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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2.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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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jpg
김풍배/ 본지 칼럼리스트

글자를 알지 못한 어머니 가슴에 ‘무식하다’라는 못을 박아드린 죄 때문에 문해 교육 강사가 되어 서부평생학습관에서 기초반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릴 수는 영영 없지만, 어머니 같은 불행한 비문해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어 어머니에게 지은 불효를 조금이나마 갚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첫 시간, 불효막심한 나의 부끄러운 고백을 앞에 계신 열세 분께 해드렸더니 모두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어느 분은 손수건을 꺼내어 연신 얼굴을 훔치셨습니다. 나는 압니다. 내 이야기가 슬픈 게 아니라 배우지 못하여 당신들께서 몸소 겪으셨던 지난날이 슬프신 것을.

 

중앙 실버대학에서 필자에게 배운 어느 어르신의 독백을 글로 써 둔 걸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세상에 계신 대산읍에 사셨던 어르신입니다. 

 

『못 배운 게 어찌 내 탓이겠습니까?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 여자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지요. 오빠만큼은, 아니 남자만은 식구가 다 굶더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못 배운 부모님의 한 맺힌 마음에 애초부터 내가 설자리는 없었습니다. 내 부모님이 져야 했던 짐을 나도 고스란히 져야 했습니다. 이제 와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만 살아온 세월이 서러울 뿐입니다.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른다고, 반지 놓고 이응(ㅇ)자도 모른다고, 가슴에 깊이깊이 서린 설움 세상천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버스를 타려면 아는 사람 없는가 두리번거리고, 모르는 길은 겁이 나서 아예 나서지도 못한 걸 세상천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돈 없는 설움도 크다고 하더이다. 자식 없는 설움도 크다고 하더이다. 하지만, 글자 모르는 설움도 그에 지지 않더이다.

 

많이 울었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울었고, 억울해서 울었고, 답답해서 울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가, 늙어서는 남편이 놔 주질 않네요. 공부 시간이 부족한 걸 하소연했더니, 여러분이 그동안 받았던 설움 생각해서 모든 걸 이기고 기회를 붙잡으세요. 용기 주는 선생님 말씀에 다 쏟아서 없는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흘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성인문해교육을 받게 되고. 이제는 어엿하게 읽고 쓰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도, 내가 사는 주소도, 사랑하는 가족 이름도 차례로 써 봅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하나 들으면 둘 잊어먹는 나이가 되었어도 잊어버린 만큼 또 들어서 좋은 글도 읽고 멋진 글도 쓰는, 그래서 남은 인생 가슴 좀 펴고 살겠습니다.』 

 

하루는 옛날 생각이 나서 은행에 가 입출금 전표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직접 쓰시는 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법은 무슨 법입니까? 금액란에 한글로 찾는 금액을 쓰고 날짜 쓰고 자기 이름 쓰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못 썼다고 하시던 할머니가 다음날 오시더니 배운 대로 해봤더니 되더라면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지금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글자가 있고 정부에서도 문맹 퇴치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인 것도 성공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인공지능 문맹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규모가 큰 식당에서 마음대로 메뉴를 골라 주문할 수도 없고, 인터넷 주문도 예매도 할 수 없어 그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의 설움을 그대로 느끼며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배움에 끝이 있을까요? 나이 많다고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알고 나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모른 대로 살지 말고 열심히 배워 시대를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도 과거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인공지능 문맹 퇴치 운동이라도 해보면 어떨지 건의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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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끝이 있을까?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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