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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요’의 물결이 다가오는데
    고위직에 있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젊은 직원에게 오더를 주면 일부는 “이걸 왜 해야 하나요?”라는 물음이 돌아온다고 한다. 이유를 설명해줘도 끝내 수긍하지 않아 난감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규정에 있는 일이다.”라고까지 말하지만 “그렇다면 규정을 고쳐야지요.”라는 대답이 올 때는 당황스럽기조차 했다고 한다. “비록 규정이 잘못되어 고쳐야 할지라도 고칠 때까지는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다독여야 하는 현실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회식을 하자고 하면 “아이와 약속이 있다.”,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알려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시간외수당을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출근도 약속이나 한 듯 9시 정각에 맞춰 단체로 사무실에 들어온다고도 하니 그 노력이 가상하다할까? 최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3요’ 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면 젊은 직원 가운데는 “이걸 요?” “제가요?” “왜요?”라며 되묻는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하여 임원들을 대상으로 ‘3요’의 의미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자료로 만들어 나누어준 기업도 있다고 한다. 모임에서, 이런 세태를 글로 쓰고 싶다고 하니,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오히려 경향을 부추기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이유였다. 필자의 글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무엇이든 시간문제일 뿐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성세대들이 하루라도 빨리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쓰기로 했다. 변화하는 상황을 공감케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야기를 덧붙인다. 요즘 어느 부처의 Z세대 수습사무관가운데 일부의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괴담처럼 전해진다고 한다. 한 사무관이 병가를 내면서 사유에 ‘과장님 잔소리’라고 써냈다고 한다. 어느 과장은 수습사무관에게 일을 시켰는데 “못하겠다.”며 거절했다. 과장이 이유를 묻자 “나중에 저의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비상한 기개에 눌려 과장은 차마 나무라지도 못했다고 한다. 전후 맥락이 지워진 불균형한 서사가 어쩐지 의심스럽다. 과장의 상습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지른 SOS 신호는 아닐까. 정말로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면? 참된 공직자라면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게 맞는다.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좇아 너도나도 민간 기업으로 떠나는 시대에 공직에 뼈를 묻겠다는 결의를 오히려 높이 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엘리트들의 세계에서 나왔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 아니어도’라고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럴까? 하지만 한편 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청으로 전입하자 계의 막내인 필자는 일찍 출근하여 선배들 캐비닛에서 서류 상자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다. 상사는 물론이고 선배가 퇴근하지 않으면 허드렛일을 맡아하거나 하릴 없이 기다렸다. ‘가사 불구’ ‘개인사정 불구’하고 오로지 사무실이 생활공간의 전부다 시피 했다. 도민이 아니라 ‘임명권자이신’을 강조하는 상사의 권위주의가 마음에 거슬릴지라도 군말 없이 해야 했고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당시는 규범이었다. 요즘은 퇴근시간이면 “먼저 가겠습니다.”며 총총히 사라지는 젊은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중간관리자가 제일 난처하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3요’현상을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쯤으로 보는 듯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요새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정도쯤으로 여겨도 될까?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사고와 행동방식에는 간극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하지만 상사의 “그냥 하라”는 말만큼 공허한 지시가 없다. 어쩌면 ‘3요’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시키는 사람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서일 수 있다. 그러자면 상사가 먼저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물음에 대처할 수 있는 논리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직장에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이 엷어지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본’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직장인의 로망으로 여기는 승진이나 인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물결을 거스르거나 막을 수 없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오게 할 수는 없더라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니까. 기성세대가 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동기부여만 된다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세대들이다. 일견 MZ세대들의 당돌한 모습이 부럽다. ‘다만’이라는 단서는 생략한다.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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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도대체 문장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편하면 편한 것이고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지 편하고도 불편하다니. 그러나 나 같은 세대가 살기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집에서 한 발자국 나가지 않아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는 단연 ‘챗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입니다. 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과 글을 생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AI입니다. 