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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치국수의 추억
    예나 지금이나 분식집과 시장에서 가장 싼값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잔치국수다. 이름 그대로 잔치국수는 잔칫날 먹던 국수다. 그것도 예전에는 부모님의 장수를 축하하는 환갑잔치와 결혼잔치 혹은 아이 돌잔치 때 준비하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최근 고물가로 인해 간단한 점심가격도 대부분 만원을 초과하고 있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성비가 좋고 먹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국수나 먹을까? 라는 제안하게 되는데, 국수를 폄하해서가 아니라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어서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잔치행사를 대부분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을 선호하다 보니 예전처럼 잔칫날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격식에 얽매이고 상술에 이용당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동네잔치가 있으면 달포 전부터 품앗이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곳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 잔칫날이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손꼽아 잔칫날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마당에는 볏짚으로 만든 멍석이 깔리고 차양이라는 천막이 쳐지면 동네 어르신들께서 삼삼오오 모여들고, 부엌과 가까운 마당 한편의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고기 삶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아주머니들은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었다. 산해진미 잔치음식들이 후각과 침샘을 자극하노라면 멍석에 앉아 계시던 점잖은 어르신들마저 참지 못해 음식을 재촉하면서 왁자지껄 막걸리 잔을 비우시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누가 뭐래도 잔칫날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잔치국수였지 싶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도 잔칫날에는 무엇보다 고명으로 장식한 국수 한 그릇쯤은 있어야 제격이었고, 적당히 흥에 겨운 어르신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울려 퍼져야 제멋이었다. 지금은 경제성장과 기술발달로 다양하고 품질 좋은 식재료들을 마트에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손수 밀을 재배하고 수확하여 동네 방앗간에서 제분해다가 직접 국수를 만들었었다. 동네 방앗간에 딸린 그늘진 창고에서는 기계에서 갓 뽑아낸 국수를 엷은 대나무에 주렁주렁 걸어 말리곤 했는데, 동네꼬마들이 재미삼아 국수 가락 사이로 숨기라도 할라치면 어느 샌가 방앗간 할머니께서 기다란 장대를 흔들어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쳐 아이들을 내ㅤ쫓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분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밀 껍질을 다 제거하지 못한 밀가루로 국수 가락을 뽑으면 껍질이 섞여 까무잡잡하고 까칠까칠하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 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시던 물 국수의 감칠맛은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의 맛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농번기 간식으로도 주로 국수를 대접했었는데 집에서 손수 끓여 광주리에 담아 논밭까지 이동하다 보면 면발이 좀 퍼지긴 했지만 큰 대접에 면발을 넣고 구수한 육수를 붓고 열무김치를 고명으로 올린 한 사발의 국수야말로 농사일에 지친 어르신들의 허기를 채우고 피로를 해소하기에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국수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많이 드시라며 푸짐하게 퍼주시는 주인아주머니와 저녁 끼니마저 때우려고 허리끈을 풀어놓고 두 그릇씩 비우던 아주머니들의 정감어린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옛 풍경이 되어버렸다. 요즘도 서산시내의 모처에 가면 옛날식 국수를 파는 가게가 있는 데 큰 양은 대접에 엄청 많은 양을 주시고도 국수는 배가 금방 꺼지니까 많이 먹으라며 한 덩이를 더 주시는 아주머니에게서 그나마 어린 시절 정감을 느끼곤 한다.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모두가 힘들고 어렵지만 어린 시절 정감을 떠올리며 담대한 마음으로 희망의 지혜를 모아갔으면 한다./심걸섭 한국양곡가공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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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9
  • 뭣이 중헌디
