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6(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작년 6월 하순쯤으로 기억된다. 문학회 야외 모임(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지 않았던 듯하다)이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당산에서 있었다. 당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아!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산악인 전승진 회장의 역사적 유래를 듣지 않아도, 그저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바둑판처럼 나눠진 들녘엔 파란 물결이 굽이치고 멀리 서산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낮에 보았던 감동이 식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그곳으로 향했다. 정상에 올라보니 벌써 대여섯이 분이 와서 운동하고 있었다. 자연은 변함이 없었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햇살이 비춰주는 전경 역시 아름다웠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고 싶기에 내려가는 다른 길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운동하던 사람 중 누군가가 대답했다. “올라온 길루 가슈. 아는 길이 제일 빠를 께유” 작년 가을에 팔봉산에 올랐다. 4봉까지 올랐다가 약속 시간이 지날 듯해서 급히 내려오는 중, 문득 3봉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지름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생각났다. 3봉 밑으로 등산로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봤다. 마침 덤불도 없고 다소 넓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그 길을 따라 내려왔다. 처음엔 등산로보다 완만해서 편한 듯했지만 얼마간 내려오다 보니 길이 막혔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다시 막힌 것도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내려오긴 했지만,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렸다. 그때 당산에서 들었던 말 ‘아는 길이 제일 빠른 길’이란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인생도 어쩌면 등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하는 사람은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우리 인간도 죽음이란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듯이 우리 인생길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을 터이다.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니듯 산에는 등산로가 따로 있고 인생길도 길이 따로 있다. 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고 힘들다. 땀과 눈물이 있다. 인생길도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고해라 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눈물도 흘려야 하고 땀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산길과 인생길은 다른 점이 있다. 등산길은 쉴 수도 있고 돌아설 수도 있고 건너뛸 수도 있지만, 인생길은 단 한 번밖에 오르지 못한다. 쉴 수도 없고 돌아설 수도 없고 건너뛰지도 못한다. 산에는 지름길이 있을 수 있지만, 결단코 인생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그저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한다. 길에 관한 속담도 많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길 닦아 놓으니 미친년이 먼저 간다‘, ’길로 가라니 뫼로 간다‘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놓고 가라‘ 등등. 모두 교훈이 되는 속담들이다. 그러나 내가 참으로 마땅하지 않은 속담이 있으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다. 이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는 의미다. 이 말이야말로 참으로 버려야 하고 피해야 할 말이다. 과정이 정의로워야 결과도 아름다운 것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LH 사건도 과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공직 정보를 이용하여 부동산을 취득한 행위는 참으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행위다. 바른길, 정도(正道)란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함이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한승원의 「길」이란 시가 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길이 있고/ 구름에게는 구름의 길이 있다/ 사람 같은 개도 있고/개 같은 사람도 있고/ 사람 같은 구름도 있고/ 구름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이 구름의 길을 가기도 하고/구름이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사람이 개의 길을 가기도 하고/개가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나는 구름인가 사람인가 개인가/무엇으로서 무엇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스스로 묻는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06-16
  • 명의신탁자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요지] 무효인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임의 처분한 경우 형사상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부담하는지(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4007 판결) [사례] 원고와 피고A 간의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원고 소유의 부동산을 피고A의 아내인 피고B 명의로 보관하던 중(피고A는 신용불량자임) 피고A가 피고B의 인감증명서 등을 사용하여 위 부동산을 C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자 원고가 피고A와 피고B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을 위반하여 명의신탁자가 그 소유인 부동산 등기명의를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는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와 명의신탁자 간의 관계는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관계가 아니고,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여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 및 증명책임의 부담과 그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 불법행위에 따른 형사책임은 사회의 법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행위자에 대한 공적인 제재(형벌)를 그 내용으로 함에 비하여, 민사책임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한 데 대하여 행위자의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피해자에게 발생된 손해의 전보를 그 내용으로 하고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의 공평ㆍ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것이므로,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대법원 2008. 