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그만 일에만 걱정하는가?
김풍배 칼럼

엊그제 자동차 추돌사고를 당했습니다. 가까운 목사님 차에 동승 했다가 뒤에 오는 트럭에 받혀 의학용어로 염좌 및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뼈에는 이상이 없으나 놀란 어깨와 허리 근육은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무거운 물건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느낌입니다. 물리치료를 받고 있으나 좀처럼 회복되지 않습니다. 남들은 입원하라고 합니다만 입원까지 할 필요가 없을 듯해 통원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추돌사고 후 뒤에 오는 차량이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더구나 커다란 트럭을 보면 더 그랬습니다. 느닷없이 덤벼들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단감 따는 감나무 밑에 있다가 정말 눈이 멀 뻔했습니다. 단감나무 가지가 부러져 얼굴로 떨어졌습니다. 휙 소리가 들릴 만큼 얼굴 가까이 날아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대여섯 개 대봉감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가지에 눈을 찔렀다면 어쩔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후로 감나무만 보아도 겁이 납니다. 앞으로 감 따는 곳엔 얼씬도 못 할 것 같습니다.
기우(杞憂)라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중국 고전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기(紀) 나라에 살던 한 남자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는 걱정 때문에 바깥출입은 물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리 없고 땅이 꺼질 리 없는 데도 괜한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가리켜 기우(杞憂)라고 합니다.
강물처럼 시내 도로를 가득 메워 흐르는 차가 덤벼들까 겁내고, 감나무조차도 없는 처지에 감나무 가지가 날아들까 걱정하는 모습에 내가 바로 현대판 기우로구나!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권력에 기를 쓰지 못하고 하찮은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하고 1원 때문에 분개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하략)
지난 3월에는 케냐에서 500여 명의 사상자와 23만여 명의 이재민을 낸 대홍수가 있었습니다. 4월엔 두바이에서 6월에는 중국에서, 지난달에는 스페인에서 엄청난 홍수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 아이슬란드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소순다 열도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인도네시아 지바 섬에서 지진이 났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유럽에선 우크라이나와 소련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핵 단추를 쥐고 있는 누군가는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엄청난 대재앙의 발톱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만 재해인가요? 삽시간에 일어나는 대형 화재는 어떤가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청나고 끔찍한 재앙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뒤따라오는 자동차의 추돌을 걱정하며 먼데 보이는 감나무 가지를 걱정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더 좋은 나라, 더 부강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터인데 정작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고 중요한 건 안중에도 없고 작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며 사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기우(杞憂)를 생각했고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음미해보았습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걱정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