    1893년 중국 주강. 길게 뻗은 강을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며 쏘아대는 함포. 중국의 정크선은 괴물 철선 네메시스 앞에서 하나 둘씩 침몰해 갔다. 반쯤이나 넋이 나간 중국인들은‘악마의 배’가 왔다며 베이징 조정에 떠들썩하게 보고한다. 영국. 아편전쟁 승리의 최고 공신인 네메시스. 중국은 전쟁 패전국으로 난징조약을 체결하고 덩치 큰 중국은 열강에 의해 이리저리 찢겨 나갔다. 전쟁 후 정착을 시작한 영국인들의 까다로운 입맛. 날아다니는 밥알, 찐 곡식 요리, 향신료 음식은 도통 적응이 안 됐다. 자존심 상한 황궁의 즐비한 요리사들은 영국 스타일로 튀김옷을 바른 고기와 단짠 소스의 조합으로 맛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탕수육이다. 120년이 지난 2013년. 엉뚱하게도 탕수육은 한국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하나? 부어 먹어야 하나? 찍먹이 맞다. 부먹이 맞다.” 한 온라인 유저(user)는 이러한 탕수육 논쟁을 조선의 붕당정치에 비유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부먹파의 거두 이황. 찍먹파의 거두 이이. 노론의 거두 송시열. 그는 탕수육을 소스에 오랫동안 담그는 행위 자체를 사문난적으로 보았다. 싸우지 말고 반은 부어 먹고 반은 찍어 먹자는 탕평론. 백성들은 말한다. ‘뭣이 그리 중헌디?’ 권력의 흐름은 돌고 도는 게 이치. 어제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가 되고 민심의 흐름은 누구 한편의 손을 온전히 들어주지 않기에 패자는 실망할 이유가 없고, 승자도 승리에 도취 돼서는 안 된다. 중앙과 지방무대에서 의원의 역할은 참 다르다. 민생정치를 책임지는 지방의원.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의원들의 대표이지 갑이 되는 자리일리가 있나? 대화와 타협. 약속하고 지키면 된다. ‘정해진 법과 원칙에 따라 의장이 되시면 됩니다. 그리고 상대편에서는 부의장을 하시지요. 다음에는 바꿔서 해보시지요. 왕을 뽑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만들 합시다. 시민들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시민들이 우리가 이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한여름 한 어린아이가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자기가 해보겠다며 하나둘씩 달려든다. 처음에는 그래도 집중해서 풀려고 하지만 날은 뜨겁고 풀려는 매듭은 풀리지 않고 더 꼬이자 신경질이 잔뜩 난 아이들은 실을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놀이를 시작한다. 매듭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풀릴 때까지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시작하는 것. 원점 검토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가위로 꼬인 매듭을 잘라 버리고 다시 잇는 방법. 참 쉽다. 원형 유지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제 기능은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서산시의회의 모습. 닮아도 너무 닮았다. 여기저기 다시 이어진 줄이 보기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묶음의 기능은 해낼 수 있다. 새로운 실을 사려면 앞으로 4년이나 기다려야 하니, 있는 대로 임시방편으로 쓰면 된다. 헌 실이 새 실이 될 수는 없지만, 헌 실도 새 실만큼 튼튼하다는 것을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내 탓 네 탓 하지 말고, 억울하다 하지 말자. 나는 홀로 잘했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는 식의 생각을 버리자. 양보했다고 생각하지도 말자.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부터 시작 아닌가? 각 지역구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의지를 가져야 하는 일들이다.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하는 사항들이다. 투정 부리지 말고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나가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방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당색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실로 진심 몰라서 그러는 건지 참으로 답답하다. 거슬러 얘기하자. 소스를 고기에 부어서 먹든지, 고기를 소스에 찍어서 먹든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취향대로 먹게 놔두자. 우리의 몸에 이득이 됐으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을 돌보고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4년 결코 길지 않다. 할 일이 참 많다. 당신네들! 머가 그리 중헌디? /장갑순 전 서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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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3
  • 국회의원의 몰염치와 부도덕한 양심을 告한다
    국회의원들이 53일간 국회가 멈춰 있었는데도 세비 1,285만원을 받았다. 참으로 비겁한 사람들이고 양심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국회의원 공식 연봉은 1억5,426만원이다. 이 액수만으로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직업별 평균 소득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업무추진비, 차량유지비, 사무실 소모품비, 각종 명목으로 각 의원에게 책정된 1인당 지원금 평균 액수가 1억153만원이다. 의원실마다 8명씩 둘 수 있는 보좌진 인건비로 또 5억원 안팎이 소요된다. 모두 합치면 의원실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한 달에 7억5000여만 원이 투입된다. 두 달간 4천5백억 원이 소요된다. 별도로 해외 시찰 명목의 해외여행도 국민 세금으로 간다. 