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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물이 나왔구려!”…천하 통일한 청나라 태종 예견
- [서산타임즈 창간19주년 특별연재] 일화를 통한 정충신 장군 일대기(6) 서산타임즈가 창간19주년 특별기획으로 우리의 묻힌 역사적 인물을 복원하자는 취지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연재한다. 정 장군의 일대기는 충무공 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회장 이철수, 전 서산시의회 의장)와 김인식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정충신은 즉시 왕명을 받들어 일행 몇 사람을 데리고 심양에 도달했다. 청태조 누루하치 또한 영웅이었던지라 정충신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사신으로 왔다는 소식에 기운을 꺾어볼 심사로 기지 창검 금부은월도로 좌우를 호화찬란하게 장식하고 용장강병(勇將强兵)을 벌떼와 같이 배치시켜 삼엄하고도 위압적인 기세로 정충신을 시험했다. 그러나 정충신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자약하니 누루하치가 들어서며 거만하게 말을 건다. “조선에서는 그처럼 사람이 없어서 너같이 부녀자 모양인 소장부를 타국에 보내어 국사를 탐판하게 한단 말인가?” 충신은 이 말을 듣고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신 등급이 있어서 타국에 사신을 보낼 적에 예외를 숭상하고 도덕을 준행하는 나라에는 대인군자(大人君子)를 보내지만 위력만 믿고 포악만 사용하는 나라에는 소장부(小丈夫)를 보내는 고로 내가 그대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더니 그대는 내가 소장부인 줄은 알아보는군.” 누루하치는 정충신을 무안하게 하려다 도리어 무안을 당하고 대답할 말이 없는지 딴소리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런데 그대의 나라에서는 어찌 명나라와만 교섭하고 나의 나라를 멀리 하느냐?” 정충신은 샛별 같은 눈을 부릅뜨고 누루하치를 바라보며 “그대는 예의도 은혜도 신의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명나라와 우리나라는 도움을 받고 은의(恩義)가 있는 나라인데 그 신의와 은혜를 잊지 않고 행동함이 당연한 도리거늘, 묻는 그대가 오랑캐가 아니고 무엇이가?” 이 책망을 들은 누루하치는 범상한 사람 같으면 대단히 분노하겠지만 그도 또한 호걸이라 허허 웃으면서 “그것은 내가 실수한 말이다. 그대의 나라에서 거래하는 문서에 나더러 종놈이니 도적놈이니 하거늘 그 연유가 무엇인가 분명히 말하라.” 충신은 답했다. “그대가 천하를 도적하려 하니 그대 같은 큰 도적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도적놈을 잡아서 죽이지 아니하고 종으로 부리는 고로 그대에게 도적이라고도 하고 종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는 그대의 나라를 공격한 일이 없는데 의심을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하여 생트집을 잡으니 어디에 그런 경우가 있는가?” 누루하치는 정충신의 일장설화를 듣고 노여워할 줄 알았더니 노여워하기는커녕 기뻐하는 기색으로 자리를 옮겨 다가앉으며 충신의 등을 두드리고 친절이 대해 주었다. 누루하치는 정충신과 막역지교(莫逆之交)를 맺고 자기 아들들을 불러 충신에게 인사하게 하니 충신은 그들의 절을 앉아서 받더니 마지막 순서의 왕자가 절을 할 때에는 몸을 급히 일으켜 빗겨 서며 맞절을 했다. 누루하치는 슬며시 그 연고를 물으니 충신은 숙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대인물이 세상에 나왔구려!” 그 아들은 후일 천하를 통일한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皇太極)였다. 정충신의 사람 보는 법이 이러했다. 충신이 청나라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다녀온 후로 누루하치는 다시 조선을 범하지 않았으니 정충신의 공이 자못 크고 장하다 하겠다. 어느 날 백주는 홀연히 행장을 수습하여 어디로 가려는 기미가 보임에 충신은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백주는 분명한 대답이 없어서 구차스럽게 다시 묻기를 그만두었다. 당시 임금인 광해군은 주색을 가까이하며 음란을 즐기니 조정에는 간사한 무리가 가득하여 어진 신하를 모함하고 골육지친을 이간하여 아우인 영창대군과 의조부인 김제남을 모반죄로 죽였다. 계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여 서궁에 감금하는 일까지 자행하였으니 천하 만고에 자식이 어머니를 폐하여 가두는 일까지 있었는가! 그때 오성대감 이항복은 원임 대신으로 집에 있다가 모후를 폐하는 변이 있음을 보고 분연히 붓을 들어 상소를 지어 아뢰기를 “윤리에 어그러지는 일은 범상한 백성이라도 못 하는데 하물며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써 어찌 가히 행하리오” 하고 어명을 급히 거두라는 뜻으로 간절하게 상소했다. 그러나 어두운 임금과 간사한 무리가 득실대는 조정에 충직한 재상의 바르고 옳은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시행되기는 고사하고 임금에 거역하였다는 죄로 몰아 함경도 북청에 유배하기로 하고 벽파만호 정충신은 이항복의 사람이라 하여 벼슬이 떼어졌다. 