 대량피폭의 경우에 일정량 이상이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증상이 있고, 그 심각성이 노출선량에 비례하며 발단선량(threshold dose) 값이 있어서 이를 넘으면 즉시 증상이 나타나므로 선량한도를 설정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방사선 피폭량에 따른 신체적 영향이 갑자기 0.5 Sv(Gy)이상노출이면 백혈구감소, 수정체혼탁, 0.15에서는 일시적불임(남성), 1(1000mGy)이면 아동의 갑상선장애, 10이상이면 궤양 등이 생기는 구체적인 발단 선량값을 가진다. 또 확률적 영향이라는 특징도 있는데, 이는 만성적 저선량에 노출될 경우를 말하며, 병이 생길수도 안 생길수도 있고, 발생확률이 선량에 비례는 하나 심각성은 선량에 무관하며 저선량에서도 발단 선량값 없이 장해발생확률이 다른 질병의 발생률과 비교 시 무시할 수준이지만10mSv 노출 시 자손의 유전적 영향0.01%, 일반적 자연장애(10%), 중증장애(3%)에 의한 유전적 영향이 있기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방사선) 피폭최소화(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라는 추상적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지난 세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방사선 노출사건과 이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 중인데, 200mSv 이하에서는 유효선량과 질병발생과의 상관관계가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체르노빌원자로사고에서 유효선량 1000mSv넘어야 혈액암 발생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연구는 있다. 역사적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피해자의 약75%가 5-200mSv의 피폭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심각한 후유증은 아직은 없으나 그 생존자들에 대한 추적검사가 진행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지대에 살아서 생활 방사선노출이 많은 지역이나 우라늄광산 지역거주민 등 저선량의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암 발생이 오히려 적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방사선을 가급적 받지 않도록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와 오남용방지 노력 또한 반드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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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12-25
  • 양유정 고목, 천 살 넘게 무성하기를…
    “양유정님 요?” “네, 양유정입니다. 그런데…” “아! 예. 목소리는 남자분이신데, 이름은 여자분 같아서…” “그냥 그 이름으로 해주세요.” 식당에 예약 전화를 할 때 이름을 ‘양유정’이라고 하다 보니 간혹 일어나는 장면이다. 어릴 적 뒹굴고 뛰어 놀았던 양유정의 추억을 지금도, 아니 잠시도 놓지 못하는 필자의 습관이다. 사람은 저마다 잊지 못할 사연이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양유정이 그 하나다.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하다. 얼른 그 시절로 돌아간다. 책상 앞에는 단풍으로 물든 양유정 정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양유정 옆에 우리 집이 있었다. 몇 십 발짝만 걸어가면 양유정이 맞아주었다. 집이나 학교에 있을 때를 빼면 거의 양유정에서 살았다. 하니 눈앞에 선하다. 곳곳이 손금 보듯 환하다. 학교에 오갈 때도, 구멍가게에 갈 때도 그 옆을 지나야 했다. 양유정 입구에 있는 방앗간 주인집 앞에서 송아지만 한 ‘항구(黃狗를 그리 불렀다)’가 가끔 ‘커엉’하며 달려들 때는 오금을 저리면서도 지나곤 했다. 여름에는 육각형 정자에 둘러앉아 부르는 어른들의 시조창이 끊길 듯 이어질 듯 바람 따라 울려 퍼지곤 했다. 바둑, 장기 알 놓는 소리가 크게 들릴 때는 승부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을까? 아이들은 감히 정자를 넘보지 못했다. 어른들이 없으면 살금살금 올라가 보는 것으로 호기심을 달랬다. 선거 때는 후보자들의 열변이 토해지기도 했다. 3.1절, 8.15광복절 기념행사와 야외 집회도 열렸다. 운동 경기가 열리는 날은 응원 꾼, 구경꾼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의 놀이마당이었다. 자치기, 땅따먹기, 술래잡기, 병정놀이를 하면서 해지는 줄 몰랐고 나무에 오를 때는 다람쥐가 되었다. 옆에 있는 작은 방죽에서는 잠자리를 잡느라고 발이 물에 빠져도 개의치 않았다. 가을이 깊을 때 수북이 쌓인 낙엽을 긁어모으고 그 속에 숨기도 했다. 겨울철 옆에 흐르는 중앙천이 얼어붙으면 썰매장이 되었고, 얼음이 녹을 무렵에는 아주머니들의 빨랫방망이소리가 메아리쳤다. 청년이 되어서는 배드민턴을 쳤다. 지금은 복개되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 내 건너에도 몇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위용을 뽐냈다. 필자는 한가운데서 기품 있게 서있는 팽나무를 가장 좋아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 하나 꺾지 못했다. 발각되면 지킴이 할아버지 ‘한의사(韓理事를 익숙한 대로 의사라고 칭했다)’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올빼미가 깃을 쉬던 고목은 세월과 폭풍우를 견디지 못했다. 몇 그루는 가지가 부러지고 결국은 베이고 말았다. 짓궂은 사람이 밑동 속이 빈 곳에 불을 지르기도 했으니 하늘에서 내리는 벌을 받지는 않았을까? 이제 방죽과 미나리꽝은 메워지고 하천은 복개되어 정취를 앗아갔다.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모임 공간이 늘어나고 놀이문화가 발달하면서 양유정은 관심에서 멀어갔다. 근래에 들어 양유정을 재조명하는 축제와 행사가 줄이어 열리고 있다. 새잎이 푸름을 더하는 5월에는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켜온 고목의 덕을 기리고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8월에는 ‘스산 양유정, 온 동네가 들썩들썩’ 축제가 열린다. 프리마켓, 바리스타 시음회, 주민 장기 자랑, 공예·체험·전시·오락 부스 등을 운영한다. 서산 9경과 부춘동을 주제로 한 어린이 미술대회, ‘양유정 마을 별빛영화제’도 성황리에 개최된다. 