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추억
김풍배 칼럼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금방 생각이 났습니다. ‘충청지방우정청 우정계획과’에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봉투를 열었습니다. 감사인사장과 스마트폰용 미니선풍기가 들어있습니다. 2017년 6월이니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당시의 일들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국공무원문학은 대전에 본부가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대전이 국토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해 공무원문학 여름호를 발송하려고 대전에 갔었습니다. 전국의 회원들과 각 도서관과 관계기관에 발송하려면 그 작업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대전 시내 거주 회원들이 수고하고 있지만, 몇몇 임원들도 손을 보태야 했습니다. 작업이 늦어져 우체국 업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둔산동에 있는 우체국에 도착했습니다.
우편물을 싣고 간 차량이 막 도착할 때는 마감 시간 5여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우편물 숫자만 세어서 넘긴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었으나 다량의 우편물은 할인 혜택이 있어 따로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가장 왼쪽 창구에 앉아있던 여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더니 구비서류 작성을 도와주어 손쉽게 발송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고객이라 다소 짜증 낼 만도 했지만, 시종 웃는 낯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걱정하고 갔던 일행 모두 그 직원의 친절에 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여직원 앞에 놓인 명패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둔산우체국장에게 ‘공무원 문학’ 여름호에 편지를 동봉하여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답신이 바로 이 봉투였습니다. 충청지방우정청장에게 편지를 받은 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로 대전우정청장이었습니다. 마침 우정청에서 고객-DAY 이벤트 기간이라 했습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전 직원 모임에서 필자가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면서 해당 직원에게도 포상이 있을 거란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초록색 OMNI MINI FAN 스마트폰용 미니 선풍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당시엔 처음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봉투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 여직원의 친절은 잊히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전혀 기억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절을 받은 필자는 당시의 상황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득 남문우 변호사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사모님이 밖에 갔다 오더니 어떤 70대 할머니가 사모님에게 ‘남 변호사님이 고마워서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라고 하더랍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남 변호사님이 홍성지청 검사로 있을 때 점심시간에 식당에 점심을 주문하여 자기가 밥 쟁반을 머리에 이고 검사실에 갔는데 검사님이 직원에게“야! 저 아가씨 키 줄어든다. 빨리 내려 드려라” 지시하여 무척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사모님과 같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부인을 만났는데 남 변호사님이 “나는 아무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50년이 지난 사소한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자기가 식당 종업원으로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사람대접하지 않았는데 높으신 검사님께서 사람대접해 주는 것이 고마워서 울기까지 하였는데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더랍니다.
친절은 큰 힘이 들거나 많은 돈이 드는 게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 하나면 됩니다. 잔잔한 미소, 정다운 말 한마디, 사소한 손길 하나가 기쁨과 위로를 주며 희망과 행복을 안겨줍니다. 친절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되받는 메아리입니다. 전염성이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누구에겐가 친절의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요? 오늘 하루, 친절의 주인공이 되어보심은 어떨까요. 이제는 잭의 규격이 달라 아무 소용없는 미니선풍기. 친절의 추억을 보물처럼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