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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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사랑 보훈공원 조성 절실”
    “흩어져 있는 보훈시설 한데 모아야”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경제발전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ㆍ헌신 때문” 6월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충성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달이지만 그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있다. 현충일에 조기를 게양하고 추모 사이렌에 묵념을 하는 연례행사조차 생활속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서산타임즈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8일 서산시보훈단체협의회 조문호(77) 회장을 만났다. 조 회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은 소회에 대해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고 있지만 호국과 보훈은 국가에 닥친 어려움을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우리 국가 유공자들은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서산시보훈단체협의회는 상이군경회, 전몰군경미망인회, 전몰군경유족회, 6.25참전유공자회, 무공수훈자회, 고엽제전우회, 월남찬전자회, 특수임무유공자회 등 8개 단체, 15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 회장은 성격이 다른 단체가 하나로 연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유사하면서도 다른 단체들을 ‘보훈’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어울려 공동체를 만들고 협동심을 발휘해 하나의 국가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연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원활한 업무와 단체 간 효율적ㆍ체계적 공동대처와 대외기관 단체와 업무 협조에서 유익하고 회원의 체계적 관리 및 고른 복지혜택 등 회원복지 증진을 위한 공동 추진에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의회 주요사업에 대해서는 각 단체의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의 활기찬 노후생활을 도모할 수 있는 각종 건강ㆍ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이 보훈복지문화대학이다. 서산시의 지원으로 도내 최초로 설립된 보훈복지문화대학은 매년 40명의 지원생들에게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충남서부보훈지청 지원으로 운영하는 ‘건강문화 프로그램’과 ‘현충시설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현충시설 탐방 프로그램은 일반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어 애국심 함양에 도움이 되고 있다. 조 회장은 현재 서산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훈시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시민들이 현충시설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올바르게 기억할 수 있도록 흩어진 시설들을 한 곳으로 모아 ‘나라사랑 보훈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잠홍동에 있는 나라사랑공원도 공원 명패조차 없는 무늬만 나라사랑공원이라며 최소한 나라사랑을 의미할 수 있도록 서산시가 관심을 갖고 나서주길 희망했다. “6월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와 경제발전은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과 참전용사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6월 호국보훈의 달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금 되새겨보고 우리의 애국심을 다지는 뜻 깊은 한 달이 되길 바랍니다” 정리=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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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9
  • “미인(美人)은 없습니다”
    “누구나 미인이 되기를 원하고 언제나 미인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누구도 진정 미인의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사실 미인은 없다. 미인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렸다. 아직까지 자기가 본 얼굴의 평균이 기준이 되고, 교육으로 얻은 가치관이 여기에 더해지고 또 여기에 동물적인 본능이 가세하면 그 개인에게는 완벽한 미인으로 보이는 것이 원리다” 조용진(71)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을 지난 6일 만났다. 그는 국내 제일의 얼굴 학자다. 한국뇌학회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평생을 독화법(그림 읽는 법, 동양전통의 그림 뜻풀이)과 미술해부학 연구에 매진해왔다. 조 원장은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과 관련 가로림만에 ‘독화원(讀畵園)’이란 이름의 정원을 만들면 세계에서 유일한 전통지식의 보고가 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동양 그림에 그려진 동식물의 의미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하면 가로림만 개발과 연계한 콘텐츠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며 제법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했다. 조 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되기로 결심했다.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1968)하고 가톨릭의과대학에 7년간 정식해부학자로 입문했다. 그 후 일본 동경예술대학 미술해부학 박사(동양인 얼굴형상비교 논문)를 취득했다. 