세상 형편이 그쯤 되어 벽파만호까지 갈린 소식이 벽파진에 이르렀음에 정충신 개연히 탄식하고 배소에 가는 오성대감을 뵈려고 길을 떠나려 할 때 백주가 진작 행장을 수습하여 놓았으니 지체될 것이 없었다. 백주를 데리고 주야로 서둘러서 오륙일만에 한양에 도달하였는데 오성대감이 발행(發行)할 날이 수일쯤 있었다. 정충신은 계모를 서궁에 가두게 한 임금의 곁에 있는 간신 허균 등을 제거하려고 어두운 밤에 비수를 품고 뛰어들었으나 도적이 집에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행장을 수습하여 오성 대감을 모시고 갈 때 오성 대감의 나이 이미 육십이 넘었으며 오성은 철령 높은 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생각에 임금이 있는 아득한 대궐을 바라보며 울적한 마음을 노래로 불렀다.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삼아 띄워다가/님계신 구중궁궐(九重宮闕)에 뿌려본들 어떠리” 이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처량하게 하여 같이 가던 사람들이 모두 울었다. 정충신은 북청 배소에서 오성대감을 모심에 자식같이 매사를 거행할 적에 충신도 당연한 일로 알았거니와 오성대감도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 충신은 글을 잘 하고 글씨를 잘 쓰기에 오성대감의 왕복되는 서류를 모두 대서하고 매일 일기로 기록하였으니 그것이 ‘백사선생북청일록(白沙先生北遷日錄)’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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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물이 나왔구려!”…천하 통일한 청나라 태종 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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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 이안서산테크노밸리 노인회, 제4회 국화전시회
- [시니어 현장] 성연 이안 서산테크노밸리노인회(회장 남춘현)는 지난 4일 제4회 국화전시회 개막식을 갖고 오는 11일까지 전시회를 개최한다. 성연 이안 서산테크노밸리노인회는 지난 5월부터 국화 식재와 가꾸기를 통해 포트맘 450개, 분재작 100개 등 800여개의 다채로운 국화를 가꾸며 감성 넘치는 아름다운 국화단지를 만들었다. 이날 관리사무소 앞 공터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는 강춘식 충남노인회 연합회장과 우종재 서산시 지회장, 김맹호·안원기 서산시의원, 안민수 성연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식전행사로 색소폰과 고고장구 연주로 흥을 돋운 가운데 진행된 개막식은 내빈소개, 경과보고, 노인회장 인사, 내빈 축사, 테이프 커팅, 전시장 순회 등으로 진행됐다. 노인회는 지난 1월 연간계획을 수립해 3월부터 핑크뮬리와 무궁화동산을 관리해왔으며, 폐츄니아 식재 및 관리, 백일홍 파종 및 가꾸기, 국화 식재 및 가꾸기 등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는 아파트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국화 작품과 함께 수채화 및 시화, 도자기 등도 전시되어 입주민과 지역주민에게 문화적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남춘현 노인회장은 “올해는 유난히 뜨거웠던 폭염과 잦은 장마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이러한 노력들이 어린이 및 어르신 등 다양한 계층의 입주민들이 화합할 수 있었으며 발길을 멈추고 국화를 감상하는 입주민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연=한관수 시니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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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 이안서산테크노밸리 노인회, 제4회 국화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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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재난특수진화대·기동진화대, 산불방지 전문교육