국회에서 싸우거나 외유성 출장을 다니고, 법적 처벌을 피하거나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법안을 양산하는 이들에게 국민들은 수천억 원의 세금까지 주고 있다. 두 달간 천문학적인 4천5백억 원이 지급됐다. 근로자 노동자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국민소득 대비 연봉은 3.36배로 미국(2.48배), 일본(2.11배), 영국(2.23배), 프랑스(2.10배) 등 선진국 의원보다 높다. 자기 월급을 자기들 마음대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연말이면, 언제나 여야가 한통속이 돼 몰래 세비 인상안을 통과시킨다. 특수활동비를 삭감한다면서 업무추진비를 올리는 식으로 국민 눈을 속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의 경우 의회는 코로나 고통을 분담한다며 지난 2년간 세비 20%를 자진 삭감했지만, 우리 국회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세비를 올렸다. 역대 국회에서 ‘1호 법안’이 원안 그대로 가결된 것은 16대 당시 세비 증액 법이었다. 지난 국회에선 초선 당선자들이 합동 연찬회에 참석한다며 국회 내 300m 거리를 버스 6대로 이동했다. 의원들이 해괴망측한 의전이란 명목으로 받고 있는 각종 특전 또한 상식을 넘는다. 대통령제인 우리보다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는 유럽 의원들의 위상과 역할은 더 높고 크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 의원은 국가로부터 꼭 필요한 수준의 지원만을 받는다. 직접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의원들이 작은 사무실에서 수시로 야근을 하고, 의원 2명이 비서 1명을 공동으로 쓰면서 의정 활동 준비는 거의 전부 직접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일하라고 하면 당장 그만둘 의원이 많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놀면서 싸우기만 하는 한국 국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출세와 영예, 특전이 단번에 보장되니 수많은 사람이 정치판으로 몰려든다. 이들이 300개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것이 한국 정치다. 바늘구멍을 통과해 ‘의원님’ 자리를 차지하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다. 그러려면 지도부에 잘 보여야 하고, 다음 선거에 공천을 받아야 하기에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여야 싸움에 앞장서는 것이다. 정치쇼에 능해야 롱런할 수 있다. 방법은 있다. 국회의원을 일은 너무 많고 혜택은 너무 없는, 매력 없는 자리로 만들면 의원 배지 쟁탈전은 크게 감소할 것이다. 박봉에 혜택 없이 국정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무의미한 정쟁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될 것이다./김창환(한서대학교 연구교수)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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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갑질(甲質) 횡포, 이제는 안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독버섯처럼 갑질 횡포가 만연해 지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 행위를 시키는 불법행위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 구성원 간에 불신과 위화감을 조성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우리 경찰에서는 직장 내 갑질 횡포를 근절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갑질 횡포는 근절되지 않고 성행되고 있다. 갑질 횡포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 이해관계로 인해 음성화되는 경향이 있어 경찰의 적극적인 홍보 및 피해자 보호 활동이 병행돼야 실질적 단속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단속 위주의 활동에서 벗어나 피해자 보호와 관련, 관계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해 피해신고를 유도하고 적극적인 홍보와 자문 변호사 운영 등 피해자 지원 시스템 구축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활동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갑질 횡포는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무한 경쟁체재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형성된 잘못된 사회 현상으로, 나는 상대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발현된 것이라고 한다. 갑질 횡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의 사람들이나 나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누구에게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같이 가야 할 사회이지 혼자 갑질하며 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갑질뿐만 아니라 을질 횡포까지 하루속히 청산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서산경찰서 서부지구대장 경감 방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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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0
  • 여보세요, 여기가 영국(英國)이요?
