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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기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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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1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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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 <시인·소설가>

  

세상을 살다 보면 말 잘하는 사람이 참 부러울 때가 있다. 어쩌면 저렇게 말재주가 있을까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 잘하는 사람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말 잘하는 사람과 상대하다 보면 어쩐지 속아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손해 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차라리 어눌한 사람이 더 믿음이 가는 건 그런 손해를 안 볼 것 같은 마음에서다. 그러면서도 나는 오히려 상대에게 말을 더 많이 하려 든다. 더 열심히 설득하려 들거나 변명하려 든다. 의사소통하기 위해 말을 하지만, 때로는 말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때도 오히려 말로써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실제로 어려운 건 말을 잘하기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참고 침묵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침묵의 힘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한 부인이 찾아와 상담하기를 남편이 너무 잔소리가 심하고 신경질을 내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처방을 내달라고 하자 잠시 고민하던 의사가 병원 옆에 신비한 샘물이 있는데 샘물을 병에 담아가서 남편이 말을 시작하면 입에 한 모금 머금고는 절대로 삼키지 말라고 처방했다고 한다. 부인은 의사의 지시대로 그 신비의 물을 가지고 가서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자 물을 한 모금 머금고 꾹 참고 있었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남편이 잠잠해졌다. 그 후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될 때마다 물을 머금고 있었더니 드디어 잔소리와 신경질이 줄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남편의 행동도 몰라보게 변했다고 했다. 기쁘고 신기해서 의사에게 가서 자랑하며 다시 샘물을 달라고 하니 의사가 하는 말이 남편이 변한 건 샘물이 아니고 바로 침묵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런저런 말로 어려움과 아픔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자칫하면 위로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앞에서나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 앞에서 원인을 설명한다든지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이 열 마디 말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것이 침묵의 힘이다.

미국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의 대통령 오바마는 추모 연설에서 9살짜리 최연소 희생자를 언급하며 51초간 침묵했다. 그는 그 침묵의 시간에 숨을 고르고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였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화려한 언어로 장엄한 연설보다 오히려 그 침묵의 시간에 더 많은 말을 들었고, 그리고 감동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많은 이들은 이 오바마의 연설이 최고였다고 했다. 이처럼 침묵은 수만 마디 말보다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말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문제를 겪는다.

명절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은 20대 구직자가 친지들에게 듣기 싫은 말은 누구는 취직했다더라는 말이고 결혼하라는 말도 듣기 싫은 대표적인 말이라고 했다. 살 빼라는 말도 그중 하나이다. 누구는 취업하기 싫어서 안 하는가? 누구는 시집가기 싫어서 안 가나? 누구는 살 빼기 싫어서 안 빼나? 이런 종류의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추석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무 긴 시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혹 만나더라도 말 보다 침묵을 택하자. 코로나19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치고 참을 만큼 참았다. 모두 다 어렵고 힘들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리 궁금해도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따뜻한 미소로 손만 잡아주자.

별들이 당신의 슬픔을 가져갈 수도 있다. 꽃들이 당신의 마음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희망이 당신의 눈물을 씻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침묵이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댄 조지 추장의 말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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