- [시니어의 눈] 서산시는 지난 1일 농업기술센터 회의실에서 가을철 산불조심기간 중 산불 대응 태세 강화를 위해 산림재난특수진화대 및 기동진화대원을 대상으로 산불방지 전문교육을 실시했다. 산림재난특수진화대는 야간이나 대형 산불의 신속한 대응을 통해 산불 확산 방지 역할을 담당하고, 기동진화대는 산불취약지역에서 계도활동, 소각행위 단속, 입산자 계도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시는 산림보호법 제35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29조에 따라 매년 산불방지 업무 수행을 위한 고용 인력을 대상으로 체계적이고 현장 여건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교육은 산불 예방정책과 진화요령 등 산불예방과 진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이 이뤄졌고, 실습 시간에는 산불진화장비 및 기계화시스템 운용법 등 산불발생 현장에서의 실제 대응 방법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인지=엄용기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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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재난특수진화대·기동진화대, 산불방지 전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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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문 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시니어의 눈] 지난달 30일 대산읍 화곡2리(이장 백문기) 마을에서 매우 특별한 송별회가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1988년부터 현대오일뱅크 대외협력부에 근무해온 김기무 부장의 송별회로 지난 36년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였다. 이날 송별회는 화곡2리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하였으며 감사패 전달과 오찬, 기념사진 촬영 등으로 진행됐다. 김기문 부장은 회사 인근 주민들과 회사와의 따뜻한 협력체계를 구축함으로서 농촌 작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날 마을주민들은 “퇴직하셨으니 이젠 우리 마을에 사시면서 마을 지도자를 맡아 달라”거나 “앞으로도 건강하고 지내시면서 우리 마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등의 덕담을 건네며 못내 아쉬운 송별의 시간을 가졌다. 대산=김유경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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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문 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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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중, 대산노인대학 초청 경로효친 행사 개최
- [시니어의 눈] 대산중학교(교장 백정현)는 지난 30일 제28회 경로의 달을 맞아 어르신들에게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경로효친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대산노인대학 어르신 160여 명을 초청하여 진행된 행사에는 1학년 전체 학생 57명과 학부모회가 자원봉사자로 나서 경로효친을 실천했다. 2010년부터 대산노인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대산중은 매년 어르신들을 학교로 초청해 ‘경로효친의 날’ 행사를 개최하며, 올바른 예절과 어른 공경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체육관에서 열린 1부 행사는 학교장 및 학장 인사, 장학금 전달식에 이어서 ‘한뫼 오케스트라’ 공연, ‘한뫼 하모’ 공연이 진행되어 어르신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흥겨운 시간을 선사했다. 2부 행사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오찬으로 급식실 자원봉사자들은 공경의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준비한 선물을 드리며 그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특히, 1학년 학생들은 행사 준비는 물론 어르신들의 이동 안내와 식사 보조를 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도 주변 정리 정돈을 돕는 등 이번 행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경로효친을 되새겼다. 백정현 교장은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의 주역이신 어르신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와 연계해 경로효친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대산=김유경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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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중, 대산노인대학 초청 경로효친 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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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면 읍내1리 송관선 노인회장, 사랑의 쌀 기탁