    “여보세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신문, 방송, 잡지, 교수,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왜 영어로 말합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이런 영어 단어를 아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된다고 이러는 겁니까? 국민들 의사소통이 되지 않잖아요. 우리말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한글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이라며, 왜 계속 영어로 말하는 겁니까? 여기가 영국(英國)입니까? 이렇게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면 당신들이 유식해 보이는 줄 아시오? 과거 정부, 지금 정부는 뭐 하고 있었고, 뭐 하고 있는 거요? 영어 단어에 적합한 우리말을 찾아 사용하고, 없으면 우리 말을 만들어 사용해야 할 게 아니요? 왜 이걸 본숭만숭하고 있는 거요? 갈라쇼, 갤러리, 거버먼트 어토니, 걸 크러쉬,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 그래피티, 그루밍, 글로벌 스탠더드, 노멀 크러쉬, 뉴트로, 데모 데이, 데자뷰, 도어 스테핑, 도플갱어, 드라이브 스루, 디자인 비엔날레, 딥 페이크, 딩크 족, ️랩소디, 레알, 레트로, 루저, 리플, 버킷 리스트, 부스터 샷, 블로그, 비엔날레, 빅 스텝, 빈티지, 스모킹 건, 스웨그, 스타일 리스트, 스태그플레이션, 스팸, 슬로플레이션, ️시니컬, 시크, 싱크로율, 아바타, 아우라, 어워드, 애드립, ️에쓸레저 룩, 엠지세대, 엣지, 오픈 마켓, 옴브즈맨, 워너비, 원마일 웨어, ️웨어러블, 웹, 웹툰, 유니크, 이 커머스, 인재 풀, 인싸, 인플루언서, 자이언트 스텝, 젠더, 좀비, 챌린지, 카메오, 코디네이터, ️코스프레, 코호트, 커뮤니케이션, 키치, 테이퍼링, 튜터, ️티저, 파인다이닝, 패럴림픽, 팬데믹, 펀드, 피플 하우스… 한글은 마침내 영어의 발음기호로 전락(轉落)되고 말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국어(國語)를 영어로 바꾸는 편이 낫겠다. 그러면 ‘한글 전용’보다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겠소? (조환동/자유기고가·전 극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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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3
  • 여름철 불청객 성범죄 조심하자
    7월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원룸에 혼자 기거하는 젊은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상태에서 창문을 열어 놓아 성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것이 성폭력 관련 범죄 신고이다. 성폭력범죄에 대해 국가에서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성폭력범죄의 예방과 올바른 성문화의 정착 및 건전 성의식 함양을 위해 교육 및 예방 홍보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성 자신의 안전한 행동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원룸에서 주방의 창문을 열어놓을 경우에도 사람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반 정도만 열리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고, 노출의 계절이라 하여 지나치게 여성의 섹시미를 강조하는 것은 성 관련 범행의 유발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지나친 노출은 삼가야 한다. 또한, 늦은 시간 한적한 곳을 혼자서 산책하거나 자신의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의 과음 등은 범죄자의 쉬운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물론 지나친 노출이나 음주가 허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는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 자신의 안전수칙이 강조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동반하게 하는 범죄이므로 많이 신고 되지 않고 숨겨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연인 간 데이트폭력도 우려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또 해결하기 위해서는 숨기는 게 더 수치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고 경찰관서에 적극적인 신고를 하여 더 이상 여성들이 성폭력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서산경찰서 서부지구대장·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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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05
  • 백로와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저수지 산책을 나서는데 백로가 정중동(靜中動)이다. 명경지수 물 위에서 집중하고 있는 백로를 보면서 세속의 욕심을 돌아본다. “까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셩낸 까마귀 흰빗츨 새올세라. 청강(淸江)에 죠히 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포은 정몽주 선생이 태종 이방원이 초대한 연회에 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이를 경계하며 지었다고 하며 팔순의 노모께서 간밤의 꿈이 흉하다고 문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이 노래를 불러 공이 가는 것을 말렸다고 전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작자 미상이라고도 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즉 ‘검은 것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검게 물든다’로 자주 사용하는 사자성어와 함께 쓰인다. 반면 조선 개국공신 이직 시조도 있다. “가마귀 검다하고 白鷺(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즘생은 네야 하노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백로는 ‘바름, 정의, 선(善)’으로 표현하며 까마귀는 ‘그름, 부정, 악’으로 흔히 표현한다. 그러나 겉이 하얀 백로는 속살이 검고 겉이 검은 까마귀는 속살이 백색이라 한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에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석열 신정부 출범 준비, 국회 다수당의 검수완박, 정치권의 지방선거 전략공천, 네거티브 선거운동 등 나라 전체가 온통 시끄럽다. 그러기에 정치에 발 담그는 것을 진흙탕 싸움이라 하며 오죽하면 옛 선현들은 고고한 선비를 백로라 칭하며 까마귀 곁에 가지 말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정치인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입문하기만 하면 마음이 음흉한 겉과 속이 다른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이 변한다고 하여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표본이라고 까지 했을까? 