이런 다양한 활동과 성과로 양유정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올해 충남도 도시재생주민참여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양유정 마을을 무대로 쓴 전래 동화 ‘양유정 마을의 티니와 버니’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구해 단숨에 읽었다. 서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도영 작가가 글을 쓰고 박라정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티니와 버니는 느티나무에서 ‘티’와 버드나무에서 ‘버’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보였다. 열세 살 티니가 예산 외가에서 살다 서산 할아버지 댁에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니는 주막집 딸로 열두 살이다. 티니는 서울로 가서 의술을 배우고 의과 취재 시험에 장원하여 의원(醫員)이 되었다. 버니는 아픈 엄마를 대신하여 주막 일을 했다. 티니는 서산에 돌림병이 돌자 자원하여 서산에 와서 버니의 도움으로 우물에 빠져 죽은 고라니가 원인임을 밝혀내고 환자를 고쳤다는 줄거리다. 흥미 못지않게 양유정이나 양유정 마을의 특징과 전통을 더 많이 찾아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양유정 사람’이기 때문일까? 제례를 올리고 축제를 열고 그림동화까지 나오니, 마치 양유정 고목에 싱싱한 새잎이 돋아나는 듯하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니 반갑다. 양유정을 마당삼아 자란 필자로서는 흐뭇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더하여 양유정을 배경으로 하거나 장소로 삼는 행사가 ‘축제’의 의미와 더불어 예로부터 서산의 중심지로서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고찰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유정 마을의 티니와 버니’의 개정판이나 후속 작품이 나오게 된다면 ‘옥의 티’를 거르고 양유정과 주변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좀 더 담아 널리 알리면 좋겠다. 사백 년 고목들이 천 년 넘게 무성할 수 있도록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함이 먼저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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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7
  • 배움에 끝이 있을까? Ⅱ
    글자를 알지 못한 어머니 가슴에 ‘무식하다’라는 못을 박아드린 죄 때문에 문해 교육 강사가 되어 서부평생학습관에서 기초반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릴 수는 영영 없지만, 어머니 같은 불행한 비문해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어 어머니에게 지은 불효를 조금이나마 갚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첫 시간, 불효막심한 나의 부끄러운 고백을 앞에 계신 열세 분께 해드렸더니 모두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어느 분은 손수건을 꺼내어 연신 얼굴을 훔치셨습니다. 나는 압니다. 내 이야기가 슬픈 게 아니라 배우지 못하여 당신들께서 몸소 겪으셨던 지난날이 슬프신 것을. 중앙 실버대학에서 필자에게 배운 어느 어르신의 독백을 글로 써 둔 걸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세상에 계신 대산읍에 사셨던 어르신입니다. 『못 배운 게 어찌 내 탓이겠습니까?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 여자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지요. 오빠만큼은, 아니 남자만은 식구가 다 굶더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못 배운 부모님의 한 맺힌 마음에 애초부터 내가 설자리는 없었습니다. 내 부모님이 져야 했던 짐을 나도 고스란히 져야 했습니다. 이제 와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만 살아온 세월이 서러울 뿐입니다.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른다고, 반지 놓고 이응(ㅇ)자도 모른다고, 가슴에 깊이깊이 서린 설움 세상천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버스를 타려면 아는 사람 없는가 두리번거리고, 모르는 길은 겁이 나서 아예 나서지도 못한 걸 세상천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돈 없는 설움도 크다고 하더이다. 자식 없는 설움도 크다고 하더이다. 하지만, 글자 모르는 설움도 그에 지지 않더이다. 많이 울었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울었고, 억울해서 울었고, 답답해서 울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가, 늙어서는 남편이 놔 주질 않네요. 공부 시간이 부족한 걸 하소연했더니, 여러분이 그동안 받았던 설움 생각해서 모든 걸 이기고 기회를 붙잡으세요. 용기 주는 선생님 말씀에 다 쏟아서 없는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흘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성인문해교육을 받게 되고. 이제는 어엿하게 읽고 쓰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도, 내가 사는 주소도, 사랑하는 가족 이름도 차례로 써 봅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하나 들으면 둘 잊어먹는 나이가 되었어도 잊어버린 만큼 또 들어서 좋은 글도 읽고 멋진 글도 쓰는, 그래서 남은 인생 가슴 좀 펴고 살겠습니다.』 하루는 옛날 생각이 나서 은행에 가 입출금 전표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직접 쓰시는 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법은 무슨 법입니까? 금액란에 한글로 찾는 금액을 쓰고 날짜 쓰고 자기 이름 쓰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못 썼다고 하시던 할머니가 다음날 오시더니 배운 대로 해봤더니 되더라면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지금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글자가 있고 정부에서도 문맹 퇴치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인 것도 성공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인공지능 문맹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규모가 큰 식당에서 마음대로 메뉴를 골라 주문할 수도 없고, 인터넷 주문도 예매도 할 수 없어 그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의 설움을 그대로 느끼며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배움에 끝이 있을까요? 