2. 1. 선고 2006다6713 판결 참조).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약정(제4조 제1항)과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제4조 제2항 본문)은 무효라고 명시하고 있다.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앞으로 등기를 하더라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부동산 소유권은 그 등기와 상관없이 명의신탁자에게 그대로 남아있게 되고, 명의신탁자는 부동산 소유자로서 소유물방해배제청구권에 기초하여 명의수탁자를 상대로 그 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19. 6. 20. 선고 2013다21815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런데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서는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가 제3자에게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제3자에게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그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없고, 명의수탁자로부터 부동산을 양수한 제3자는 그 소유권을 유효하게 취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명의신탁 받은 부동산을 명의신탁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를 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명의신탁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으므로, 명의수탁자의 행위는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 대법원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은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고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의 관계는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관계가 아니므로 명의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에 대하여 횡령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지 명의신탁관계에서 신탁자의 소유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명의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로 인하여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이 침해된 이상 형법상 횡령죄의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결국, 명의수탁자가 양자간 명의신탁에 따라 명의신탁자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행위가 형사상 횡령죄로 처벌되지 않더라도, 위 행위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형사상 횡령죄의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판례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06-16
  • 결재는 권한이고 책임이다
    최근 공직사회에서 ‘결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6월 7일자 중도일보는 어느 시청에서 5급 팀장과 6급 주무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했다. 팀장이 주무관에게 “팀장 결재 없이 주무관이 문서를 처리하는 것은 추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앞으로 잘해 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는데, 주무관은 “팀장이 자리에 없어서 그랬다고요”, “알겠다고요”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데서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해졌다는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는 특채 추진과 관련하여 “정치적인 부담을 포함한 모든 책임은 내가 다 지겠다”며 기관장 단독으로 결재한 것 등을 두고 사법처리 단계로 이어졌다. 결재 과정에서 담당 국ㆍ과장과 부기관장까지 ‘배제’했다는 감사원 주장과 법적 분쟁, 징계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이들을 ‘배려’했다는 기관장이 입장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연기군을 중심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예정지로 결정되었으나 얼마 후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났다. 이에 주민들의 삭발, 혈서, 단식, 대규모 집회 등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초기 소요 비용을 주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했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군에 비용을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예산을 마련했는데 집행절차가 문제였다. 묘안이었을까? 결국 군수 단독으로 결재하여 집행했다. ‘정치인’ 군수의 결단이었다. 사례에서 보듯이 이유나 경위가 어쨌든 일반적으로 기안자→보조ㆍ보좌기관→결재자 순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단계를 거른 채였다. 반대로 최종 결재를 보류하는 것으로 매듭짓는 사례도 있다. 결재자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K도 어느 도지사는 결재서류에 ‘감사관 귀하. 본 건은 본인의 지시에 의해 처리한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니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손수 쓴 메모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유나 대안을 말하지 않고 ‘다시 해 보라’거나 ‘재검토하라’며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의도와 다르면 분명한 지침을 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처사로 볼 수도 있다. 지적은 하면서도 적정한 대안을 제시해 줄만한 역량이 부족한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펴낸 ‘행정업무운영편람’을 보면 ‘결재란, 해당 사안에 대하여 행정권한의 의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의사를 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결재는 행정기관의 장, 행정기관의 장으로부터 결재권을 위임받은 자, 대결(代決)하는 자가 해당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효과를 성립한다. 결재는 문서가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한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요건이다. 기관장이 된다는 것은 결국 결재권을 획득한다는 것이며, 대내외적으로 효력을 발하는 의사결정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에서 결재과정은 모든 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결재로써 일이 시작되고 종결된다. 