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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냐 꽃이냐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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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5.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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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모처럼 도타운 정을 주고받아야 할 때 아내와 다퉜습니다. 다퉜다고 하기보단 그저 두어 마디 큰소리가 오간 것이지만, 어쨌든 다툼은 다툼이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보니 우리 집 담장 밑에 자라고 있는 풀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얼마 전에 뽑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잊고 있었던 풀입니다.

 

샛길을 따라 연이은 담장인데 유독 우리 집 담장 밑에만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담장과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풀이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느끼면서 한 포기 한 포기 잘라내었습니다. 크지도 않은 풀이 벽에 바짝 붙어 있어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제거하고 보니 정갈하고 깨끗한 길이 되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게으른 주인을 흉보았을까? 내심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어제 배달온 수필집을 읽고 있노라니 밖에서 아내의 자지러질 듯한 고함이 들렸습니다. 그 날카로운 소프라노 소리는 열어 놓은 현관문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누가 담장 아래 꽃을 다 잘라 놨다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내가 그랬다고 하니 그걸 기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아느냐며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어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풀이지 무슨 꽃이냐고 했더니 보면 모르느냐면서 반지꽃과 민들레꽃이라 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은 풀이란 생각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로 몇 마디 주고받다가 생각해보니 얼핏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아내의 입장이 뒤바뀐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명색이 시인이고 아내는 시 한 편 읽지 않는 생활인입니다. 풀을 꽃으로 보는 사람이 시인이어야 하고 꽃을 풀로 보는 사람이 생활인이어야 합니다. 그쯤에서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더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 몇 번 주고받고 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기분은 좋지 못합니다.

풀로 보느냐, 꽃으로 보느냐의 시각은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도대체 풀 아닌 꽃이 어디 있고 꽃 아닌 풀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풀로 보면 풀이고 꽃으로 보면 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나 지금이나 풀이냐 꽃이냐로 사회적 갈등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지금은 아주 당연하게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7~80년대엔 대부분 화장실이 밖에 있었던 시절, 어느 교회에서 새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문제로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설계를 끝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건축 위원 장로들 가운데 일부는 거룩한 성전에 어떻게 화장실을 교회 안에 짖느냐 반대를 하고, 다른 장로들은 요즘이 어느 땐데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서로 우기다 보니 그렇게 지체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 기도 중에 묘안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반대하는 장로에게 묻기를 장로님, 항문이 몸 안에 있나요? 아니면 밖에 있나요? 물으니 몸 안에 있다고 하자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했는데 몸 안에 항문이 있으니 화장실도 교회 건물 안에 지어도 무방한 것 아니냐 물어 드디어 고집을 꺾고 승낙했다는 교회 건축사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풀이냐 꽃이냐의 다툼이었습니다.

 

문득 오래전에 있었던 청성산 도롱뇽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청성산터널 공사 때 한 스님의 반대로 공기가 3년이나 늦어졌고 무려 145억 원 정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염려하던 도롱뇽은 잘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스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조선 시대에 있었던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던 당파 싸움도 따지고 보면 풀이냐 꽃이냐의 싸움이었습니다. 1년 복(服)이면 어떻고 3년 복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정치 현상을 바라보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거창한 명분이나 가치관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풀이냐 꽃이냐의 다툼일 뿐입니다.

 

담 밑의 풀이든 꽃이든 우리 가정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놔둬도 되고 뽑아도 되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는 것도 담 밑의 풀이냐 꽃이냐의 싸움밖에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정의 달, 부부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에도 풀이냐 꽃이냐로 갈등을 빚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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