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은 어찌 보면 변신의 연속이다. 오늘은 어제의 변신이고, 내일은 오늘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화려한 변신’을 꿈꾼다.
해미면 전철리 채소마을에서 8000여평의 밭농사를 짖고 있는 심현규(51)씨도 작목을 전환해서 화훼원예 농사꾼으로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아예 마을 전체를 화훼마을로 가꾼다는 의욕에찬 농사꾼 심현규씨.
우리 농민들이 FTA 파고를 넘을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를 생각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심씨는 눈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먹을수도 있는 꽃이 가득하다며 비닐하우스로 기자를 유혹했다.
◆평생을 밭농사로
7남매 중 5째인 심씨가 가업(?)을 이어 받은데에는 그만의 농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자 하던 욕망을 밭을 통해 터득하고 그러한 가운데 삶의 지혜를 누려왔다.
평생을 밭 농사에만 전념한 집념만 보더라도 농사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 농사꾼 못지 않는다.
지난 해 8000여평의 밭에 배추를 재배하고 배추파동을 겪었던 쓰라린 경험도 간직한 심씨.배추에 물사마귀가 생기고, 뿌리역병과 혹이 발생하는 등 연작으로 인한 피해를 당한 심씨는 서산시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갖은 방법을 다써봤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심씨는 이를 대처하기 위해 저항성 품종을 개발했지만 또 배추 맛이 떨어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쯤이면 농사가 이력이 날법도 하지만 심씨는 달랐다.
◆농사에도 철학이
심씨는 도시의 직장인들이 업무가 힘들고 어려워지면 흔히 "그만두고 농사나 지을까"라고 말하는 것을 농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정말 마지막으로 고려하는 선택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도시민들의 이런 선입관은 경제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저성장이 불가피한 농업 부문을 무리하게 타 산업의 성장세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요즈음 새로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편안함이나 즐거움 같은 가치는 개발시대에는 항상 무시되어 왔다. 따라서 이런 가치를 모태로 하고 있는 농업 부문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경제적 관점에서 낮을 수 밖 에 없게 되는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자 했던 심씨는 한때 유행했던 어느 가수의 노래제목처럼 ‘바꿔’를 선언했다.
◆시설화훼로 전업
지난 80년대까지 우리의 농업정책은 증산이 목적이었다. 허나 지금은 먹거리가 넘쳐나고 오히려 살을 빼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씨가 이러한 사회적 경향을 겨냥해 작목전환을 서두른 것이 화훼원예다.
심씨는 "화훼농업은 가격하락에 크게 영향을 받지않아 안정적이고, 시설화훼를 통해 연중 생산이 가능하다" 며 전천리 채소마을을 화훼마을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화훼원예 성공예감
지난해에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농축산물 소득자료집'을 분석하면 논 3000평을 경영하는 평균 규모의 쌀농사를 짓는 경우 연간 수입이 686만원이 된다고 한다. 농업기반공사 자료에 보면 논 한 평에 평균 3만9000원 남짓이므로 우리나라 평균 논농사에 필요한 자본은 약 1억2000만 원인데, 이 자본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5.8%가 된다. 물론 평균 논농사 를 해서는 생활이 될 수 없지만 수익률만을 비교하면 소위 평균적인 재 테크에 비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농업진흥청은 같은 자료에서 동일한 면적의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쌀과 보리 등 식량작물을 재배하는 것보다 대략 3배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고 과수는 약 4배, 화훼원예는 시설비를 빼면 약 15배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시장 규모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작목이 항상 같은 수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이를 감안해도 충분한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농업은 수익률에서는 어느 산업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100만본 계약 마쳐
현재 심씨의 화훼농장에는 거리조경수인 황금사철, 아이비, 원츄리를 비롯 식용원예인 허브, 식용국화 그리고 튤립, 초화류 등 수백만본이 화훼가 그림처럼 깔려있다.