- [시니어의 눈] 해미면 읍내1리 송관선 노인회장이 지난 30일 해미면 행정복지센터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달라며 70만원 상당의 쌀 13포(20kg)를 기탁했다. 송관선 노인회장은 “작은 나눔이지만 취약계층의 한 끼 식사에 도움이 되고 이웃간에 훈훈한 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성광석 해미면장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기탁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전해주신 마음은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송광선 노인회장은 평소 지역 노인복지증진을 위해 항상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해 젊은이들에게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해미=김종진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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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면 읍내1리 송관선 노인회장, 사랑의 쌀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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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면 노인회 분회, 10월 월례회의 개최
- 대한노인회 서산시지회 인지면분회(회장 김종득)는 지난 30일 분회 사무실에서 10월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주요 시정 및 동정 업무를 공유하고 각종 복지시책 안내와 분회 현안사항을 논의했다. 인지=엄용기 시니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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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면 노인회 분회, 10월 월례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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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동 노인회 분회, 10월 월례회의 개최
- [시니어 포토] 대한노인회 서산시지회 수석동분회(회장 이철수)는 지난 30일 분회 사무실에서 10월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주요 시정 및 동정 업무를 공유하고 각종 복지시책 안내와 분회 현안사항을 논의했다. 수석=이경래 시니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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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동 노인회 분회, 10월 월례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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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 만에 밖으로 나온 충무공 정충신 장군 유품
- 충남역사박물관 내년 1월말까지 임금 교지 등 유품 185점 전시 충무공 정충신 장군 도록 발간 [시니어의 눈] 서산타임즈가 창간 19주년 특집으로 연재 중인 충무공 정충신 장군 일대기에 이어 정충신 장군의 유품 특별기획전이 열려 후손들과 충무공 정충신장군 유적현창사업회는 물론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산시와 충남도 그리고 정충신장군 유적현창사업회(회장 이철수) 등에 따르면 ‘또 한 명의 충무공, 정충신’을 주제로 한 기획특별전이 지난 25일 공주시 충남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식을 가졌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낙중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과 민정희 충남역사박물관장과 이철수 충무공 정충신장군 유적현창사업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과 정권영 금성정씨 대종회장 종손인 정은영 씨 등 종친 30여명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개막식에서 김낙중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정충신 장군 종손인 정은영씨에게 유물 기탁증서와 함께 감사패를 전달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은영씨는 이번 기획전을 위해 오랫동안 보관해 왔던 정충신의 초상. 서군사령기. 갑옷. 향로. 향합과 문중유물인 정충신 저서 만운집. 백사선생 북천일록. 