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06(금)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0.12.13 17:52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어른이 되서야 하루가 금방가고 한 달이 금방가고 어느새 일 년이 금방 가는 것을 느끼지만,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지 모르겠다. 사계절마다 제각각 다른 놀이를 자연에서 찾았던 시절이었고,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내 어릴 적 겨울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매일 같이 눈이 오는 것이 겨울이라고 느꼈을 정도였다. 바람은 노처녀의 도도한 자존심처럼 매섭고 싸늘하기만 하였다.

세숫대야 들고 부엌으로 가면 엄마가 데워진 물 한바가지 부어준다. 펌프가 있는 마당에 나와 찬물 섞어 속내의 바람에 세수하고 나면 너무도 추워, 얼른 안방으로 뛰어간다. 안방 문고리를 잡을 때면 손이 짝짝 달라붙었다. 그래서 문창살을 잡고 열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면 손가락에 문창호지가 구멍이 나기도 했다. 식구들이 세수를 다 마칠 때쯤이면 아침밥상이 들어온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는 청국장 냄새가 구수하고 갓 꺼내온 김장김치엔 살 어름이 살짝 배어 있는 맛있는 아침밥상에 일곱 여덟 식구가 둘러 앉아 아침밥 먹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물 고인 논이 얼고, 큰 냇가의 강물마저 꽁꽁 얼어붙으면 우리들은 자연이 만들어 주는 넓디넓은 얼음판을 향하여 볼때기가 새빨갛게 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가로 향한다. 방학 내내 투명하고 시린 얼음 판 위에서 미끄러지며 놀았다.

조금 더 가다보면 얼음의 두께가 얇은 곳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곳을 지날 때 얼음이 꺼질 듯 쑤욱 내려갔다가 아이의 몸이 지나고 나면 다시 복원되어 올라오기도 하는데 저녁이 되기 전 누군가는 반드시 거기 빠져야 그날의 얼음지치기가 끝났다.

누군가는 반드시 빠졌던 그 날의 사고를 친 아이나, 얼음판에서 옷이 젖으면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불을 놓아 옷이랑 양말이랑 신발을 말리느라고 불가에 대고 한눈을 팔다보면 어느새 양말은 태워 먹어 덩그러니 큰 구멍이 나버려 발바닥이 휑하니 통풍이 잘 되는 구조로 변해있다. 양말 개수를 정확히 알고, 기워서 신는 게 철칙인 동네에서 그 일은 방학숙제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큰일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규칙적으로 우리는 양말에 구멍을 냈다. 겨울을 지내고 나면 아이들의 양말은 짜깁기 한 곳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훈장이었다. 그냥 모닥불만 피우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집에서 몰래 들고 온 감자나 고구마는 어느새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고, 시커멓게 된 입을 얼음물에 씻고 구멍 난 양말들을 챙길 때 쯤 엄마들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지고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아련한 목소리에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건만 아쉬운 하루해가 또 저물어 가는 그 날이었다.

차가워진 귀를 만지면 아무런 감각이 없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빨개지면서 화끈화끈 근질근질 하겠지.

방학이면 어김없이 우리 동네보다 더 시골이었던 산골짝 이모네 집으로 놀러 간다. 눈이 쌓이고 날이 추워 밖에서 놀지 못하는 날에는 뒤꼍에 새 그물을 치고 그물 앞에 벼 이삭을 뿌려놓고 참새를 기다렸다. 참새가 앉아서 모이를 쪼아 먹으면 뒷 방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소리에 놀라 참새가 엉겁결에 날아가다 그물에 걸린다. 겨울이면 그 참새를 잡아 화롯불에 구워 먹던 일들이 쏠쏠한 재미였다. 그때는 그게 잔인하고 징그러워서 사촌 오빠들이 먹는 모양을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쳐다만 보았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 야식으로 이모네 집 장독대 항아리에는 잘 익은 감이 지푸라기 얹어 켜켜이 빨간 홍시로 익어가고 있었는데 추운 밤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먹던 홍시 맛 또 한 그 겨울에 먹었던 일품이었다. 

유년시절의 겨울이 이렇게 코앞에 다가와 있는데 그 때의 동무들은 모두 어디로들 갔는가? 유년의 기억들은 하나같이 엊그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한데, 깔깔대던 어린 꼬맹이들아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북풍이 몰아치던 시린 겨울밤, 엄마가 떠다놓은 위목의 자리끼가 서서히 얼어가고 찬바람에 부르르 떨던 문풍지 소리는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겨울 동화의 한 장면으로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나 어릴 적 겨울은?||이제숙 기자의 줌마칼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