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쏴라 -백선엽 장군의 6.25 전쟁 이야기-
김풍배 칼럼

6.25가 다가옵니다. 벌써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느덧 75년이나 되었습니다. 포성은 들리지 않더라도 전쟁은 진행형으로 휴전의 상태지만 여전히 위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발발의 날 6‧25 하면 꼭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부동 전투의 영웅 백선엽 장군입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란 말입니다.
이 말과 같은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입니다. 이 책은 2010년 중앙일보에서 발행한 6.25 발발 60주년 행사로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백선엽 장군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는 머리말에서 2010년,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회고하면서 아흔의 나이에 남겨야 할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쟁을 잊지 않으려는 세대,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알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조국 전선을 지키려다 사라져 간 수많은 영령이 그 희생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을 기억함으로써 이 땅의 안보가 더욱 굳건해져 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길이 열릴 때 먼저 간 호국영령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선전포고 없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이때 남한에서는 6월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장병의 2분의 1 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으니 전방 부대 장병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전쟁 40일 만에 낙동강 일대를 제외하고는 전 영토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때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6월 25일 전쟁 발발 후 후퇴를 거듭한 끝에 낙동강까지 밀려왔습니다. 다부동의 마지막 저지선이 뚫린다면 대구는 그대로 적의 수중으로 넘어갑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독립한 지 2년밖에 안 된 대한민국이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미군은 그 경우를 대비하여 밀양 지역에 저지선을 설정했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북한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밀양은 한반도에 상륙한 미군들이 일본 또는 자국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 철수 시간을 버는 개념의 저지선이었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생각에 생각을 더할수록 이 다부동 전선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다면 미군의 막대한 지원도 없을 것이다. 반드시 이곳은 지켜야 한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다부동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밀고 밀리는 싸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저들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
그는 권총을 빼 들고 적들이 넘어오고 있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앞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부대원들이 앉아있는 대열 한가운데를 가르면서 뛰어나갔습니다. 그가 대열의 가장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대원들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에서 함성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투는 시작되었고 기적의 승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부하들이 기적의 승리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단장이 앞장서서 싸우는데 어느 누가 꽁무니를 뺄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8월 23일 새벽 2시 야간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유학산 837고지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이렇듯 국군 1사단은 장교 부사관, 병사들이 투혼을 발휘하여 방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의 사상자 1만여 명, 적군 사상자 1만 7,500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국군에게 자신감과 힘을 실어주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 지켜낼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준 다부동 전투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 전투였습니다.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진 이런 자기 희생정신이 바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소련이 몇 년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평화적 수단으로만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머지않아 다른 국가에 흡수될 것이다’ 리처드 닉슨의 말을 상기합니다. 이 땅은 백선엽 장군 같은 선열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나라입니다.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 차려 호국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