결재권자가 서류에 서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의사표시도 넓은 의미의 결재라 할 수 있다. 결재가 업무의 핵심이다 보니 기안보다도 결재 받는데 비중을 두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 걸려 작성한 일을 불과 몇 십초, 몇 분 걸리는 결재를 받자고 며칠 씩 기다리기도 한다. 도의 어느 간부는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결재서류를 몇 번에 나누어 받기도 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한 번에 활용하지 않으니 빨리 시행하여 매듭지으려는 실무자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일의 능률을 보자면 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그 간부의 지론은 달랐다. 한꺼번에 받는 것보다 여러 번으로 나누면 도지사를 자주 볼 수 있고 일을 많이 하는 간부라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결재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일 년 동안 도지사 결재 받아야 하는 문서를 한 번도 만들지 않는 간부나 부서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면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차이는 분명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례를 들어 결재의 의미를 새겨 보면 일반적인 절차를 결한 결재 과정은 아무래도 매끄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안은 최선을 다해야 하고 보조ㆍ보좌기관은 실무적, 전문적인 것까지 균형감 있게 보아야 한다. 결재자는 본인의 권한행사에 앞서 지역과 주민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해야 한다. 결국 결재는 권한이고 책임이다. 엄중한 행위다.<전 서산시 부시장ㆍka1230@hanmail.net>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8
  • 밤에 사는 사람들
    흔하지 않지만, 때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다. 일 때문에 자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지만, 멀쩡한 날의 불면증 또한 괴롭기 한이 없다. 오죽하면 성경에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잠을 주신다고까지 하셨다. 잠이 보배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잠은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엊그제 밤에는 잠이 심술을 부리는 바람에 두어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10시경에 자리에 눕는다. 2시쯤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잠들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새벽 기도회에 나간다. 이것이 밤의 일상인데, 엊그제는 무언가 생체 리듬이 고장 났다. 잠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잠이란 고집불통이어서 억지로 부른다고 냉큼 오지는 않는다. 그걸 알기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엊그제 사 온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몇 페이지 읽다 보니 졸렸다. ‘이제 자도 되겠지’라며 자리에 누웠으나 이 무슨 심술인가? 다시 정신은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일어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1시간을 견뎌도 잠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에라! 다시 일어나 소설을 읽었다. 읽다가 졸려 누웠으나 아까처럼 잠은 오지 않고 엉뚱한 생각만 오락가락했다. 어찌해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야속하게도 알람이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이런 날엔 사정 좀 봐주지. 하지만 알람은 우직하게도 4시 반에 깨웠다. 셈해보니 두어 시간 남짓 잔 것 같다. 왼 종일 어질어질하고 졸린 기분이 들었다. 집중력도 흐려지고 피곤했다. 문득 둘째 아들 생각이 났다. 둘째 아들은 3교대 근무하는 근로자다. 일주일 단위로 근로 시간이 바뀐다. 평소엔 그러려니 했던 아들의 근로 환경에 대하여 무심했던 죄책감이 몰려왔다. 물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수면할 때는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살지만, 야간 근로의 어려움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단 하룻밤 잠을 자지 못했어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걸 둘째 아들은 벌써 여러 해째 일상으로 살고 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이에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이 뻐근히 저려 왔다. 아비의 동정심이 부질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밤을 사는 사람들이 어찌 아들뿐이랴? 산업체 근로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밤을 새우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밤에는 쉬셨다. 밤은 모든 생명체에게 주신 신의 선물이다. 밤엔 빛을 가려주신다. 잠을 자게 하기 위한 신의 배려다. 그래서 일부 야행성 동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동식물은 잠을 자야 한다. 밤에 자지 않는다는 건, 신에 대한 저항이다. 밤은 활동을 위한 휴식이고 준비 시간이다. 그걸 역행하여 산다는 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밤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경찰들, 소방관들, 그들이 잠을 자지 않고 부릅뜬 눈으로 지새우기에 국방이 지켜지고 치안이 유지되고 불을 끌 수 있다. 생명 살리는 의료종사자들이 있다. 한 번쯤은 구급차에 실려 가거나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 보신 경험들이 있을 거다. 그때 촌각을 다투는 생명을 살려준 게 누구였던가? 수송과 운송을 담당하는 종사자들은 또 어떤가?, 택배 기사들, 신문 방송 종사자들, 편의점 사장님들,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곳에서 밤에 사는 사람들이 잠과 씨름하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우린 평안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성경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 하다’는 말도 있다. 인간이 굉장히 뛰어난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의 일은 크게 느끼지 못한다. 만일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밤에 사는 사람들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나 혼란스럽고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삶의 질이 떨어지겠는가? 감사하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지구라는 통나무는 밤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쉬지 않고 굴러간다. 하룻밤 불면증으로 얻은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시인ㆍ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8