내로남불 유유상종 패거리 집단으로 변하여 민생보다 힘의 논리에 의한 아귀다툼의 전장터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낀다. 순자 왕제(王制) 편에 재주복주(載舟覆舟)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수소이재주(水所以載舟) 역소이복주(亦所以覆舟)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물의 양면성을 뜻하는 것으로 물은 민심이고 배는 정치인들을 말한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항상 민심인 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잘못 사용할 때는 큰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다. 명심보감에 ‘유세막사진(有勢莫使盡) 세진원상봉(勢盡寃相逢)’이라고 나온다. “세력이 있다고 함부로 부리지 말라. 세력이 다하면 원통한 이와 서로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늘 가슴에 새겨두고 지표로 삼아야 할 말이다. 권력의 특성상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면서 이득을 나눠 먹지만 아무리 어둠속에서 작당을 할지라도 결국에는 백주에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게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세상이다. 늘 ‘바름, 정의, 선(善)’의 백로 같은 바른 마음과 행동만이 혼탁한 세상에서 고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름, 부정,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자꾸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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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9
  • 국민 품으로 온 『청와대』
    온 산야가 짙은 녹음으로 서서히 뒤덮여 가는 6월 초순, 생명의 뿌리를 내린 만물이 그 깊이를 더하고 열기는 더한층 뿜어내는 초여름에 청와대 및 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난 3일 오전 7시 30분 서산문화원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여 만에 청와대 영빈관 앞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버스안에서 문화원장님과 향토연구소장님의 인사말과 담당 과장으로부터 자세한 일정을 듣는 시간을 가져 지루한 줄 모르고 왔다. 청와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2명의 대통령이 거쳐 간 이곳이 74년 만에 개방된 현장을 마주했다. 일행 모두가 청와대를 둘러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모습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영빈관의 웅장하고 세련된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18개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태인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열었던 곳이다. 한국을 알리는 각종 민속공연과 만찬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쓰이거나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이어 녹지원을 들렀다. 별 기대 없이 왔다가 가장 반전으로 아름다웠던 곳이다. 상춘재를 지나면 바로 앞에 청와대 최고의 녹지 공간인 녹지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에는 170년 넘은 반송을 비롯한 120여 종의 나무가 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투톤’ 청보리밭은 필자의 취향을 저격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할머니부터 유모차 탄 아기까지 대가족 관람객부터 다정한 연인까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녹지원을 거니는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이어 30여만 장의 기와를 한 장 한 장 구워서 한식 건물 양식으로 지은 청와대 본관을 관람하고,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았다. 이어 산길을 올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2호인 오운정(五雲亭)에 도착했다. 오운정은 자연의 풍광이 신선 세계와 같다고 하여 오색구름을 「오운」 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개방된 청와대 경내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온갖 새들이 날아 다녔다. 경내에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5만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수궁터에 자리한 740여년 된 주목(朱木)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이가 들수록 껍질이 붉어 「붉은 주」자를 쓴다고 한다. 7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는 서울의 중심부이자 구도심인 경복궁 북쪽에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궁궐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고종 5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문무가 융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경무대(景武臺)라고 칭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총독 관저가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에는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개칭되었으며 1991년에 본관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역대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을 계획했지만, 안보와 경호상의 이유로 무산됐었다. 그러나 지금의 윤 대통령은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개방을 실행에 옮겼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대통령들의 산책로였던 경내를 걸으며 일행은 감개무량함을 만끽 했다. 청와대 개방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춘추관에서 휴식을 취한 뒤 1시에 청와대를 나왔다. 삼청동 식당으로 이동하여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 해물파전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했다.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에 창건된 조선왕조의 으뜸이 되는 궁궐로 백악산에 기대어 터를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육조거리, 지금의 세종대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경복(景福)이란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행 모두는 국립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3시에 경복궁을 출발하여 귀갓길에 올랐다. 버스는 금요일 오후여서인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세월없이 달리고 있었다. 오늘의 좋은 현장학습을 마련하여 주신 서산문화원장님의 마무리 인사말을 끝으로 버스는 서산에 도착하였고,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최병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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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7