서울교대 미술학과 교수, 온지학회(한문학회) 회장, 한서대학교 미용학과 교수겸 부설 얼굴연구소장, 한국뇌학회 이사 및 한국뇌연구원 설립추진실행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일본미술해부학회 이사, 조용진 한국인대학 유튜브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서산출신 천문학자 류방택(1320~1402)선생의 얼굴을 복원하기 위해 서령고와 서산여고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서산인 형질조사를 했다는 그는 서산인은 남녀간 차이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서산인에는 여자는 남방계, 남자에서 북방계가 강함은 북방계 남자의 형질적 영향이 컸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산인의 뇌과학적 특질은 문학을 해도 운문인(시인)이 많은 우뇌형으로 좌뇌의 각성수준을 높이는 문화장치를 개발하여 생활에 가깝게 해야 된다고 했다. 좌뇌의 각성수준을 높이는 일이란 개인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길게 사고하는 습관이 기본, 자발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고, 초중등학생은 3개월, 청년기 6개월, 장년기에도 2년이면 변화가 온다고 했다. 조 원장은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은 거의 다 이루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한서대 미용학과 졸업생들을 통해 젊은 엄마들에게 뇌과학지식의 보편화를 꾀하고 좌뇌각성운동을 펼치고 싶었으나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1977년 고교 생물교사였던 고예영(68)여사와 중매결혼하여 1남2녀를 둔 그는 해부학을 하면서 생물학을 전공한 부인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문체부 국가표준영정, 동상심의위원을 23년간 역임했다. 저서로는 29세 때 지은 ‘불상계측법’을 비롯해 ‘동양화 읽는 법’, ‘한국인의 얼굴’,‘루터한복총상화제작 일지’,‘한국인의 얼굴, 몸, 뇌 문화’, 등이 있다. 고려 광종때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1천년 지속된 과거제도의 후유증으로 한국인 뇌의 불균형이 발생하므로 우리 민족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였다는 조용진 원장.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에 ‘독화원’을 설립하여 한국인의 약한 것을 보완하여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과 국민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K-garden의 창출 계획이 오래도록 머리를 맴돈다. 부디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조성 계획이 확정되어 그가 마지막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길 조심스럽게 기원해 본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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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9
  • 대학 교수가 된 ‘농협맨’
    김창환(63)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 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농협맨이다. 지난 2016년 1월 대산농협 상무로 명예퇴직하기까지 39년 동안 농협에서 농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공주대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농협맨에 이어 대학교수로 제2인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인생스토리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 교수는 대산읍 대로1리 광암마을에서 농부인 김동추(1926~2008)씨와 이정여(87) 여사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산초와 대산중을 졸업하고 부친이 마을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대산농협에 기능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으로부터 천자문, 사자소학, 채근담, 명심보감, 통감 등을 통해 배운 천지의 이치를 순차적으로 터득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1980년 그의 나이 22세에 서울경복고 부설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그리 쉽지 많은 않았다.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집에서 서산터미널까지 28km를 오토바이로 달려 다시 서산터미널에서 용산까지 버스로, 용산에서 학교가 있는 종로 효자동(경복고)까지 시내버스로 이렇게 3년간을 통학했다. 집에 도착하면 밤11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이렇게까지 학업에 열중한 이유는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부친께서는 남한테 공짜 술이나 밥을 먹지 말라,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신뢰를 잃지 말라.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했다. 그 꿈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의 배움의 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여년이 지난 만학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방송통신대(2000년)를 졸업하고 공주대에서 행정학 석사(2012년)와 박사(2018년)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9년 9월 공주대 겸임교수로 임용되면서 그가 어릴 적 꾸었던 꿈과 희망을 이루었다. 김 교수는 지역사회 발전은 지도자의 역량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그는 청년시절 JC활동을 시작으로 학교 운영위원장, 대산읍 명예읍장, 서산경찰서 범죄예방위원장, 대산읍체육회부회장, 대산읍청장년연합회장, 대산장학회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다양한 조직에서 역량을 키워왔다. 요즘도 그는 겸임교수와 함께 서산시 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강사로, 한국풍수명리총연합회 자문위원으로 충남도의회 정책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농협중앙회장 표창, 공주대학교 총장 공로패 등 39회에 걸쳐 수상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2005년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산JC 특우회장이었다며 삼길포 우럭축제의 필요성을 공감한데 대해 매우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축제 예산을 보조해 주어 대산JC 주관으로 처음으로 우럭축제를 개최한 것이 지금은 서산의 대표적인 축제로 성장했다고 했다. 1983년 대산우체국에 근무하던 가경순(63. 