  • 사표 수리가 안 된 공무원의 정당 가입 가능여부
    [요지] 공무원이 공직선거의 후보자가 되기 위하여 사직원을 제출하여 접수되었으나 수리되지 않은 경우 정당 추천을 위한 정당 가입 및 후보자등록이 가능한지 여부(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수6304 판결) [사례] 경찰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甲이 제21대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기 위하여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에서 정한 시기까지 사직원을 제출하여 사직원이 접수되었으나 검찰에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수리되지 않은 채 정당 추천 후보자로 등록한 사안 [대법원 판단] 공직선거법 제52조 제1항은 ‘후보자등록 후에 제53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 또는 제5항을 위반하여 등록된 것이 발견된 때’(제5호), ‘후보자등록 후에 정당이 그 소속 당원이 아닌 사람이나 정당법 제22조에 따라 당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을 추천한 것이 발견된 때’(제9호) 또는 ‘후보자등록 후에 다른 법률에 따라 공무담임이 제한되는 사람이나 후보자가 될 수 없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 발견된 때’(제10호)에는 그 후보자의 등록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 제1호는 국가공무원법 제2조에 규정된 국가공무원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국회의원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같은 조 제4항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을 적용하는 경우 그 소속기관의 장 또는 소속위원회에 사직원이 접수된 때에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체계, 입법목적을 종합하여 보면, 공무원이 공직선거의 후보자가 되기 위하여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에서 정한 기한 내에 그 소속기관의 장 또는 소속위원회에 사직원을 제출하였다면 공직선거법 제53조 제4항에 의하여 그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사직원 접수 시점에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간주되므로, 그 이후로는 공무원이 해당 공직선거와 관련하여 정당의 추천을 받기 위하여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보자등록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후보자등록 당시까지 사직원이 수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후보자등록에 공직선거법 제52조 제1항 제5호, 제9호 또는 제10호를 위반한 등록무효사유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여 甲의 후보자등록이 공직선거법 제52조 제1항 제5호, 제9호 또는 제10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8
  • 나라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6월 1은 의병의 날이요, 6일은 현충일, 25일은 6.25 전쟁 발발일, 29일은 제2연평해전 일이다. 이처럼 6월은 호국에 관한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날이 많아 국가보훈처에서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3.1 독립운동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캄캄한 어둠에 갇혀있던 우리 민족을 향하여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세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엔 너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리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예지대로 지금 우리나라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6불로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이제는 3만 불 시대에 살고 있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엊그제 한미 정상 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생큐, 생큐, 생큐”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어디 경제뿐인가? 문화예술 분야도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상 최초로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세계의 화제가 되었으며 BTS (방탄소년단)는 세계의 음악계를 주름잡고 있다. 수많은 성악가, 피아니스트, 바이올린 연주가들이, 그리고 손흥민을 비롯한 운동선수들이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IT 강국이며 세계 반도체 생산 1위, 세계 조선산업 1위, 세계 철강 제조 산업 1위, 세계 초고속 통신망 1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각종 분야에서 눈부신 동방의 빛이 되어 세계를 비추고 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이 나라가 거저 되었을까? 아니다. 우리 선열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결과물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나라와 겨레의 독립과 자유를 지켜내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검불처럼 버려서 지켜낸 고귀한 선열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 낸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이제 자랑스러운 이 나라를 우리가 지켜내고 이어나가 더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문명은 도전과 응징이라고 정의했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문명마저도 닥쳐오는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면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존립 자체도 어렵다는 말이다. 로마의 정략가인 베제티우스는“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고 했다. 최선의 수비는 최대의 공격이란 말도 있다. 우리는 그리스의 경제 위기와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환난이나 시련이 찾아온다. 이는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유비무환,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을 기리며 다시 한번 나라 사랑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우리가 지켜내자. (시인ㆍ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2
