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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뒀다 뭐해?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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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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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오해 하나로 십 년 지기를 잃을 수도 있다. 오해가 쌓이면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망가진다. 오해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먼 사람하고는 오해가 생기기 쉽지 않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그 착각이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면서부터 오해가 생긴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조합원 한 분이 이제는 고인이 되신 L조합장과 나를 술자리에 초청하여 간 적이 있었다. 술집도 제법 괜찮은데 안주는 고작 오이 한 접시와 소주가 전부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조합원과 헤어진 후 조합장이 하셨던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 참, 이젠 오이만 보면 신물이 나는구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서글픈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농협 초창기엔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을 만나서 술 한 잔 살 때는 값이 제일 저렴한 오이와 소주를 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조합장은 오이를 제일 좋아한다며 술안주는 오이만 내놓는다고 했다. 조합 규모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조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오이가 싫다고 하세요’라고 했더니, 조합원 호주머니 생각해서 그냥 참는다고 하셨다. 이런 오해야 어쩌면 그냥 지나쳐도 큰 문제가 없지만, 오해는 자칫하면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엊그제 만난 지인도 바로 오해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고부간의 갈등으로 결국 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면서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오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설거지하고 끼었던 고무장갑을 꼭 수도꼭지에 올려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 장갑을 싱크대 옆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쳐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걸 보기만 하면 왼쪽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를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고 심지어 아들의 뺨까지 때리며 그날로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한동안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하고도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려 회복되었다고는 했지만, 참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모든 원인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느리는 수도꼭지에 올려놓은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옮겨 놓은 것이고, 어머니가 밀쳐놓은 커튼 사이로 이웃집이 빤히 보여서 그걸 가리느라 반대로 밀쳐놓았고, 거실에서 치는 피아노 소음 때문에 이웃의 항의를 받아서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먼저, 속에 있는 말을 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어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대로 했고, 시어머닌 시어머니대로 속으로만 분을 삭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섬기는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오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소통 부재로 인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자존심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때 입을 닫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나, 부딪히고 싶지 않아 참는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혼자만의 상상과 불안으로 또 다른 오해와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툭 털어놓으면 된다. 다만, 감정적이거나 직설적 표현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해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는 수학처럼 방정식이 있다고 한다.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5-3=2)하게 되고 이해(2)와 이해(2)가 모이면 사랑(4)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오해는 내 편에서 바라보는 생각이고 이해는 상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생각이다.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오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은 소통 부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일 듯싶다. 오늘부터라도 닫힌 마음 툭 털어놓고 오해를 풀어보자.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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