서산시의용소방대 여성회장 역임)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뒀으며 모친을 모시며 살고 있다. 좌우명은 관즉득중(寬則得衆ㆍ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이다. 김 교수는 사람이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성취 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좋은 여건을 가진 선망의 대상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전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뛰어 넘는 것이 더 값진 것임을 알았다는 그는 오늘도 지역 봉사자로서 지역을 걱정하고 지역발전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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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공직 접고 심마니가 되다
    심마니는 산삼을 캐는 사람을 일컫는다. 현실보다는 마치 옛 소설에나 등장하는 인물처럼 일반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다. 필자는 지난 23일 ‘심마니’를 따라 산삼 캐는 현장을 따라가 보았다. 홍영선(57) 한서심마니산삼협회장과 함께한 3시간 동안의 심마니 체험은 매우 엄숙하기까지 했다. 홍 회장은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농어촌마을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예산농전(현 공주대)을 졸업하고 지방행정직 9급 시험에 합격하여 태안군 근흥면사무소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대학시절 만난 이현애(53)씨와 결혼도하고 첫 딸을 낳았지만 정신지체 2급(몽고증후군의증)진단을 받았다. 홍 회장은 이런 딸을 위해 휴일이면 약초를 구하러 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홍 회장은 평소 넓은 토지에 염소목장을 경영하면서 농사를 짓는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마지기도 없는 처지여서 산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1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산삼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딸아이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홍 회장은 산삼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심마니’가 된 이유다. “고려인삼의 맥을 잇는 산삼 1인자가 되겠다는 결심도 이 때문”이라는 그는 “어떤 부모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삼의 실체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옛날 약이 되는 산삼,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산삼, 진짜 고려 인삼을 찾는다면 정말 노다지라는 생각도 했다. 홍 회장은 자신의 결심을 구체화하기 위해 1987년 산삼동호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2001년 한서심마니 산삼협의회를 창립했지만 법인화 등 법적제도 장치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 “고려 인삼재배의 시대적 변천과 효능의 우수성은 세계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고려인삼이 곧 산삼이기도 합니다” 그는 산을 이용해 소득을 올릴 수 있고 관광, 의학, 건강 등을 테마로 산업화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발전에 큰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 일을 심마니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로 길러내면 지역적, 국가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홍 회장의 설명이다. 홍 회장은 국내 산삼감정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세월호 유병언 회장의 산삼을 감정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국인의 밥상’과 ‘아리랑프라임 전통심마니 다큐 촬영’은 물론 서산시농업기술센터 음성인삼특작부 연구원, 한국산삼학회 추계학술대회 등에서 강의를 통해 심마니로서 올바른 산삼을 전하는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 회장은 그동안 선배 심마니한테 물려받은 지혜와 자신이 전국의 산을 발품 팔아 얻은 정보와 지식을 집대성한 ‘전통심마니가 전하는 산삼감정기법(2007)’과 산삼 먹는 법 대장심마니(어언 심마니)를 위한 ‘진의 비밀(2011)’등 2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요즘은 초보 심마니를 위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딸의 건강을 위해 산삼을 캐기 시작한 홍 회장은 이제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한국 제1의 심마니로 오늘도 산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더구나 대구한의대학을 졸업한 막내아들 도균(27)씨가 아버지 대를 이어가고 있어 더욱 든든하기만 하다. 특히 홍 회장은 2005년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각 읍면동에 야생삼(산양산삼) 심기사업을 할 때 재배기술 자문역할을 했었다면서 이 사업이 계속해서 진행됐더라면 지금쯤은 더 큰 성과로 이어졌을 것이라며 이를 매우 아쉬워하기도 했다. 현재 운산면 가좌리에서 ‘심마니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누구든 언제든지 오면 산삼차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홍 회장의 그동안의 노력과 집념을 확인하면서 서산이 산삼으로 유명세를 떨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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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5
  •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옵니다”
