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정 고목, 천 살 넘게 무성하기를…
가기천의 일각일각

“양유정님 요?”
“네, 양유정입니다. 그런데…”
“아! 예. 목소리는 남자분이신데, 이름은 여자분 같아서…”
“그냥 그 이름으로 해주세요.”
식당에 예약 전화를 할 때 이름을 ‘양유정’이라고 하다 보니 간혹 일어나는 장면이다. 어릴 적 뒹굴고 뛰어 놀았던 양유정의 추억을 지금도, 아니 잠시도 놓지 못하는 필자의 습관이다.
사람은 저마다 잊지 못할 사연이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양유정이 그 하나다.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하다. 얼른 그 시절로 돌아간다. 책상 앞에는 단풍으로 물든 양유정 정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양유정 옆에 우리 집이 있었다. 몇 십 발짝만 걸어가면 양유정이 맞아주었다. 집이나 학교에 있을 때를 빼면 거의 양유정에서 살았다. 하니 눈앞에 선하다. 곳곳이 손금 보듯 환하다. 학교에 오갈 때도, 구멍가게에 갈 때도 그 옆을 지나야 했다.
양유정 입구에 있는 방앗간 주인집 앞에서 송아지만 한 ‘항구(黃狗를 그리 불렀다)’가 가끔 ‘커엉’하며 달려들 때는 오금을 저리면서도 지나곤 했다. 여름에는 육각형 정자에 둘러앉아 부르는 어른들의 시조창이 끊길 듯 이어질 듯 바람 따라 울려 퍼지곤 했다. 바둑, 장기 알 놓는 소리가 크게 들릴 때는 승부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을까? 아이들은 감히 정자를 넘보지 못했다. 어른들이 없으면 살금살금 올라가 보는 것으로 호기심을 달랬다.
선거 때는 후보자들의 열변이 토해지기도 했다. 3.1절, 8.15광복절 기념행사와 야외 집회도 열렸다. 운동 경기가 열리는 날은 응원 꾼, 구경꾼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의 놀이마당이었다. 자치기, 땅따먹기, 술래잡기, 병정놀이를 하면서 해지는 줄 몰랐고 나무에 오를 때는 다람쥐가 되었다. 옆에 있는 작은 방죽에서는 잠자리를 잡느라고 발이 물에 빠져도 개의치 않았다. 가을이 깊을 때 수북이 쌓인 낙엽을 긁어모으고 그 속에 숨기도 했다. 겨울철 옆에 흐르는 중앙천이 얼어붙으면 썰매장이 되었고, 얼음이 녹을 무렵에는 아주머니들의 빨랫방망이소리가 메아리쳤다.
청년이 되어서는 배드민턴을 쳤다. 지금은 복개되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 내 건너에도 몇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위용을 뽐냈다. 필자는 한가운데서 기품 있게 서있는 팽나무를 가장 좋아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 하나 꺾지 못했다. 발각되면 지킴이 할아버지 ‘한의사(韓理事를 익숙한 대로 의사라고 칭했다)’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올빼미가 깃을 쉬던 고목은 세월과 폭풍우를 견디지 못했다. 몇 그루는 가지가 부러지고 결국은 베이고 말았다. 짓궂은 사람이 밑동 속이 빈 곳에 불을 지르기도 했으니 하늘에서 내리는 벌을 받지는 않았을까? 이제 방죽과 미나리꽝은 메워지고 하천은 복개되어 정취를 앗아갔다.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모임 공간이 늘어나고 놀이문화가 발달하면서 양유정은 관심에서 멀어갔다.
근래에 들어 양유정을 재조명하는 축제와 행사가 줄이어 열리고 있다. 새잎이 푸름을 더하는 5월에는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켜온 고목의 덕을 기리고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8월에는 ‘스산 양유정, 온 동네가 들썩들썩’ 축제가 열린다. 프리마켓, 바리스타 시음회, 주민 장기 자랑, 공예·체험·전시·오락 부스 등을 운영한다. 서산 9경과 부춘동을 주제로 한 어린이 미술대회, ‘양유정 마을 별빛영화제’도 성황리에 개최된다. 이런 다양한 활동과 성과로 양유정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올해 충남도 도시재생주민참여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양유정 마을을 무대로 쓴 전래 동화 ‘양유정 마을의 티니와 버니’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구해 단숨에 읽었다. 서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도영 작가가 글을 쓰고 박라정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티니와 버니는 느티나무에서 ‘티’와 버드나무에서 ‘버’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보였다.
열세 살 티니가 예산 외가에서 살다 서산 할아버지 댁에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니는 주막집 딸로 열두 살이다. 티니는 서울로 가서 의술을 배우고 의과 취재 시험에 장원하여 의원(醫員)이 되었다. 버니는 아픈 엄마를 대신하여 주막 일을 했다. 티니는 서산에 돌림병이 돌자 자원하여 서산에 와서 버니의 도움으로 우물에 빠져 죽은 고라니가 원인임을 밝혀내고 환자를 고쳤다는 줄거리다. 흥미 못지않게 양유정이나 양유정 마을의 특징과 전통을 더 많이 찾아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양유정 사람’이기 때문일까?
제례를 올리고 축제를 열고 그림동화까지 나오니, 마치 양유정 고목에 싱싱한 새잎이 돋아나는 듯하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니 반갑다. 양유정을 마당삼아 자란 필자로서는 흐뭇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더하여 양유정을 배경으로 하거나 장소로 삼는 행사가 ‘축제’의 의미와 더불어 예로부터 서산의 중심지로서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고찰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유정 마을의 티니와 버니’의 개정판이나 후속 작품이 나오게 된다면 ‘옥의 티’를 거르고 양유정과 주변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좀 더 담아 널리 알리면 좋겠다. 사백 년 고목들이 천 년 넘게 무성할 수 있도록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함이 먼저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