입에 이어 이제는 눈까지 생겼습니다. GPT는 이제 인간과 컴퓨터의 언어까지 구사하며 원하는 답과 제품을 알려주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나 같은 세대는 모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산과 들로 달리며 어울려 놀았고, 학창 시절부터 사회인이 되어서도 끼리끼리 어울려 살았습니다. ‘사람에겐 사람과의 접촉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접촉하느냐에 따라 내 안의 생각, 관념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런 말들이 공허하게 느낍니다. 사람이란 단어를 AI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화는 의사소통이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수단입니다. 이젠 사람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가족이나 친지끼리 식당에 가서도 서로 대화하기보다는 각자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먹고 나갑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 대신 기계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버스 발권도 앉아서 기계가 해주고, 식당에 가서도 기계로 주문합니다. 옷도 앉아서 주문하고 카페에서도 기계가 다 해줍니다. 청소도 기계가 해주고, 빨래도 기계가 해줍니다. 도대체 기계가 못하는 게 무얼까 싶습니다. 사람이 없어도 기계만 있으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수술도 기계가 해주고 글도 기계가 지어줍니다. 앞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무얼까요? 도대체 기계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요? ‘가수 김광석 목소리로 AI가 노래 불렀어요’ 작년 조선일보 2월 9일 자 신문에 난 기사의 제목입니다. 세상을 떠난 가수가 부르는 최신곡을 기계가 부른다고 했습니다. AI가 생전 목소리를 익혀 부른다고 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기계가 대신 뉴스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사진도 진짜같이 만들고 목소리도 진짜같이 만든다나요. 언젠가 TV에서 이미 저세상에 가 있는 전원일기에 나오는 탤런트를 불러내어 산 사람과 대화하는 영상을 보고 섬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AI가 시를 쓴다고 합니다. 사람이 쓴 시보다 더 쫄깃합니다. 그 시를 인간이 낭송하고 무대에서는 AI 무용수가 춤을 춘다고 합니다. 지금은 범죄 사실을 그들 사이에 오갔던 대화의 녹취록으로 진실을 밝혀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녹취록도 무용지물이 될 때가 올 듯합니다. 얼마든지 기계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뿐인가요? 이제는 운전 면허증도 필요 없고 따라서 노약자들의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자동차가 다 알아서 해줄 건데, 뭣 때문에 면허가 따로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나 같은 세대는 참으로 기계가 편리하면서도 불편합니다. 알면 간단하고 편리한데 너무 빨리 진행되다 보니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룰 줄 모르니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늙을수록 더 배워서 좋은 세상 편리하게 살라고. 하지만, 이미 쇠하여진 세포를 살려낼 방도는 없습니다. 알았다가도 금방 까먹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불편한 건 불편하게 살면 됩니다. 조금 참고 발품을 팔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든 기계들이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갖고 노는데 화가 납니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고집만 센 기계가 사람 꼭대기에 앉아 사람을 부려 먹는 꼴에 부아가 치밉니다. 자칫하면 정(情)은 고사하고 진실마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상대방 목소리를 10시간 정도만 학습하면 인공지능 목소리인지 사람 목소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까지 인공 지능 기술이 발달했어요.’ 기사 속 내용입니다. 그놈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요?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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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4-18
  • 허위공문서작성죄의 성립 여부
    [개요] 사법경찰관이 재수사 결과서에 허위 내용을 기재한 것이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3. 3. 30. 선고 2022도6886 판결) [요지] 사법경찰관인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피해자들로부터 교통사고경위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청취하여 운전자 도주 여부에 대해 재수사할 것’을 요청받았음에도 재수사 결과서의 재수사 결과란에 피해자들로부터 진술을 청취하지 않고도 진술을 듣고 그 진술내용을 적은 것처럼 기재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이나 추측에 불과한 것을 마치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진술인 것처럼 기재한 경우,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문서에 관한 죄의 보호법익은 문서의 증명력과 문서에 들어 있는 의사표시의 안정·신용으로, 일정한 법률관계 또는 거래상 중요한 사실에 관한 관계를 표시함으로써 증거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한다. 그 중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하여 진실에 반하는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할 경우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성립하고, 이는 공문서에 특별한 증명력과 신용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성립의 진정뿐만 아니라 내용의 진실까지 보호하기 위함이다(대법원 2022. 8. 19. 선고 2020도9714 판결 등 참조). 허위공문서작성죄에서 허위라 함은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아니하여 그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말하고(대법원 1985. 6. 25. 선고 85도758 판결 등 참조), 허위공문서작성죄는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면서 그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성립한다(대법원 1995. 11. 10. 선고 95도1395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위 기준에 따라서 이 사건 피고인인 사법경찰관이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나 추측을 마치 진술을 듣고 그 진술내용을 적은 것처럼 재수사결과서를 작성하였는데, 피고인이 비록 피해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피고인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재하는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하여 허위공문서작성죄의 범의를 부정할 수 없는 바, 이 사건 피고인에게 허위공문서작성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하여 이와 달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사례제공 : 박범진 변호사 (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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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더 이상 안 돼