    방송인 이상벽(74)씨는 북한 출신이지만 현재는 충남사람이다. 내포(홍성)에서 살면서 서산 지곡 금박골 마을에도 집이 있어 서산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내포에서 만난 이상벽 씨는 “서산은 상서로운 곳이며, 양반님들이 사는 곳이어서 좋다”며 필자를 반겼다. 사실 몇 개월 전 그를 만났을 때 그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정연한 세상사,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에 감탄을 하고 이날 인터뷰 약속을 했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50년이 넘도록 국민의 사랑을 받는 MC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홍익대학교 3학년 재학 때다. 홍익 캄보밴드를 만들어 TBC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으면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서울 세시봉 음악감상실로부터 초청공연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고정 사회자였던 TBC 이백천 차장이 바쁜 일정으로 오지 못했다. 대신 올라가 팀을 설명하고 제작과정을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1시간 동안 사회를 봤다. 뒤늦게 도착한 이백천씨가 이를 지켜보고는 가수 김상희씨가 진행하던 청춘잼버리라는 프로그램을 맡도록 주선했다. 그 후 CBS라디오 명랑 백일장을 맡고, 경향신문 연예부 기자를 거쳤다. 그가 진행하는 MBC TV주부가요 열창은 주부대반란, 사회대반란을 일으켜 세계각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아침마당은 2.5%시청율에서 2달만에 10%올리는 등 MBC 가요콘서트, 이상벽의 살맛나는 세상 등 프로는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MBC 방송연기대상(1986,1988), 문화체육부장관표창(1997), 제25회 한국방송대상(1998), 신의주학생의거 기념 청년의 날 대통령상(2005)등 수많은 수상을 했다. 저서로는 「이상벽의 연예수첩」, 「부리로 선 앵무세(컬럼집)」,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등이 있다. 인간관계가 좋아 문화예술인 등 전국에 절친이 많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세계스타가 된 윤여정(74)과 동갑내기 친구이다. 윤여정과 함께 20대 청년시절 세시봉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했다는 그에게도 별의 순간이 올 것이란 기대를 했다. 이상벽 선생의 활발한 활동을 보면서 열정은 사람을 늙지 않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매일 매일 중요한 한 가지 ‘꺼리(일)’를 만든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든지 원고를 쓰든지 내일 할 일을 미리 생각하고 잠자리에 든다. 일기예보를 보고 날씨에 따라 할 일을 정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특히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 가지 재주를 가질 것을 조언했다. 여러 가지 재주보다는 한 가지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발견하고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한 가지 재주를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AI시대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는 그는 섹스AI시대 등 상상할 수 없는 세상과 상상하지 못하는 직업세계를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홍성 금마에 어머니(김신자ㆍ97) 명의로 집을 지어드리고 문패도 달아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시는 모습에 행복해졌다는 이상벽씨는 앞으로 사진, 미술 등 대중문화예술가, 기자, 장교(ROTC7기),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진행자로 쿵 찍는 피리어드(큼직한 마침표)를 남긴 멋있는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와의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유명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지와 피나는 노력이 그를 유명한 방송인으로 만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그의 딸 지연(46)씨는 KBS아나운서 출신으로 현재 EBS '오후 1시'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그는 홍성 정도휴게소 2층 미술관에서 ‘이상벽 옛 기와아트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오는 7월1일부터 15일까지 서산시문화회관에서 미국 글로벌 이베이 200억 런칭 작가인 박수복 화백과 함께 2인 특별기획 전시회를 갖는다. 그의 문화예술에 대한 역량과 비전이 서산, 홍성, 충남을 넘어 한국의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응원한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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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9
  • “최고의 문화공연 유치…25만km 달려”
    서산시문화회관 공연기획 담당인 김양태(58) 공연기획자를 만난 것은 서산 출신 희극인 윤문식의 서산 공연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지친 어버이들에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가정의 날 특별기획 공연으로 오는 21일 서산시문화회관에서 「윤문식의 싸가지 흥부전」이 열린다고 했다. 윤문식 희극인과는 서산 중앙고 선후배 관계로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서산시 홍보대사로 위촉하여 서산 홍보에 큰 역할을 했었다. 김양태 공연기획자 역시 2002년 민선 3기 서산시장 재직 당시 열정적인 공직자로써 뛰어 넘는 매력을 발산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KBS전국장사 씨름대회에서 서산 6쪽마늘을 엮은 목걸이를 씨름장사에 등극한 선수에게 걸어준 일, 제54회 충청남도 도민체육대회 개회식에 군악대, 축하 비행 등 체육업무 실무를 담당하면서 전국대회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해왔기에 그의 공로를 칭송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가 공연기획 실력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나있다. 