정충신 유서(諭書:왕이 관찰사나 방어사로 임명할 때 내리는 명령서)등을 기탁했다. 서산의 대표적인 역사인물인 정충신 장군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 큰 전쟁에서 활약하며 전란을 극복했던 인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해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로부터 진무공신 1등에 책록 됐다. 서산시는 정충신 장군의 생애와 공적을 조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관련 유물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기록화·연구하는 사업을 통해 도록을 제작 이날 공개했다. 도록에는 정충신 장군과 그 후손에 대한 고문서와 문집, 관련 유물 180여 점에 대한 기록을 비롯해 장군의 생애와 연혁, 관련사건 등을 연구한 성과가 정리됐다. 내년 1월말까지 진행되는 기획특별전은 장군이 이괄의 난을 평정한 후 받은 공신교서를 비롯해 영정과 갑옷, 서군사명기 등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유물과 그 밖의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낙중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이번 기획특별전은 서산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역사적인 인물의 후손들이 지켜온 유물 문헌을 한데 모아 집대성한데 있다”면서 “매우 특별하고 귀중한 전시회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관람해 주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류관곤 충무공 정충신장군 유적현창사업회 부회장과 김웅곤 감사, 김인식 국사편찬조사위원 등 서산지역 방문자들은 “서산지역에 이처럼 훌륭한 인물이 있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그러나 충무공이면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이 크던 차에 이런 특별기획전이 열려 매우 기쁘다. 앞으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정신현창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며 입을 모았다. 이철수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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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 만에 밖으로 나온 충무공 정충신 장군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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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흠모하던 여염집 처녀의 죽음…“남편으로 알고 떠나시게”
- 서산타임즈가 창간19주년 특별기획으로 우리의 묻힌 역사적 인물을 복원하자는 취지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연재한다. 정 장군의 일대기는 충무공 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회장 이철수, 전 서산시의회 의장)와 김인식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정경부인은 어떤 까닭인지 모르지만 쫓기는 사람은 사위요, 쫒는 사람은 정충신이라. 까닭은 나중에 알더라도 우선 급한 불부터 끌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충신아! 이것이 무슨 짓이냐? 썩 나가거라!” 하는 즈음에 오성대감이 퇴궐해서 집에 오니 사랑에는 아무도 없는데 내당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조복도 벗지 않고 곧 내당으로 들어와 보았다. 숨은 사위와 꾸짖는 아내, 칼 들고 성난 정충신의 거동을 본 오성대감은 정 충신을 보고 그 연유를 물었다. 까닭을 들은 오성대감은 “대장부가 말을 뱉었으면 시행 해야지.”하며 정경부인 뒤에 숨어있는 사위의 손목을 끌어내어 충신 앞에 밀어붙이니 부인은 겁을 내어 “대감! 왜 이러시오?” 했다. 집안사람들도 놀라서 “에고 머니!”했지만 오성대감은 들은 체도 않고 충신에게 “자, 내기를 시행 하여라” 했다. 충신은 자신의 성격으로는 바로 목을 베고 싶었지만 주인대감과 정경부인 안면을 보고 목을 벨 수가 없어 대신 칼을 들어 상투를 싹둑 베어 들고 사랑으로 나왔다. 정경부인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대단히 노여 했지만 대감이 주장하신 터라 어찌 할 수 없었다. 윤한림 또한 그 지경을 당하여 매우 분했지만 자기가 실수했기에 어찌 할 수 없었다. 모두 대감께서 혹시 분풀이를 하여 주실까 바랬으나 그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오성대감은 곧 사랑에 나와서 조복을 벗고 앉아서 충신을 불러 세우고 “너는 어찌 윤옥의 목을 베지 못하였느냐? 나는 네가 도원수를 할 줄 알았더니 오늘 보건데 부원수 밖에 못하겠구나!”하자 충신은 공손히 듣고 송구할 뿐이었다. 