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그 땅, 논란의 마침표를 찍자
가기천의 일각일각
사람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일생을 구김 없이 순탄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란만장하거나 하는 일마다 유난히 굴곡지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하여 삶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면 불운이라고 할 수 있다.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 어느 일을 계기로 반전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땅도 그렇다.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역사를 만든다. 공연히 파헤쳐지고 들썩거린다면 말을 하지 못하는 땅도 가슴을 칠 것이다. 길지로 시선을 끄는가 하면 흉터로 외면받기도 한다. 풍수에 민감하고 이에 의존하려는 사람의 심리에는 땅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땅은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친다.
서산 시내 중심에 중앙호수공원이 있다. 공원 옆에 문화시설 용지가 있는데 이곳이 수년간 논란의 중심에 있다. 땅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땅으로서는 과거를 지우고 이제 편안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냥 두지를 않는다. 중앙호수공원 부근은 오래전에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중앙저수지라 불렸다. 저수지에 물을 채워주는 중앙천은 부춘산에서 발원하여 울음산 근처부터 몸집을 불리면서 둑을 쌓고 제법 하천의 모습을 갖췄다. 얼음이 녹으면 빨래터가 되었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타며 놀았다.
발걸음은 양유정을 지나면서 뜸해지고 태안 방면 국도에 놓인 다리쯤에서 멈췄다. 다리 바로 아래쪽에 방죽이 있었고 그 옆에 땅꾼이 살고 있었다. 공연히 으스스한 데다 풀이 우거진 둑에는 뱀이라도 나올까 봐 겁먹은 아이들이 가는 한계선은 거기까지였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고 팽이를 돌리며 겨울바람을 헤쳤다. 정월 대보름날 쥐불놀이도 그곳을 무대로 삼았다. 옷에 불똥이 튀어 구멍 난 채 돌아올 때도 신바람은 남아 있었다. 지금 중앙천은 물이 마르고 복개되어 추억마저 덮어버렸다.
환경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면서도 정화조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수처리장시설은 있다는 것조차 잘 알지 못했다. 중앙저수지는 시내에서 쏟아내는 온갖 물을 받아들였다. 부춘초등학교가 신설되면서 바로 옆에 있던 도축장도 부근으로 옮겨졌다. 악취가 풍겼다. 저수지는 신음했다. 급기야 ‘똥방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점점 멀리했다. 더하여 관개시설이 갖춰지면서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오랜 논의 끝에 개발 사업이 이루어졌다.
금싸라기 땅으로 다시 태어났고 얼룩진 사연은 묻혔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가 문을 열었다. 함께 조성한 중앙호수공원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호수공원 옆에 보물처럼 남겨 놓은 곳 문화시설 용지는 편안하지 못했다. 입지가 워낙 좋다보니 무슨 시설이든 세워보려고 눈길을 주었다. 어린이도서관, 청소년회관 등을 지으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여러 면에서 적정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으로 서령고교 앞에 문화복지타운을 조성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장래 서산의 랜드 마크를 조성할 터로 남겨두는 것이 적정하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그 후 주차장, 행사장, 스케이트장 등으로 쓰였고 한 때 매각설까지 나왔다. 그러다 최근 도서관을 건립하려고 했다가 없던 일이 되었다. 이제 공영주차장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는 일로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의 집행부와 의회 일부 의원 간 마찰이 빚어졌다. 심지어 망언 여부를 두고 진실 공방이 바깥에까지 들렸다. 이런 논란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답답하다. 땅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흔들고 있다. 수난의 역사다. 그 땅이 사람이라면 순탄치 않은 인생 역정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때마다 일어나는 논란을 끝내야 한다. 하루빨리 시민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시설을 만들어 널리 활용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깊이 있는 검토와 정책적 판단, 전문가 자문, 시민의 동의를 얻었다면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나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절차를 거쳐 제시하고,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은 적극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동차가 날로 늘어나는 현실에서 주차장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설이다. 주차장을 확보하는 일은 자치단체의 주요 과제이고, 행정 실적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도심에는 허파와 같은 녹지와 시민 휴식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는 시민 생활의 품질을 높이는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수공원 옆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위에 흙을 쌓아 녹지와 산책로를 조성하는 구상은 적정하다는 생각이다. 파리에 갔을 때 그런 시설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한정된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견을 덧붙이자면 주차장을 지을 때 기반과 골격을 튼튼히 하여 혹시 장래 필요한 소규모 시설물을 세우게 되면 다시 파헤치거나 헐어내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면 한다. 이제 하루빨리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순조롭게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