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
김풍배 칼럼

새해가 되면 메일과 휴대 전화에 카톡과 문자가 넘쳐납니다. 멋진 동영상도 보내고 장문의 글도 받습니다. 받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처 답을 못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잊지 않고 보내주신 한분 한분의 성의와 사랑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사의 무게감이 떨어짐을 느낍니다. 마치 으레 차려주는 밥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디지털시대 문명이 주는 편의주의 앞에 진심의 모습이 덜하기 때문일 듯싶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연말에는 우편물이 넘쳐났습니다. 성탄절 카드와 연하장 때문이었습니다. 문방구에는 예쁜 카드가 줄줄이 걸려있고 연하장도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마음에 드는 카드를 구하기 위해 문방구를 순회하기도 했습니다. 카드는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봉투를 열면 캐럴이 흘러나오는 카드도 있었습니다. 카드를 보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정성 들여 손수 글씨를 써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성이 보였고 온기가 전해져왔습니다. 요즘의 문자나 카톡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성이 흠뻑 담긴 새해 인사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카드나 연하장은 없애지 않고 일 년 내내 보낸 이의 마음을 곁에 두기도 했습니다.
옛 생각이 나서 성탄절 카드나 연하장을 찾아 문방구를 가보았으나 주인조차도 그걸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 연하장은 아예 없었고 카드가 있기는 했으나 우편 규격에도 맞지 않는 소품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아내나 이성 친구끼리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300원을 주고 한 장 샀습니다. 예쁜 장식의 조그만 카드였습니다. 아내에게 몇 자 적어 내밀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포기하고 대신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그리움을 담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자그만 연두색 종이에 어머니라고 쓰자 눈물이 낫습니다. 휴지를 찾고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올해 94세 되신 김낙중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새해 인사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땅속으로 숨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지만, 정말 ‘이럴 수는 없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마음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구스러워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나뿐이 아니라 선생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분들 스무 명을 적어놓고 이렇게 차곡차곡 전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인사는 아무나 하면 되는 게지 순서가 무슨 대수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셨으니 94세까지 장수하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탄절 카드나 연하장은 아날로그 시대의 방식이고 산물이라면 현재는 디지털시대에는 카톡이나 문자로 인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고 편리한 방법이라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사에 정성과 마음이 없다면 그건 허례일 뿐입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스마트 폰이라는 똑같은 기계로 문자보다는 한 통의 목소리가 훨씬 더 정다움을 느낀다는 걸. 집에 돌아와 가까운 분들 이름을 적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열 명이 넘어가니 전화를 드릴 만한 분들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통화했던 분도 계셨고 이미 문자를 드린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음성으로 다시 인사드려야겠다고 억지로 스무 명을 채웠습니다. 실제 전화해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통화 중이거나 응답하지 않으신 분도 많았습니다. 먼저 병원에 계신 분들께 드렸습니다. 한 결같이 고마워하셨습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여러 날 되었지만, 아직도 여러분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통화를 할 계획입니다. 전화를 드리다가 문득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과 도움을 받고 살았나 싶었습니다. 형편 되는대로 몇 분을 모시고 그런 자리를 가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의를 표시했다는 마음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오늘은 또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선배님을 초청했는데 오히려 선배님께 신세를 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선배님께서 생각하고 계셨다고 하시면서 굳이 거금을 내셨습니다.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문자로, 카톡으로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은 인사보다 노 선생님 덕분으로 진짜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