오성대감댁은 필운동이라 그 골목 안에 있는 여염집 처녀 하나가 십칠 세의 나이로 출가하지 못하였는데 정 충신의 용모가 남중일색임을 보고 흠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나 뜻을 이룰 길이 없음에 우울증이 극에 달하여 질병이 되었고 점점 침면(沈眠)하여 결국 세상을 버렸다. 그 처자가 세상을 버리던 날 밤에 충신은 오성대감댁 사랑 윗방에서 혼자 자다가 자리가 편하지 아니하여 깨어 본즉 자기의 옆에 누가 누운 것을 느끼고 불을 켜고 자세히 보니 병들어 죽은 여자의 시신인데 눈을 감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놀랠 듯도 하지만 정충신이 놀라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수년 이래 골목 안에 드나들 때에 앞집 처녀가 번번이 웃어 보이다가 혹간 얼굴을 드러내고 혹간 소리를 내어 친하고자 함을 알았으나 체면이 있는 바에 아는 체 하지 않고 다닌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같이 괴상한 일을 당하였으나 아마 그 처녀가 죽어서 원혼이 헤어 지지 않았으므로 시신이 움직여 왔는가 보구나 하고 앞집에 나가 탐문하니 과연 처녀가 죽었는데 시신이 홀연히 없어졌다 한다. 충신은 그 처녀 부모를 데리고 와서 시신을 어루만지면서 “정이 있거든 말을 하거나 말하기가 어려우면 서찰이라도 하지, 내가 그대를 저버림이 아니라 그대가 스스로 슬퍼했구나. 이제는 할 수 없으니 나를 그대의 남편으로 알고 돌아가시게” 이 말이 끝나자 처녀 시신의 두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스스로 감았다. 선조임금은 세상을 뜨고 아들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다. 이항복 오성대감은 정충신이 크게 쓸 만한 장수 제목이라고 광해군에게 아뢰었음에 광해군은 병부에 분부하여 평안도 백파만호를 제수하여 도임 한 후에 감영에 치진하였는데 기이한 인연을 만나다. 그 때에 평안도 감영에 백주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얼굴이 절색이오, 노래가 명창이며 또 지조가 높아서 이름은 비록 기생 안책에 매었으나 영웅이 아니면 섬기지 않겠노라 맹세하고 몸을 남에게 허락한 일이 없었다. 정 총신이 치진한 때는 마침 감사의 생신이라. 10읍 수령을 모아 놓고 생일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때에 좌중에 있는 백주를 가리키며 여러 수령을 향하여 “오늘 좌석에 계신 여러 수령 중에서 누구든지 글을 지어 저기 있는 기생의 가사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중매하여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하오리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수령들은 감사의 말을 듣고 생각건대 백주의 지조 높음을 아는 바에 자기의 인품으로 그의 뜻에 맞지 못할 줄을 알지만 감사의 말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어 각기 글을 써 놓았으나 백주는 곁눈으로 본체만체 한다. 벽파단호 정충신은 빙긋이 웃기만 하고 앉았다가 감사가 여러 번 재촉하자 마지못해 글 한수를 지었다. “저 중류에 떠있는 작은 잣나무 배는 몇 해나 빈 채로 푸른 물결 머리에 매였더냐. 곁에 사람이 만일 누가 먼저 건너가겠느냐 묻거든 문무 겸한 만호후라 할 것이다.” 백주는 그 글을 보더니 앵두 같은 입을 열어 옥구슬 같은 소리로 옵조린다. 좌중에서 모두 갈채함에 감사도 크게 기뻐하여 “백파만호는 저 기생의 남편 되기를 사양할 수 없게 되었소.” 하며 친히 술잔을 부어 한잔은 만호에게 전하고 한잔은 백주에게 전하였음에 두 사람은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셨으니 이는 초례청 합환주인 셈이었다. 그날 밤, 감사는 비장을 시켜 따로 숙소를 잡고 두 사람을 인도하며 인연을 맺게 하였으니 이는 기이한 인연이 아닌가? 그 이튿날 벽파만호는 백주를 데리고 자기 고을에 내려가 꽃과 나비 같이 물과 고기같이 즐겁게 지내는데 얼굴만 예쁘고 노래만 잘 할뿐만 아니라 절통한 재주를 또 가졌으니 그것은 점을 치면 앞일을 능히 알아내는 것이다. 하루는 백주가 만호에게 “급한 일이 있으니 내일 안으로 감영에 치진하시오” 했다. 이에 만호는 의아하여 “무슨 일이 있는가?”하고 물으니 “무슨 일인지는 가서 보시면 아실 것이요”라고 하기에 재차 묻기가 곤란하여 하인을 거느리고 감영에 치진하여 감사를 만났다. 감사는 죽을 기색을 하고 있었다. 정 충신이 사유를 물으니 감사는 “지금 명나라 사신이 이곳에 이르며 은자 삼만 량을 납백 하라 하고 만일에 이것을 거행하지 못하면 내가 대단한 곤욕을 보게 되었으니 이 어찌 걱정이 아니오?” 하고 답답해한다. 뜻밖에 벽파만호가 치진함에 감사는 그가 지락 있음을 기왕부터 알기에 반색하여 손을 잡으며 좌우를 물리치고 명나라 사신의 행악한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간청한다. 당시 명나라는 우리나라를 구원한 후부터 사신이 나오면 토색질이 무쌍하여 턱없이 재물을 수습하여 가는 일을 종종 하였는데 이때에도 사신이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평양에 이르렀다. 만호는 속으로 “급한 일이 있다 하더니 바로 이 일이로구나”생각하고 감사한테 “그는 어렵지 아니하니 사또의 권리를 하관에게 반나절만 빌려 주시면 무사히 만들어 놓겠소이다”했다. 감사는 무사하겠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면서 “권리는 고사하고 나의 몸까지라도 빌려다가 일만 무폐하게 만들어 주오”하면서 상을 내어 권한다. 