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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언덕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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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1.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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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본지 칼럼리스트

필자의 세 번째 소설집 ‘에덴의 언덕’이 출간되었습니다. 자기 책을 소개하는 듯해 주저했으나 아무 때고 한번은 써야 할듯해서 이 글을 씁니다. ‘에덴의 언덕’은 작가가 임의로 지어낸 고유명사입니다. 불교에서 ‘피안의 언덕’이 있다면 기독교에선 ‘에덴의 언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안’이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라면, ‘에덴’은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했다가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낙원)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쪽에 에덴동산을 가꾸어 놓으시고 인간을 거기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나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의 주권자임을 알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간교한 뱀의 유혹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열매는 먹음직스럽기도 했고 보기에도 아름다웠습니다. 더구나 사람을 지혜롭게 할 듯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도 인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 가지고 싶고, 더 하고 싶고, 더 올라가고 싶은 욕심으로 오히려 불행의 늪에 빠집니다. 가족 간의 불화도, 이웃과의 분쟁도, 망해가는 기업도, 국가 간의 분쟁도 모두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인간들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를 탐하여 실낙원하고도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로 인해 온갖 불행과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무소유를 설파하셨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뜻이라고 일렀습니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탐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지나친 욕심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이나 바울 사도가 말한 욕심은 모두 육신의 만족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들이 얻고자 했던 것도, 모두 육신의 욕망이었습니다. 육신을 위한 욕심은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육신의 욕망.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영혼(또는 정신)을 배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 역시 육신의 만족 못지않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영혼은 사랑입니다. 긍휼, 자비, 이해와 용서와 배려, 희생. 이런 영혼(정신)의 배부름은 피안의 언덕에 오르는 길이요 에덴의 언덕을 오르는 길입니다.  

 

욕심을 거둬내고 대신 사랑으로 채운다면 그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셨습니다. 남녀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알콩달콩 산다면 그곳이 에덴입니다. 이웃끼리 서로 돕고 아낀다면 그곳이 에덴입니다. 직장 동료끼리 사랑하고 서로 돕는다면 그곳이 에덴입니다. 나라와 나라끼리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산다면 바로 이 세상에 에덴을 만드는 일입니다.     

 

어느 불자도 말했습니다. ‘피안(彼岸: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 또는 그 경지))의 저 언덕보다 우선 차안(此岸: 삶과 죽음이 있는 세계)의 언덕에서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삶입니다. 에덴의 언덕엔 예수님이 지신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에덴의 언덕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 늘 육신의 욕망에 걸려 넘어지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때로는 목사라는 이름이 너무 무거워 숨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소설이란 이름을 빌어 쓴 글을 ‘에덴의 언덕’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올라가야 할 곳은 바로 에덴의 언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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