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상을 선택한 군수
가기천의 일각일각

공병선 전 서산군수의 이야기다. 공 군수 재임(86.3~88.2) 시절 서산군이 도의 세정분야실적 평가에서 종합대상이라 할 수 있는 ‘세수 실적 최우수상’과 부문상인 ‘저축상’을 받게 되었다. 도에서는 한 시군에 상을 모아 주는 것보다 나누어 시상한다는 방침으로 군에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권고했다.
이에 군수는 머뭇거리지 않고 저축상을 선택했다. 세금징수 실적에서 최우수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세금을 잘 받았다는 뜻이 되는데 심하게 표현하면 ‘고혈을 쥐어짰다’라고 판단되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저축상은 군민들이 아끼고 절약하여 저축하는 알뜰한 기풍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더 의미가 크고 군민들의 살림살이가 넉넉한 고장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야구라면 MVP를 포기하고 골든 글로브쯤 받은 셈이었다. 공 군수의 이야기를 듣고 행정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교훈을 얻었다.
세금이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에 따라 국민과 주민, 법인에게서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이다. 국가가 구성원인 국민 등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회비’라고도 할 수 있다. 납세는 국민의 5대 의무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제도로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세금은 죽음과 함께 인간이 피할 수 없다. 심지어 죽은 뒤에도 따라다닌다. 그 때문에 세금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재원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주민 복지와 개발 사업 등에 투입한다. 따라서 세금 즉 재정이 없으면 마치 자동차에서 기름이나 전기가 없는 것과 같다. 세금은 대가 없이 거둬들이는 것이기에 제도가 정교해야 하고 공평해야 하며 매기고 거두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장관이 ‘세금은 거위의 깃털을 뽑는 것처럼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한 정부 고위 관료가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세종은 ‘정치를 잘하려면 세금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라며 ‘백성에게 거두어들이는 것에는 일정한 제도가 있다’라는 의미로 취민유제(取民有制)를 과거시험 문제로 냈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는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여 백성의 부담은 줄이고 대신 양반층과 땅이 많은 지주들의 부담을 크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세종과 영조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서산읍사무소에 세 번 근무하는 동안 주로 재무계에서 일을 했다. 담당업무는 모두 수입 사무였다. 읍민들이 찾아와 내는 세금을 받고 공무원들이 받아오는 세금을 정리하여 군 금고에 불입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공무원이 된 지 6개월, 재무계에서 일한지 1개월 만에 수납부 정리, 일계표 작성, 불입 절차 등 업무를 체계적으로 개선하여 읍면 재무계장들에게 수범사례로 발표하기도 했다. 체납세금 일제정리 기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하루는 마을에 출장 나가 세금을 받으려는데 한 납세자가 현금이 없다며 달걀이라도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다시 찾아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그냥 달걀로 받아왔다. 달걀꾸러미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게 무엇이냐?”라고 물은 부읍장이 “세금이니까 금고에 넣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미심쩍게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으려니 직원들이 다가와 “혹시 상했을지 모르니 확인해 보아야 한다.”라며 하나씩 들고 달걀 양쪽에 구멍을 뚫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빨아 먹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러면 공금을 횡령하는 것인데요.”라며 반 농담을 했다. 세금은 필자가 채워 넣었다.
돌이켜 보면 낭만이고 재미였다. ‘유흥음식세’라고 있었다. 다방, 음식점 등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다른 세목보다 체납율이 높았다. 때로는 체납처분을 했는데 사실 값이 나갈 만한 압류대상물은 많지 않았다. 어느 음식점에서 압류한 ‘전축’을 읍사무소로 가져와 당직실에 보관했다. 전축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직원은 호기심에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노래를 듣기도 하였다. 지금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밀린 세금 때문에 갓 결혼한 며느리 앞에서 민망한 표정을 짓던 시아버지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군청 고위 간부가 엽총소지허가 면허세를 체납했다. 아마 잊고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재무계장은 우편엽서에 빨간색 글씨로 인쇄된 독촉장을 보냈다. 모범이 되어야 할 간부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원칙대로 보내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기개가 잊히지 않는다.
세금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이고 정부의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 흔히 세금을 ‘혈세’, ‘고혈’, ‘세금 폭탄’과 같은 표현처럼, 세금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공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고 했다. ‘호랑이보다 가혹한 세금이 더 무섭기 때문’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공 군수는 이 고사성어를 의식했을까? 문득 공감 가는 명분을 선택한 공 군수의 의식과 지혜롭게 일한 방식을 떠 올린다./전 서산시 부시장 <ka12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