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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신발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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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0.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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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볼 일이 있어 재래시장을 지나가다 간판 이름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신발 파는 가게였는데 간판 상호가 ‘개미 신발’이었습니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가게에 들러 ‘개미 신발’을 달라고 하니 개미 신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개미 신발 가게라고 했느냐고 물으니 인상 좋은 주인은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시를 좋아하느냐 물으니 좋아한다고 해서 마침 들고 있던 시집을 주고 나왔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개미 생각이 났습니다. 개미를 보며 자랐습니다. 어정거리는 개미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오죽하면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도 있지 않나요?

 

문득,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개미로 보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개미로 보였습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우리 인간들 모습이 ‘개미’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미 신발이라 했구나. 나름대로 해석하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글을 쓸 때 제일 어려운 건 제목 달기입니다. 언제나 고민하며 힘든 것이 제목 정하기입니다. 제목은 독자의 시선을 끄는 첫 단추입니다. 제목은 상점의 미끼 상품 같은 것입니다. 대개 책을 사거나 글을 읽을 때 제목이 특이하면 눈이 갑니다.  

 

어찌 글뿐이겠습니까? 사람도 이름이 특이하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판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예쁜 간판 이름 달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이름을 살린 간판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적인 표현도 있었고 재미난 이름도 있어 보는 이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예쁜 가게 이름의 간판을 보면 주인의 마음도 예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가게 주인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예쁜데 마음씨는 그렇지 않은 사람 같은, 제목은 그럴듯해서 읽다 보면 그저 그래서 덮어버리는 책 같은, 실제로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시가 하도 좋아 시를 쓴 시인을 만나 보기를 원했습니다. 우연히 그분을 만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와의 몇 마디 대화만으로 실망만 안고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저런 분에게서 어떻게 그런 글이 나왔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난 시를 믿지 않는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난 시를 믿지 않는다/그 사람을 알고 난 후부터//얼마나 달콤한 속삭임인지/ 얼마나 꾸밀 수 있는지/그 사람 시를 보고서 알았다//난 문장을 믿지 않는다/그 사람을 알고 난 후부터//얼마나 멋진 말을 지어낼 수 있는지/그 사람 글을 보고서 알았다//너도 그래/내 속에서 내가 말할 때 /나도 믿지 말라고 대답해줬다’ 

 

등단 패 받는 자리에 갔을 때 원로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한 말이 새삼 크게 느껴지던 날이었습니다. 

 

신부나 목사, 스님은 성스러운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름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도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그 사람은 차라리 이름 앞에 붙어있는 직함이라도 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간판은 어떨까요? 간판은 가게의 운명과 같이합니다. 예쁜 이름과 예쁜 사람이 운영하는 가계일수록 사업은 더욱 번창할 것입니다. 

 

내 이름 앞에 붙여진 수식어들을 생각합니다. 수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난 얼마나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개미 신발 운동화 한 켤레를 사 들고 나오며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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