  • 권한과 위임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 비하하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이다. 며칠 전 맹정호 서산시장이 6월 월례회의에서 “요즘 공무원들이 일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며 직원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직원들이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에서 시의적절한 발언이다. 우리 행정의 환경을 살펴보면 군사정권시대에 일방적 상명하복 문화가 행정내부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지역주민 또한 이에 익숙해져 있고, 농촌일수록 관주도의 행정이 주류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행정환경도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또한 변화 중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교체되고 이른바 신세대들이 대거 공직에 몸을 담고 있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모든 일들이 이루지는 시대다. 쇼핑과 각종 미디어, SNS 등의 사회활동이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행정은 어떤 식으로 변화와 방향을 잡아야 할까? 서산시도 그동안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에 의해 시정이 추진되어왔다. 시장의 강력한 추진의지는 부서장에게 전달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왔다는 평을 받는다. 이를 통해 서산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리더십이 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방향을 달리한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실핏줄이 잘 돌아야 하듯이, 건강한 나무도 큰 뿌리보다는 실뿌리가 그 나무의 튼튼한 생명력을 제공한다. 행정환경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맹 시장은 취임하면서 권한위임과 책임행정을 강조했다. 기존과 다른 환경에서 적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부서장과 읍면동장에게 많은 결정권이 부여되었지만 실행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역주민들로부터 부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가 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방역체계 구축과 대응은 어느 지자체보다 체계적이며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성과는 부서장과 담당부서의 열정의 결과다. 결코 권한위임과 책임부여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제4차 혁명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협업문화이다. 과거 관주도의 행정은 한계를 맞고 있다. 시민의식의 성장과 다양한 행정수요에 대해 과거의 행정행태는 효율적이지 못하고 적합하지도 않다. 요즘의 SNS 환경에는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감각이 필요하다. 따라서 부서장들은 그들이 맘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행 경험을 통해 각 개인은 성장해 갈 것이다. 그런 것들이 축적된다면 하나의 커다란 선순환 구조로 변화될 것이다. 맹 시장의 권한과 위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이며, 흐름이 서산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 또 두고 볼 일이다. 편집국장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2
  • 연체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 거절에 대한 판결
    [판결 요지] 점포 임대인이 임대차기간 중 차임연체액이 3기분에 달한 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고 인도를 구하는 사건(대법원 2021. 5. 13. 선고 2020다255429 판례) [사례] 점포 임대인이 종전에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체한 적이 있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하고 임대차계약이 만료되었을 때 건물의 인도를 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판단]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은 임대인이 차임연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요건을 ‘차임연체액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하는 때’라고 규정하였다. 반면, 임대인이 임대차기간 만료를 앞두고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에 관해서는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라고 문언을 달리하여 규정하고 있다(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1호). 그 취지는, 임대차계약관계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를 기초로 하므로, 종전 임대차기간에 차임을 3기분에 달하도록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에까지 임차인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계약관계가 연장되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2다58975 판결 참조). 위 규정들의 문언과 취지에 비추어 보면, 임대차기간 중 어느 때라도 차임이 3기분에 달하도록 연체된 사실이 있다면 그 임차인과의 계약관계 연장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의 신뢰가 깨어졌으므로 임대인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반드시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당시에 3기분에 이르는 차임이 연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기초로 임차인이 2017. 9. 8. 연체차임 일부를 지급할 때까지 3개월분의 차임이 연체되어 있었으므로 임대인은 그 사유를 들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따라서 임대차계약은 약정한 기간 말일에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06-02
  • 코로나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로나19가 1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마스크가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1년 전에는 마스크 구매에 요일제가 시행되었고, 약국 앞에 줄을 서는 모습은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단순히 마스크를 방역을 위해 착용하는 것을 넘어서 패션화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음을 보면서 마스크 트렌드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코로나19 이전에 마스크는 주로 환자가 착용하는 물건으로, 먼지 발생이 많은 산업 현장에서나 착용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런 전통적 사용처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은행의 ATM기에서는 모자와 마스크를 동시에 착용하면, 카메라가 이를 인식하여 현금인출이 되지 않게 했던 일도 있었다. 이제는 마스크 미착용이 비정상이 되어 버렸고, 오히려 과태료 부과의 대상이 되어 있다. 방역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엔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필수적이라는 인식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름철 소독차 뒤를 쫓아다니며 동네를 휘저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해로움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에 컥컥거리면서도 소독차를 쫓아다녔던 시절이 방역에 대한 추억이다. 