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끝이 있을까? Ⅲ
김풍배 칼럼

100세 시대를 실감합니다.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국내 석학 70여 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초고령사회 대응, 시니어 스카우트 연대’ 심포지엄을 열었다고 합니다. 국민 4분의 1이 65세 이상인 지금 노인은 복지 혜택만 받을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은 “나는 1928년생이니 이팔청춘”이라며 “나이를 의식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서산이 낳은 이생진 시인도 1929년생입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참석하셔서 아직도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시 낭송을 하셨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직접 시를 낭송하시는 모습은 나이를 먹어가는 후배들에게는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20세기는 경험이 지혜가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경험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격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익혀 새로운 세상의 흐름에 동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워야 합니다. 헨리 포드는 말했습니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늙은이다.’
평생교육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은 생애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통하여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이를 통하여 자기 삶의 질을 높이고 보람을 갖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우려는 지세가 필요합니다.
선생은 어디에든 널려있습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늙은이에게 젊은이가 스승입니다. 디지털, 인공지능. 앞서가는 문명의 모든 것들은 젊은이가 스승입니다. 묻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게지요. ‘이 나이에’라는 생각으로 포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易悅好) 배우고 제때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옛날 중학교 때 배웠던 논어의 첫 구절 말씀입니다. 모르는 걸 배워서 아는 순간 그 기쁨을 무엇에 비할까요?
눈을 돌려 보면 배울 곳은 널려있습니다. 복지관, 문화원, 도서관, 주민센터는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평생교육도 그 일익을 담당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취미 생활은 물론 직업 훈련까지 제공됩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개인의 학습도 가능하지만, 함께하는 학습이야말로 서로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배움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서산문학예술연구소(대표 김가연)에서는 2022년부터 문학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5월부터 11월까지 총 7기를 개설하여 시 창작 교실을 운영하였고 2023년에는 3차에 걸쳐 문학 아카데미를 개설하였습니다. 특히 박덕규 교수를 특별강사로 초빙하여 에세이 특강을 하였습니다. 필자도 박덕규 교수의 에세이 창작 특강을 수강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우 유익한 교육이었습니다.
작년에도 서산문학예술연구소는 어김없이 문학아카데미를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기여하고 있습니다. 2월에는 ‘일상을 예술로 그림 특강’을 통해 미술과 문학과의 관계를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12월의 문학 아카데미에 필자는 이사의 한 사람으로 덕담 한마디를 부탁받아 참석했습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90대 노년에서부터 20대 여성분까지 시 창작 특강을 듣고자 오셨습니다. 참가하신 한분한분 배움의 열정 어린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평생교육은 자아실현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익히고 그로 인해 개인의 잠재적 소질을 발견하여 노후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여든 넘어 한글을 배워 시를 쓰신 칠곡 할머니들을 생각합니다. 헨리 포드는 배움에 나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배움에 끝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