만호는 임의대로 하라는 감사의 권리를 받아 가지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 만호는 객사에 좌기한 후에 영리한 사람 몇 명을 불러 귀에 대고 무엇이라 몇 마디 분부하였음에 이들이 나간 지 얼마 만에 홀연히 온 성중(城中)이 불끈 뒤집혀 물 끓듯 하고 백성들이 울며불며 부모와 자녀를 이끌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모두 황망히 성문 밖으로 나간다. 이때 명나라 사신은 영빈관에 앉아서 감사가 은자를 가져 오기만 기다리는데 별안간 성중(城中)이 요란하며 난리가 났음에 의아하여 또 알아보아도 난리 났다는 같은 말이라 겁이 나서 급히 돌아와 다른 사신에게 그 사유를 말하는데 방포 터지는 소리가 크게 난다. 사신은 크게 놀라 황겁한 걸음으로 군복을 입고 긴 환도를 짚고 앉아있는 정충신에게 곡절을 물음에 충신은 엄연히 앉아서 잔뜩 험악한 표정으로 “권리가 없어서 죽을 바에는 죽을 권리까지 막지 마시오.”했다. 그 말이 그치자 방포 소리가 또 한 번 크게 터졌다. 크게 두려움을 느낀 사신 일행은 부리나케 행장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재빨리 말에 올라타 길을 재촉하여 바람같이 몰아 달아나는데 잠시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에 오백리나 되는 의주에 도달하였으니 며칠 두고 연호 각읍에서 당했을 폐단까지 막았던 것이다. 정 충신은 사신을 쫓은 후 백성들을 도로 불러들여 안심시키고 선화당에 들어가 감사를 뵈니 감사는 무수히 치사하면서도 후탈이 있을까 염려함에 충신은 그렇지 아니한 곡절을 말한다. “자기가 먼저 불의를 행사 하려다 탄도가 났으니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라고 감사를 안심시키고 일을 다 마친 후에 하직하고 환관 했다. 이와 같이 조선은 임진왜란 후 까지도 혼란 상태에 빠져있을 때 만주에서는 건주호인(建州胡人) 누루하치가 일어나 흥경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의 제 부족을 통일하고 건국하여 국호를 후금(後金)이라 했다. 후금의 누루하치는 차츰 세력을 모아서 우리나라와 명나라의 침범을 엿보더니 마침내 명나라의 변경을 침략하므로 명은 양호를 총수로 삼고 이여송 등의 제장으로 하여금 대군을 발하여 이를 공격하는 한편 조선에도 원병을 청하고 재촉이 심하였다. 광해군은 쉽사리 응하지 않았으나 앞서 임진왜란 때의 의리도 있음으로 마침내 도원수 강홍립, 부원수 김경서로 하여금 1만 3천의 병을 거느리고 원정하여 명군을 돕게 하였다. 강홍립 등은 압록강을 건너 명군과 합세하여 적지에 들어가 부차(흥경 동쪽 60리)에서 후금의 대부대와 싸웠다. 이 싸움에서 명군이 대패하고 조선군도 포위되어 선천군수 김응하 이하 및 몇몇 장수가 전사하였다. 강홍립은 적진에 통하여 조선의 출정은 부득이 한데서 나왔다는 것을 표명하고 그 무리와 함께 후금에 투항했다. 이는 강홍립이 출정 전에 왕으로부터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밀지를 받았던 까닭이다. 강홍립은 적진에 있으면서 내정을 본국에 알리는 한편 양국간의 화의를 성립시키고 알선하며 활약했다. 이같이 후금의 세력이 강성하여 짐에 조선에서도 북방 경비에 모든 힘과 지혜를 다했다. 이때 정충신은 보하진(甫下鎮)을 지켰다. 정충신은 이곳에 머물면서 고려 명장 윤관 장군의 유적을 살피고 시 한수를 지었으니 제 보하진(題 甫下鎮)이라는 시(詩)다. “천년이 지난 자취도 새가 나르는 사이인데/ 문공의 비석에는 이끼만 얼룩졌구나./ 우습다, 옥문관의 반(班)을 정(定)함이 멀었는지/ 몇 해를 고생하며 살다 가기를 빌었던가” 과연 충신은 문무가 겸한 명장이 될 바탕이 이미 갖춰진 사람이었다. 이전부터 명나라가 차차 피폐하고 청나라 가 점점 강성하여 후금의 누루하치는 웅장한 기세와 심원한 지략으로 천하를 통일 하려는데 자기 군사를 몰아 중원에 들어간 후 조선에서 그 뒤를 음습할까 두려워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두어 차례나 우리나라 변방에 들어와 압력으로 화친하자 하며 말하기를 “너의 나라에선 나더러 항상 도적이니 종놈이니 하는 말로 왕래하는 문서에 기재하니 내가 언제 누구 집에 가서 무엇을 도적질하여 왔으며 내가 언제 누구 집에 가서 종노릇 하였더냐? 그 무슨 버릇없는 말인지 사리와 경우를 알고자 하니 분명히 답변하면 모를까 그렇지 아니 하면 군사를 몰아 곧 너의 나라 도성에 들어가 옥석을 가리지 않고 소탕하리라.”하고 협박을 해 왔다. 조선에서는 그 겁박에 답하기도 하고 겸해서 정세를 탐지하기 위해서 사신을 보내야겠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 조정 상하가 어찌 할 줄 모르더니 한 신하가 임금한테 아뢰기를 “누루하치는 영특하고 강맹한 인물 이온 바 조선을 향하여 짐짓 트집을 잡으려 하오니 사신을 보내 변명하여야 무사하겠사온데 여간한 사람을 보내어서는 왕명을 세우기가 쉽지 못하오니 만포진첨사 정충신이 문무 겸재하오니 특별히 사명을 맡겨 보내면 일은 완전할 것입니다.”했다. 그 말은 들은 임금은 정충신을 후금에 보내도록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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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흠모하던 여염집 처녀의 죽음…“남편으로 알고 떠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