    바야흐로 어느덧 봄에 문턱에 들어서면서 학교 주변은 다시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교통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보호구역이 중요한 이유는 운전자들이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인식이 낮아진 상태이고, 이는 교통 위반차량과 어린이의 교통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성인과 비교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또한 반응 속도가 느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 위험이 항상 노출되어 있으므로 도로교통법에 따라 유치원 등 보육시설과 초등학교 주변 반경 300m 이내의 도로 중 일정 구간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선정한 것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자동차 속도 30km 이내, 전 구역 주정차 금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속도위반, 지시위반, 신호위반, 보행자 보호 의무위반, 통행금지위반, 주정차위반 5개항 위반 시 벌점 및 범칙금이 일반도로와 비교해 2배 이상 부과된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도 원인 분석과 함께 시설물 점검을 통하여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고, 아울러 보행 안전 교육을 학교 측과 합의하여 시행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는 보행환경을 위해서는 횡단보도 주변에서는 불법 주정차를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또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는 30km 제한 속도를 반드시 준수해야한다. 이것만 지키더라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교통사고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방준호 경감 서산경찰서 서부지구대 순찰 4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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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서산시의회 ‘싹수’가 필요하다
    지방의회 의원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자신을 뽑아준 주민을 대표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여 확정하고 행정 업무 감사 권한도 가졌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해 귀빈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도 지방의원들이 자질 시비에 휘말리고 각종 비위나 감투싸움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9대 서산시의회가 의원들 간의 갈등이 도를 넘어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옳고 그른지 진위여부를 떠나 막말과 욕설을 아무 때나 공공연하게 하며 의정을 극도로 혼란하게 몰아가고 있다. 이런 서산시의회를 두고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서산시의회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서산시의회의 이러한 염려는 지난해 6.1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7석씩 차지하면서 원 구성과정부터 파행이 시작됐다. 결국 개원일정을 25일 넘기며 더불어민주당 이수의 의원이 시민들의 여론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며 원구성을 위한 임시회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참여해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했다. 서산시의회 파행을 막은 이수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으로부터 당원 제명 결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시의원들의 일탈도 끈이지 않았다. A의원은 서산시 고위공직자의 멱살을 잡고 막말한 의혹과 함께 의회 사무국 여직원에게까지 모욕적인 막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을 일으켰다. B의원은 한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 주차된 차량과 접촉 사고를 내고도 그대로 현장을 떠나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B의원은 피해 차량 운전자가 주변 CCTV를 확인해 가해 차량을 신고함에 따라 적발됐다. 최근에는 복수의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까지 빗발치고 있다. 서산공항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무산 가능성이 염려되는 시점에서 서산시민은 물론 220만 충남도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갈등 양상은 제284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무소속인 이수의 부의장과 국민의힘 소속 강문수 의원이 각각 신상발언을 통해 한 식당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하며 서로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이 부의장은 “본회의를 마치고 오찬장으로 이동해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는 의원 11명과 직원들이 참석했다”며 “그 식당에는 ‘식사 중 대화를 자제합시다’라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자리에 함께한 의원들이 웃으며 대화를 했고 자신이 “식사 중 조용히 합시다”라고 했지만 잦아들지 않았다고 주장한 뒤 “본 의원은 ‘에이 정말, 밥 못먹겠네’라며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나갔다.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물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직원들이 물컵을 세우고 물을 닦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문수 의원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산사랑상품권 관련 담소를 나눴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대로의 표현을 해보겠다”며 “(이 부의장이) 조용히 좀 합시다! 