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0(화)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4.07.30 16:19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김풍배.jpg
김풍배/본지 칼럼리스트

 문득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어 고전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삼국지였습니다. 이미 젊어서 열 번도 넘게 읽었기에 그 내용이나 줄거리는 훤해서 흥미는 반감되었지만, 인물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읽다 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삼국지를 읽다가 세 번이나 책을 던졌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바로 관우가 죽었을 때요, 두 번째는 유현덕이 죽었을 때며, 마지막은 제갈공명이 죽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만큼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도원결의로 형제의 연을 맺고 세상 끝 날까지 형제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형제 사랑이 얼마나 진하였는지는 관우가 죽었을 때 유비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우의 부음을 듣고 난 후 유비는 큰 소리로 외마디 소릴 지르며 혼절했다고 합니다.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미음 한 숟갈 입에 대지 않았으며 그 옷자락이 눈물로 젖었는데 피가 점점이 얼룩졌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조조의 아들 조비와 그 형제 조식의 모습입니다. 조조가 죽고 그의 큰아들 왕이 된 조비는 신하의 이간질에 말려들어 조조 생전에 총애 받던 셋째 조식을 죽이려 듭니다. 조비는 조식에게 형제라는 뜻이 들어가되 형제의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시를 일곱 걸음 걸을 동안 지으라고 합니다. 만일 그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걸음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때 조식이 지었던 시가 바로 저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입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는다(煮豆燃豆萁)

솥 속의 콩은 울고 있다(豆在釜中泣)

원래 한 뿌리에서 자라났는데(本是同根生)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아대는가(相煎何太急)

 

생각해 보면 삼국지뿐이 아닙니다. 형제의 불화로 나라까지 망한 경우도 많습니다. 고구려 말 남생, 남건의 권력다툼이나 후백제의 신검, 금강 등 형제의 불화로 인하여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오늘날에도 많은 재벌이 재산 다툼으로 기업이 쪼개지고, 피를 나눈 형제끼리 원수처럼 법정 다툼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이런 형제간의 추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사례도 많습니다. 고려 말 문신 이조년(李兆年) 형제의 투금탄(投金灘)은 오늘에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억년, 이조년 두 형제가 한양으로 오던 중 운 좋게도 길에 떨어진 황금 두 개를 주어 나누어 가졌습니다. 두 형제가 한강을 건너오던 중 한강 한복판에 이조년이 황금 덩어리를 강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놀란 형이 왜 귀한 황금을 버렸느냐는 질문에 욕심이 생겨 형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 버렸다고 하자, 나도 그랬다며 형도 황금 덩어리를 강에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산 대흥면에 가면 의좋은 형제 공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도 나오는 추수 후 서로 볏단을 옮기는, 우애 깊은 형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성한 공원입니다. 세종대왕 형제의 우애는 우리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혈육은 어떤 존재일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혈육은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서로 의지하고 아껴주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으로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갈 이 세상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잠시 나를 생각했습니다.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 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문득 오래전에 썼던 ‘가벼운 그리고 무거움’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신문을 보니/ 운동화가 사과 하나 무게고/ 등산복이 계란 하나보다 가볍다/ 살아남으려면 가벼워야, 더 가벼워야 산단다// 세상은 자꾸 가벼워지는데/ 무능한 오라비가/ 마음 얼마나 무겁게 했을까?// 농 한 짝 없이/ 쫓기듯 시집가서/ 애간장 서리꽃처럼 하얗게 태울 때 // 그때도 난 무능한 오라비였다//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같이 늙어가는 여동생이/ 숨기듯 쥐여주는/ 만 원짜리 열 장// 돌아서니/ 감췄던 눈물이/ 정수리에서 발꿈치로 소리치며 쏟아진다// 세상 다 가벼워지는데/ 미련한 혈육의 정이 태산만큼 무겁다.’

태그

전체댓글 0

  • 7730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혈육은 어떤 존재일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