  • 6.1 지방선거 단상
    지방자치의 본질은 바로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국민 모두의 공통된 문제도 있으려니와 우리만의 특별한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시대 우리 모두의 문제인 저출산·고령화 정책, 지방분권 문제, 환경문제, 청년실업 등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도시기능 완성과 구도심의 활력저하, 도농 복합도시로서의 장점과 갈등, 유기농의 선도적 지위와 확장, 역사문화의 강점 활용방안, 우리들만의 교육자치 부재, 귀농·귀촌의 새로운 가치접목, 주민복지가 대세인 정권에서도 숭숭 뚫린 복지정책 대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해결점을 모색해야 할 공동체적 문제도 수없이 많다. 이런 문제가 행정력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 행정가뿐만 아니라 정치가와 지역 주민들이 혼연 일체감으로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할 일들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출마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각 당의 인재풀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지역 공동체내에 흩어져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발굴해 적재적소에 배치해 보겠다는 공동체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제도적으로 지방자치 선거는 중앙당으로부터의 정당공천 배제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스스로 올바른 행정 전문가를 발굴하여 청렴선도행정을 유지하게 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 하여금 지역 내 문제의 장점을 활용하게 하고 단점을 보완하게 하며 귀농·귀촌에 조예가 깊은 인재를 찾아 새로운 방안과 가치를 접목하게 하고, 교육 전문가를 내세워 빈약한 교육자치의 첫발을 내딛게 해야 한다. 말로는 복지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복지 분야 종사자들이 수령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해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타 각 분야 다양한 문제들도 가급적 전문가그룹이 참여하게 하고 선도적 역할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색 있다는 다른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들도 결국 선진지 견학이란 경험을 통해 대동소이한 행사로 귀착되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흔히 보아왔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가 동의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우리 서산시민이 만들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고귀한 자산으로 승화시키고 동시에 시민의 자긍심을 도모하며 함께 행복해진다면 지방자치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6.1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리만 요란했지 내실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이 또한 공동체의 커다란 손실이다. 혼란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작은 행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거대담론은 아니라도 각 세대와 공동체, 개인에 따라 행복의 정의는 조금씩 다르겠으나 좀 더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있으며, 안전한 사회, 쾌적한 환경이면 우리가 행복의 조건을 몇 가지 더 갖추는 것이 아닐까? 이번 6.1 지방선거를 통해 작은 변화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소위 지방자치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나섰던 당선자는 물론 낙선자들도 이런 관점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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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06-02
  • 도신의 그대를 위한 詩 ⑪
    벽돌을 세어본다 참 길구나 슬프다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벽돌은 벽돌을 만나 벽이 되어간다 벽이 아닌 것이 되고 싶어 했을 텐데 벽돌을 쌓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평생을 살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평생을 죽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모두 벽돌을 쌓는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묻고 싶은 말이 있다는 얼굴이다 그래도 쌓아간다는 건 좋은 일 같아 좋았던 날들을 기억하려는 마음 같아서 넌 뭐가 되고 싶었니 건축학과를 졸업한 현장관리인은 줄눈이 잘 나왔다고 말했다 수평이 쌓이면 벽이 되는구나 구체적 실천만이 있습니다 미지(未知)라니요 아무것도 슬픈 게 없습니다 더는 들킬 것도 없는데 손톱은 자라고 벽이 키운 것들은 언제나 감춰진 채 따뜻해진다 그건 완성이 아니다 갱신되는 벽에 가깝다 따뜻해진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누군가를 데리러 가고 싶을 때 벽돌을 쌓는 사람이 있다 ─ 이승희, 「벽돌을 쌓는 사람들 」 감상 “평생을 살고만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평생을 죽고만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모두 벽돌을 쌓는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건 곧 무엇인가를 쌓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 되었든 불행이 되었든, 또는 즐거움이 되었든 슬픔이 되었든 말이다. “수평이 쌓이면 벽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무지의 텃밭에 수평을 만들고 의미를 쌓는다. 시인은 말한다. “벽이 키운 것들은 언제나 감춰진 채 따뜻해 진다” 라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자신 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든 벽은 감춰진 따뜻함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삶이 소중히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존재의 감춰진 따뜻함은 지켜줘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평등에 대한 존중이고 삶에 대한 존중이다./도신 서광사 주지스님
    • 오피니언
    • 기고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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