전국 230개 회원기관으로 구성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법정법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으로 전국의 공연 기획자들과 활발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서산에 다양한 장르의 고품격 공연이 유치된 데는 그의 이러한 네트워크와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그는 국립발레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등 국공립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을 매년 유치하여 서산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에 전문관 제도가 도입되면서 2019년 서산시 첫 공연 전문관으로 발탁된 그는 요즈음에도 시민들에게 최고의 문화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 등을 방문하여 벤치마킹 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달린 거리만 해도 25만km에 달한다. “고품격 문화도시는 시민이 공연문화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라는 그는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하는 전국 제일가는 문화공연을 위해 실무자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문화예술인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공연시장이 붕괴 되어 많은 예술인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안타까움을 보면서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한없이 고맙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서산시에서는 서산 문화예술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기량이 우수한 서산의 문화예술단체의 서울 공연을 추진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수도권의 출향인사를 초청해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개최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추진해 서산인의 자긍심을 심어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태안 남면의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남진초 5학년 때 학교대표로 서산교육청(현 태안교육청) 주최 학예발표대회에서 동요‘과꽃’을 불러 입상하는 등 어린시절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남면중과 서일고(6회)를 졸업하고 공주대 재학 중 군에 입대해 육군하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1986년 서산지적공사에서 아르바이트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서산군 재무과, 석포지구 개발지원사업소, 서산시 내무과, 총무과, 공보담당관실을 거쳐 현재 서산시문화회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창의와 열정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2011. 12. 31.)과 서산시 자랑스런 공무원상(2014. 5.) 등을 수상 했다. “서산문화재단 출범으로 문화예술인들의 기대가 커졌지만 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전시장, 공연장 등의 공간마련이 시급한 실정” 이라는 그를 바라보며 예능에 대한 감각과 열정, 문화예술에 대한 ‘끼’가 공연을 통해 서산시민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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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1
  • “세계 100개국에서 조공 바칠 풍수”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작할 당시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전국협의회 공동회장으로 활동했던 권문용(78) 전 서울시 강남구청장이 지난 2일 서산을 방문했다. 당시 서산시와 서울 강남구는 문화교육 교류협약을 체결하여 강남 대치동 최고 강사들의 강의를 서산지역 학생들에게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민문화욕구 충족에 많은 도움을 주는 등 인연이 깊다. 충남 연기(현 세종시) 출신인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날 오랜만에 만난 권 회장은 약 450여 년 전 토정비결로 유명한(실학의 선구자)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 1517~1578, 중종 12년-선조 11년) 선생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산현감을 지낸 토정은 풍수지리의 대가로 40년 후 발생할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했지요. 그런 그가 대산 황금산에 올라 주변을 둘러 본 후 ‘어허, 몇 백 년 후 100개 나라에서 조공을 바칠 풍수로다’이렇게 예언했다”는 것이다. 조공은 곧 오늘날 무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산이 경제, 산업, 문화, 물류 등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필자가 가로림만 프로젝트를 입안한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오원철(1928~2019) 경제2수석을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오 수석은 “가로림만은 앞으로 전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보배”라고 했다. 그는 최근 서산시가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조성사업 추진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고, 예타조사가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세계에서 으뜸가는 귀한 갯벌, 출렁이는 바닷물에 찬란하게 반사되는 햇빛, 장관을 이루는 석양, 70km가 넘는 숲으로 둘러싸인 둘레길 등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의 풍광은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다. 