나이 많다고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알고 나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모른 대로 살지 말고 열심히 배워 시대를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도 과거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인공지능 문맹 퇴치 운동이라도 해보면 어떨지 건의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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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12-17
  • “위기를 넘어, 2025년 도약의 길을 열다”
    2024년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전례 없는 혼란과 위기를 경험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국내 정치의 분열과 경제적 압박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지역 사회는 생존과 발전이라는 이중 과제를 떠안았다.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갈등, 미·중 패권 경쟁의 여파가 이어지며 글로벌 협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국내외 문제를 면밀히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내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끝없는 대립과 권력 다툼을 반복하고 있다. 2024년 동안 진행된 정치적 갈등은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공공정책의 효과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68%가 "정치권이 국민의 삶보다는 당리당략에 치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민생 문제는 뒤로 밀려났고,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적으로는 고물가와 고금리, 부동산 시장 침체가 서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4.2% 상승했으며, 이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9.8%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소비 심리 위축과 가계 부채 증가로 이어지며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 농업 분야 역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쌀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15% 상승했으나, 생산비 증가로 인해 농민들의 순수익은 오히려 감소했다. 농촌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점차 위축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식량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의 현대화와 친환경 농업으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산시는 이러한 국가적 어려움 속에서도 중요한 도전과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대산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 개발은 서산시 경제 성장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는 친환경 에너지와 스마트 산업 기술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서산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서산시는 문화예술축제와 관광, 자연 자원 관리에서도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나치게 오락적인 프로그램 중심의 문화예술축제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축제 예산의 35%가 단순한 공연 프로그램에 투입되었다. 축제는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지역성과 창의성을 반영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갈등, 미·중 패권 경쟁이 한국의 외교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로 예상했으나, 이는 지역별로 큰 격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적 긴장 속에서 균형 잡힌 외교와 첨단 기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2024년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5% 감소했지만, 국제 사회의 요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와 기업, 국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산시는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인해 2024년 지방세 수입이 약 25억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예산을 2024년 대비 1,000억 원 증가한 1조 2,5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기존 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결국, 2024년은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화가, 지역적으로는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는 책임 있는 협력과 미래를 위한 준비가 요구된다. 위기는 곧 기회다. 변화는 도약이다.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2025년은 희망과 발전의 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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