식사 좀 합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조그맣게 대화를 나눴는데 2~3분 지나지 않아 우당탕 뭔가 날아가고, 숟가락을 집어던지면서 상을 쓸어버리고…물 컵을 쏟고 국물이 흐르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서산시의회에 대한 잡음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슬그머니 해외연수를 떠나는가 하면 4억여 원의 혈세를 들여 개인사무실을 만들어 시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환경오염대책특별위원회가 활동 과정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모든 음식의 맛이 다르듯, 정치 영역도 맛이 다르다. 권력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맛을 알아도 본질적인 과업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지(知, 智)와 ‘싹수’가 필요하다. 지(知)와 지(智)는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그것을 올바르게 판별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다. 지금 서산시의회에 필요한 것은 ‘싹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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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한 출향인의 고향사랑과 고향사랑 기부제
    서산 출신 한 기업이인 최근 서산시에 고향사랑 기부금 최대 액수인 500만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계석 주식회사 자동기 대표의 소식이다. 그는 인천에서 국내 최초로 제설 장비를 국산화하고 한국도로공사에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매년 광폭 제설기를 납품하는 기업체 대표로 평소에도 매년 적십자회비 특별회비를 기부하며 봉사와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업가로 알려졌다. 서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60여년을 인천에서 생활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함께했으며 늘 고향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언론을 통해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해 듣게 됐으며, 고향 발전에 작은 정성이라도 보탤 기회라고 생각해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한동안 가슴이 뭉클했다. 타지에서 생활하시는 출향인들에게 고향이 어떤 느낌일지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고향을 일컬어 흔히들 ‘마음의 본향’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이계석 대표의 소식을 접하고 보니 고향은 마음의 본향을 넘어 생활의 기반이요, 삶의 근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또 그런 고향이 발전하기를 바라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이런 우리 민족의 심성을 토대로 한 ‘고향사랑 기부제’가 지난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돼 숱한 화제와 사연을 낳으며 동참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수구초심’으로 고향 발전을 위해 보내는 마음에서부터 직접적인 인연이 없음에도 왠지 마음이 끌려 보내는 정성까지 지역 발전을 위한 동참 열기가 전국적으로 뜨겁다. 서산에서도 재인천서산시민회장을 역임한 이우인 로이교육재단 이사장, 최항구 재인천서산시민회장, 이순신 재인천서산시민회 운영위원장, 문건오 재경서산시향우회 부회장 등 유력 출향인들이 고향에 기부금을 보내며 제도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태는 등 훈훈한 사연이 잇따랐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 소멸위기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 정서적으로도 시사 하는바가 적지 않다. 타지에서 생활하시는 많은 출향인들에게 삶의 근원인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됐으니 말이다. 출향인들의 고향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도입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부자는 기부금을 낼 뿐 그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막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부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마다 답례품 경쟁을 펼치면서 고향사랑 기부제도 홈페이지인 ‘고향사랑e음’은 ‘지역답례품 쇼핑몰’처럼 보인다. 기부액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으로 인해 ‘고향사랑’이라는 말과 ‘기부’라는 말이 무색한 실정이다. 고향사랑 기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고향사랑e음’이 답례품 홍보장이 아닌 지역회생사업 홍보장이 돼야 한다. 또한 지역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기부자의 동참을 이끌고 성공의 성과를 함께 공유하는 교류의 장이 돼야 한다. 처음이 정말 중요하다.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두 번 다시 돌이키지 않는 냉정함 또한 우리 민족의 심성이기 때문이다./ 이수영 서산태안당진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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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놓아 버리자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일흔다섯 살에 쓴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소설 ‘유다’를 읽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없어요. 미워하는 사람을 노예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 해도 복수에 목마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요.” 그렇습니다. 용서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마다 한 결 같이 강조하는 것이 용서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며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여 년 전에 보았던 영화 ‘밀양’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재력을 과시하는 바람에 학원 원장에게 아들을 유괴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후 실의에 빠져 살다가 교회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살인범을 용서하겠다고 마음먹고 살인범을 만났으나 자기는 이미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살인범의 뻔뻔한 모습을 보고 실신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주인공의 절규하는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난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받았대요.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왜?” 용서는 이처럼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과 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해의 수단이 아닙니다. 