그는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이 세계적 시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권 회장은 70년대 후반 경제기획원 투자심사국장 시절 남덕우 부총리의 지시로 예비타당성 제도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는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풍광의 변화’, ‘생태의 보전’같은 가치는 돈으로 따지기가 아주 어렵다. 양재천 사업을 하면서 이런 가치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양재천 사업이 끝나자 주변 아파트 값이 올랐는데 이는 분명 보이지 않는 가치가 불러온 상승효과라고 강조했다. 양재천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200억 원이었으나 이것이 불러온 경제효과는 수 조원이었다고 했다.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사업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이와 같은 가치를 꼭 평가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수도권 외곽을 모두 연결하는 총연장 280km의 제2의 수도권 순환고속도로가 2025년경 개통되면 2000만 수도권 인구가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의 높은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회장은 서산에 대한 토정의 예언을 믿고 있다. 서산이 지금의 싱가포르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사업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면 가로림만 프로젝트와 함께 충분히 실현이 가능하다는데 공감했다. 권 회장은 민선1기~3기까지 내리 3선 서울 강남구청장을 역임했다. 경기중ㆍ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HULT경영학석사, 제4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1990)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1급, 차관보급) 등 국가요직을 역임했다. 녹조근정훈장 등 많은 수상과 ‘투자심사편람’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은정(71) 여사와 사이에 1남2녀가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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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5
  • 이순 앞둔 노총각의 전원일기
    지도영(59) 도영화원 대표는 총각이다. 서산에서 대산방면 20km 지점 금박골(지곡면 환성1리)이란 마을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2km 지나면 야생화가 만발한 2000평 규모의 정원이 있다. 이곳에서 그가 홀로 살고 있다. 지난 25일 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필자가 2005년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경지정리 민원을 해결할 수 있어 정원을 조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신응식 전 서산시의원을 통해 식사를 한번 하자며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당시 주민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리더십에 감동했다며 고마움을 마음에 담고 살고 있다고 했다. 당시 민원해결이 오늘날 부(富)의 원천이 되었다고도 했다. 지 대표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요즈음도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고 보람이다. 그가 살아온 삶이 궁금했다. 지 대표는 농부였던 부친 지병학(1915-1983)씨와 김영곤씨(1923-2009) 사이에 5남 5녀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곡 대성초와 대산중, 서령고를 졸업했다. 공부가 하기 싫어 대학진학은 포기했다. 대신 대학 나온 친구보다 먼저 성공하겠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졌다. 처음에는 15마지기(3000평) 논농사를 지으며 삶을 설계했다. 그러면서 농사지어 모은 돈으로 한우(비육우) 11마리를 구입해 22마리가 되기까지 복합영농을 시도했다. 농업과 축산업을 병행하면서 평소 소망했던 카페를 개업했다. 그러나 카페 운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를 포기하고 1992년도 대산에 장인가구 대리점을 개업했다. 이것 역시 재고가 쌓이는 바람에 부도의 위기를 겪었다. 확실한 시장조사, 좁은 상권 등 지역 여건 조사가 미흡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러던 중 평소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는 늘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등 가까운 사람에게 절대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모아둔 돈을 건네주었다. 부모가 자식 이기는 사람 없다고 어머니는 늘 자기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컴퓨터 바탕화면에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 살았기 때문에 결혼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 생각에 우울증이 걸리기도 했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지냈지만 병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이러한 생각은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한 이후 접었다. 담당의사가 “이 병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걷는 것이다. 운동을 해라. 이겨내라. 약도 처방도 없다”고 했다. 그는 병원을 다녀온 후 매일 아침과 저녁 시간에 1시간 30분씩 동네 길을 걸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꾸준히 걸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우울증이 완치 됐다. 의사 선생님이 무척 고마웠다.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걸었다. 걸으면 좋다. 걷는 것이 약이다. 그가 직접 경험으로 터득한 건강비법이다. 지 대표는 현재 지곡에서 지인과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1만여 평이 넘는 토지에 2천 평 규모에 정원도 조성 중이다. 꽃을 가족 삼아 평생을 살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혼할 생각을 없냐고. “꽃같이 아름다운 연인을 만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집을 나오면서 정원 입구에 있는 시비가 눈에 들어왔다. “도영화원에선 사람이 꽃으로 오고 꽃이 사람으로 온다”는 내용의 김가연 시인의 시였다. 꽃과 함께 하는 마음이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의 정원을 나섰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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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7