이러한 농장을 보면서 심씨는 참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현재 시설원예 300여평의 일을 심씨 혼자만의 노동력으로 해결하기에 결코 작지 않은 규모지만 심씨는 하우스에 온갖 정성을 쏟아 붓는다. 특별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력과 정성이라는게 그의 생각. 하우스는 이제 심씨에게 ‘모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재배하고 있는 화훼는 대부분 주문재배로 이미 100만본 이상이 계약을 마쳤다.
특히 심씨가 초화류를 재배하게된데는 서산지역의 거리조경이나 도로변 화분에 심어진 화종이 대부분 외지에서 들여오는데서 비롯됐다.
물론 지금까지 서산지역에서는 이러한 조경수를 재배하는 곳이 한곳도 없기 때문이었다.
◆거리조경용 화훼
요즘 시청 현관에는 가지런히 놓여진 국화분이 시민들의 눈길을 끄는데 이것이 심씨가 재배한 화훼 중 하나다.
이곳 외에도 간월도세계철새기행전 행사장이나 해미읍성에서도 심씨가 노력한 화훼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한 농부의 집념이 서서히 서산지역을 아름답고 다시 보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지역의 거리조경을 위해 기꺼이 일조하겠다"는 심씨는 조경화훼 재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잔디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한 번 증식하면 잡초도 자라지 않는다는 '아이비'를 비롯 지역농민들의 새로운 고소득원을 자부하는 초화류로 농민도 위하고 도시환경도 위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기르는 산업
농업은 눅눅하고 불결한 곳에서 노동에 시달리는 대단히 힘든 3D산업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소득과 중노동은 오랫동안 농업을 목죄어온 굴레다. 그런데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평균적인 쌀농가의 자가노동시간은 연간 234시간, 즉 약 30일이라고 한다. 작업시간에는 노동 강도가 높겠지만 연간 한 달 정도인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농업을 경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같은 자료에서 사과과수원의 예를 보면 1정보의 과수원을 가꾸는 경우 총 자가노동시간은 1222시간이라고 한다. 이 때의 개략적인 자본 대비 수익률은 대략 연 12.4% 이상이다. 이것은 적정한 규모와 농한기를 적 절히 이용할 수 있는 소득원이 있다면 삶의 질이나 생활의 여유를 감안 할 때 대단히 좋은 산업임을 알 수 있다.
선진국에서 짓고 있는 농업은 위생과 안전을 염두에 두고 자동화된 시설을 이용하며 유통 및 가공산업과 연계돼 판로가 안정된 농업이다. 이미 많은 부분에 정보공학, 생명과학과 같은 첨단 기술이 적용되고 있어 도시의 공해로부터 피난처를 겸해 전원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전도 유망한 미래산업으로 새로이 조명되고 있고 우리 농업도 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도 지방의 발전을 중요한 국가적 목표로 삼아 적극적인 지원정책과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사라져 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식 하고 보전ㆍ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또 의료와 문화시설 등 농촌의 생활복지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 도시와 문화적ㆍ사회적 차이는 많이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전원에서 가벼운 노동과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노력 한 만큼 보답하는 생명을 기르는 산업, 이것이 농업의 미래다.
◆화훼마을로 탈바꿈
서산에서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 이것이 심씨가 추구하는 현안이다.
피어있는 꽃이 더 오래 지속되게 하는 법이라든지 더 튼튼하고 불량없는 우량묘를 생산하는 것. 특히 서산지역 기후에 맞는 식물을 개발하고 찾아내는 것이 심씨의 과제로 남아있긴 하지만 심씨의 집념으로볼 때 이는 시간 문제다.
다만 시민들의 관심과 행정관청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른다면 시간은 더욱 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씨는 화훼농업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다 싶을 때 주변 농가로 이를 확대해 농민들의 주되고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전파할 계획이다.
심씨가 채소마을인 전천리를 화훼마을로 탈바꿈시킨다는 야심을 태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