범인의 반응에 따라 용서해주고 용서하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동의나 인정하는 걸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증오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용서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요 처방입니다. 이 주간 용서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고난 주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용서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떠안고 속죄를 하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빼앗긴 조국 티베트 해방을 위해 헌신하고 또 중국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아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용서는 깨어있는 자의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분노의 보복보다 더 큰 이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인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용서만이 증오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용서는 미래를 열어줍니다. 과거의 원한으로 과거에 매어 미래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유행가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고 내가 먼저 섬기면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용서란 그리스어로 ‘놓아 버린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산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놓아버립시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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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문건오의 지혜롭고 싶을 때
    #감투 덕 없이 감투를 쓰지 말라. 우두머리 자리는 유난히 외롭고 거센 세파가 몰아치기 때문에 덕의 방패막이가 없으면 견뎌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투를 벗어 놓았을 때 쏟아지는 비난을 막을 대책이 없다. #미덕 일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남기는 미덕을 실천하라.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앞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남김없이 다 써 버리면 나중에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능은 점차 완벽으로 기울고, 임기응변 능력은 둘도 없는 귀중한 무기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역량을 갈고 닦아라. 원대한 생각과 주도면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확실하고 안전한 방향을 고집하기 때문에 나쁜 결과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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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4월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있다
    4월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기념일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기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의 공식기념일이다. 3.1운동 이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자주독립을 성취하고자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수립에는 임시정부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이 1919년 4월 11일 오전에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헌법으로 공포하였으며, 이때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식으로 채택되어 임시정부와 지금의 정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은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고취하고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해 4월 13일에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공식적으로 제정하였으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 4월 11일로 기념일을 날짜를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이자 뿌리이다. 104년 전, 우리나라 삼천리 방방곡곡과 해외에도 들불처럼 타오른 3.1 만세운동의 함성이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정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을 국호로 삼았고, 대한제국을 잇는다는 뜻에서 ‘대한’,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민국’이었다. 우리나라의 5,000년 역사 속 최초로 ‘군주의 나라’에 나라가 아닌 국민을 위한 ‘국민의 나라’로 국호의 전환이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 광복이 될 때까지 한민족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끄는 구심점이 되었다. 수립 이후 항일의 역사를 계속했던 27년 동안 중국 상해부터 중경까지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고난의 대장정을 불굴의 의지로 견디며 독립의 희망을 이어갔고, 광복 후에도 환국 길에 오르기 전 중국에 주화대표단을 두어 동포들의 귀국에 도움을 주었으며 국민들의 생업과 안전을 도모하는 등 정부로서 역할 수행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기념하는 4월을 맞이하여 우리 국가보훈처는 ‘국가에 대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비전에 맞게 국가유공자 대상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례로, 국가보훈처는 1923년 타국에서 순국하신 황기환 애국지사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기 위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황기환 애국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역의 실존 인물이다. 타국에서 독립을 위한 외교를 이어가던 황기환 애국지사는 1923년 4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하였으며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는 미국 뉴욕 소재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국가보훈처의 황기환 애국지사 유해 봉환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는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의 노력으로 황 지사가 안장돼있는 미국 뉴욕 올리벳 묘지 측과 황 지사의 유해 파묘에 전격 합의해 순국 100년 만에 유해봉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황 지사의 유해 봉환은 순국 100년, 정부가 유해봉환을 추진한 지 10년 만에 뜻 깊은 결실이 될 예정이다. 