  • “시로 위로하고 에너지 전하고 싶어”
    오영미(55) 서산시인협회장을 만난 것은 필자와 문협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한 권의 저서를 내기도 힘든데 그녀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올리브 휘파람이 확’,‘벼랑 끝으로 부메랑’, ‘상처에 사과를 했다’, ‘떠밀린 상상이 그물이 되는 아침’, ‘청춘예찬’, ‘모르는 사람처럼’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1, 2권) 등 모두 9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래서 오 회장의 문학관과 인생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오 회장은 공주 출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상(詩想)에 대해 녹록지 않은 가정에서 1남 3녀의 장녀로 동생들을 챙기며 성장했던 기억, 유년시절 연탄가스로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일 등 어렵던 과거의 삶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학과의 인연은 공주정보고등학교 졸업과 동시 학교장의 추천으로 울산 현대중공업 특채로 의전실에서 근무하면서 사내 방송과 사보편집을 하면서다. “당시 사보는 사원들에게 지식정보의 유일한 매체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임원들의 칭찬이 오늘의 시인이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오 회장은 1988년 안경사인 박기남(62)씨와 결혼하면서 서산에 정착했다. 벌써 33년이 되었다. 이제는 서산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 정도로 깊게 정이 들었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녀는 결혼 후에 자녀교육을 하며 향학열을 재 점화 시켰다. 2006년 열린사이버대학에서 문예창작학사를 취득한데 이어 내친김에 한남대학교 대학원을 진학해 문예창작학과(2016년)를 수료하는 등 서산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에 들어갔다. 2002년 서산문학회(회장 유상동) 활동을 시작으로 그해 문예사조 ‘가야산 자락’ 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5년 문예지 ‘시와 정신’ 계간지에 ‘이슬꽃’외 5편으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어 2019년 서산시인협회를 창립하며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아라메시집 4호를 발간하고 전국 규모 공모전을 통해 지역의 청년시인을 발굴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청년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올 하반기에는 ‘스산갯마을 전국시낭송 대회’도 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윤석중 동시낭송대회’와 석동 윤석중 얼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문학 축전 등도 준비하고 있다. 오 회장은 현재 호수공원로에서 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서산지역 문단을 수준 높게 성장시켜 서산의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데 앞장서 시민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북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서산문학인들의 소통과 작품 토론의 장소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북카페에서는 시창작을 공부하고 싶은 시민이 방문하면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도 주고 있다. 오 회장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서산예술총연합회 부지부장 등 문화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서산인재육성재단 이사, 충남 도정신문 명예기자,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서산문화도시사업추진위원 등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재)서산문화재단 이사, 충남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부장관표창(2006), 제14회 한남문인상 젊은 작가상(2019), 충남문인의 최고 영예인 충남문학상 대상(2020) 등 수상실적도 화려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넘기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후회 없이 살려 노력하고 있다는 오 회장은 반백의 머리가 매력적이다. “이게 원래 제 머리 색”이라며 “자연 그대로가 좋아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에게 현재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외아들 장호(31)씨가 육사를 거쳐 현재 육군대위로 국토방위에 충실한 것과 손자손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코로나로 지친 서산시민들을 위해 시로 위로하고 에너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문학정신이 꽃 피워 열매 맺기를 응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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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0
  • [화보]서산타임즈 3개 단체 임원 이ㆍ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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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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