명절의 모습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가족 간의 인원수 제한이라는 상상도 못 할 현상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세배를 나누어 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각종 세미나, 포럼은 온라인으로 변신하였고, 코로나 시대에 인맥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회자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도 변화가 많다. 대학생들에게는 동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에 낯설지 않다. 입학식도 약식으로 진행되고,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루기에 신입생 환영회로 스킨십을 유도하며 선후배를 익혔던 예전과는 천지 차이를 보인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봄 소풍, 운동회는 신기한 일이 되었고, 봄, 가을철 수학여행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는 요즘의 학생들이 그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하다. 소비의 관점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주로 가성비를 따지거나 경제성, 효율성을 우선시했다면 요즘의 소비패턴은 일정 양상을 찾기 어렵고, 건강, 치유 등의 감성적 소비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소위 분리의 소비에서 에고이즘 소비로 전환한다는 전문적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생활상을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면, 아마도 마스크는 적어도 우리의 일부로 진화하여 남아 있을 것이고, 비대면의 생활상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의 관점에서도 치료보다는 예방에 초점이 맞춰지는 패턴이 예측된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증대될 것이며, 소위 가성비 위주의 소비패턴에서 비용을 더 치르더라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구매 의사를 가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다. 또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바심도 든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변화시켰고, 무엇이 변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식과 기억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은 또 다른 코로나 시대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05-26
  • 찔레꽃 향기
    부춘산을 오르다가 산기슭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찔레꽃을 발견했다. 하얗게 피어 한들거리는 찔레꽃을 보는 순간, 가수 장사익의 구슬픈 찔레꽃 가락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별처럼 슬픈 꽃, 달처럼 서러운 꽃이라며 한 맺힌 소리꾼의 애절한 노래가 찔레꽃 꽃잎마다 서려 있는 듯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찔레나무는 전형적인 흙수저다. 산기슭이나 계곡 같은 수풀에서 보잘것없이 나고 자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가시덤불일 뿐이다. 그러나 꽃이 피면 생각이 달라진다. 모양도 애처롭지만, 꽃이 풍기는 향기야말로 그윽하기 그지없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나무에서 어떻게 이토록 품격있는 향기 나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를 온몸에 달고 저토록 제 몸을 단속할까?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찔레꽃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역시! 라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찔레나무는 인간에게 귀한 약재였다. 찔레는 순, 꽃, 줄기, 열매 등 모두가 약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찔레에는 사포닌, 비타민A, 비타민 C, 타닌, 아미노산, 지방산들이 다수 함유하고 있어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각종 효능이 열거되어 있다. 약성은 물론이고 미인효과와 생리통, 변비, 방광염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어린이 성장 발육과 산후풍, 관절염에도 좋다고 하니 인터넷에 나와 있는 찔레나무의 효능은 가히 만병통치 수준이다. 드디어 나는 찔레나무가 왜 그렇게 가시를 만들어 제 몸을 지키는가를 비로소 알았다. 어째서 찔레꽃에서는 그런 천상의 향기를 내는가도 알았다. 찔레나무는 스스로 자신이 귀한 줄을 알고 있었다. 선한 뜻에 바탕을 둔 자존감은 자기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시류에 초연하여 자신을 갈고 다듬어 각종 효능을 생산하는 것이다. 찔레꽃은 다 계획이 있던 것이다. 나는 찔레나무를 바라보다 시(詩) 한 수를 지었다. 낮은 곳에서/비탈길에서 /수풀 사이에서/ 보잘것없이 태어나고 자라서/ 슬그머니 핀 찔레꽃//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자긍심 하나로 버티고 살다가/천상의 향기 품어내며 꽃을 피웁니다// 휘어질 줄 아는 것은 아량이요/단단함은 지조입니다/가시는 자존감이요/푸른 잎은 소망입니다/꽃향기는 그윽한 기품/ 흰 꽃잎은 순백의 순결입니다// 오월이면 그리움처럼 피어나 /스스로 세상 향해 /향기로운 웃음을 웃어봅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한다. 처지를 비관한다. 물론 좋은 환경이나 처지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악조건이 분발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의지의 유무인 것이다. 둘러보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여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형제가 국회의원이 된 자랑스러운 분들이 있다. 서산 출신의 문교부 차관하던 분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의 겸손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찔레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교만함으로 자신을 그르치는 사람도 있다. 윗자리에 올라간 처음에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던 사람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 독단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결코 그런 사람에겐 성공이 오래가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오다 찔레꽃 두 가지를 꺾어 생수병에 꽃아 책상머리에 올려놨다. 순백색 나비 같은 꽃잎, 스치기만 해도 파르르 떨어지는 가녀린 꽃잎, 꽃말을 찾아보았다. 온화, 신중한 사랑,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나왔다. 꽃말도 꽃처럼 예쁘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我)라는 존재를 귀히 알고, 스스로 닦고 정진하여 찔레꽃 같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방긋이 웃는 찔레꽃,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다.(시인ㆍ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05-2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