또한 국가보훈처에서도 이번 유해 봉안 추진에 대하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김태리 씨의 역 고애신이 남긴 마지막 대사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봅시다(see you again)”가 실제로 이뤄지게 됐다’라고 뜻깊은 말을 전했다. 이외에도, 우리 국가보훈처는 2023년 ‘6.25전쟁 정전 70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추가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국정과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이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를 위한 헌신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유공자를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고, 국민과 미래세대가 국가유공자의 애국을 일상에서 기하는 데도 정성을 다할 것이다. 또한 다가오는 6월 5일 국가보훈부 출범을 앞두고 일류보훈으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는 선봉장이 되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민윤경 충남동부보훈지청 보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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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죄의 값
    화제는 단연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이야기였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H씨를 만났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식당에 들어갔더니 마침 TV에서 묘비를 닦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손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준수하게 생긴 한 젊은 청년이 침통한 표정으로 귀국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였습니다. 유튜브에서 자기 할아버지를 비난하고 숨겨 놓은 비자금 운운해서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어떤 보도에서는 심신 미약 상태에서 그런 방송을 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진 귀국해서 국민 앞에 자기 할아버지 죄과를 사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약 투약 혐의로 38시간 경찰 조사를 받고 일단 석방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루를 쉰 후에 바로 광주로 내려가 5.18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만나고 5.18 묘역을 참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를 만나서 큰절을 올리며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학살 주범은 할아버지다”며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사죄의 기회를 줘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은 그의 진심 어린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죄를 손자가 다 떠안고 진정성 있는 사죄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오히려 위로했다고 합니다.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로 묘비를 닦는 모습을 보고 유족과 시민들은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관리소장마저 눈시울 붉히며 “전두환의 장남도 아닌 차남의 아들, 어떻게 보면 5.18과 무관한 사람인데, 진정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참배하는 모습에 울컥했다”라며 “수많은 참배객을 맞이하면서 눈시울을 붉힌 건 처음”이라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습니다. 문득 200여 년 전 김삿갓 김병연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김삿갓의 나이 다섯 살 때 평안도 선천 부사였습니다. 당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가산 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순직했지만, 선천 부사였던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항복하고 그 후 농민군 우두머리 김창시의 목을 사서 조정에 바쳐 거짓 공을 세우려 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반 대역죄로 참형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김삿갓 어머니는 철저하게 숨어 살며 자식들을 보호했습니다. 김삿갓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과거를 보아 출세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고을에 향시가 있어 과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인지도 모르고 통렬히 꾸짖는 글로 장원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께 자랑하였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죽장에 삿갓 쓰고 전국을 떠돌며 방랑하다가 한 생을 마쳤습니다. 술 한 잔에 시를 지으며 세상을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며 전라도 땅 동북에서 쉰일곱에 한 많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잘못은 할아버지가 했는데 벌은 손자들이 받았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마약에 손을 댔을까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일생을 삿갓에 얼굴을 숨기고 살았을까요? 식사 후에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주인이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40여 년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많은 단골이 있습니다. 남에게 억울하게 한 사람들의 자손들이 잘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틀림없이 건달의 자손들은 건달들이 나오고, 도박하던 사람은 자식들도 도박으로 망하는 걸 보았습니다.” 역사는 냉정합니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릅니다. 본인이 받지 않으면 후손이라도 그 값을 치릅니다. 역사는 그걸 보여 줍니다. 지금은 고난주간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주간입니다. 죄는 인간이 짓고 벌은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무릎 꿇고 외투로 비석을 닦는 것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문전걸식하는 것도 장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더 울어야 하고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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