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찾아서 –1-
김풍배 칼럼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강원도 영월이었습니다. 영월엔 비운의 주인공 단종과 김삿갓 두 분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읽으며 영월에 가고 싶었고, 김삿갓 방랑기를 읽으며 영월을 생각했습니다. 마침 한국문인협회 서산시지부에서 문학기행 장소가 영월로 결정되었을 때 소리를 지를 만큼 기뻤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4월 19일.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나오며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땅을 찾아가는데 어찌 하늘도 무심할까 싶었습니다. 7시 정각, 관광버스는 문인협회 회원 24명을 태우고 영월 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습니다. 빗방울이 차창을 때립니다.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이내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운의 단종을 생각하고 술과 글을 벗 삼아 살다 간 방랑시인 김삿갓을 생각했습니다. 슬픔의 유적지 영월. 이들을 품은 영월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습니다. 상념에 잠겼다가 차창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산 휴게소에 오니 햇살마저 비쳤습니다.
3시간 반 정도 달려 드디어 청령포에 도착했습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한 암벽이 있어 마치 육지의 섬 같은 곳입니다. 배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천연 감옥이었습니다. 세조는 어떻게 이런 곳을 발견해 단종의 유배지로 삼았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어소(御所)에서 해설사를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소나무, 바위, 초가집, 비석 등등 심지어는 샛길까지 각각의 서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소나무 길을 걸으며 청령포에 얽힌 세 사람의 주인공들을 생각했습니다.
단종. 그는 조선 6대 임금입니다. 아주 짧은 동안(1441~1457년) 살다 간 비운의 왕입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외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자라서 왕이 되었습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 소헌왕후도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없이 자란 단종은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문종마저도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 그는 숙부 세조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이곳 영월 땅 청령포에서 외롭게 살다가 사약을 받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요? 부부의 연을 맺은 정순왕후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요? 해 질 무렵 ‘노산대’라는 바위에 걸터앉아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의 생이 그토록 비극적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조를 생각해 봅니다. 권력이 무엇일까요? 그는 수많은 충신을 죽이고 심지어는 피를 나눈 형제들까지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나름대로 왕위 찬탈의 명분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도 추악한 권력 쟁취의 역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천하의 권력을 쥐었다 할지라도 어린 조카를 폐위하고 머나먼 영월 땅으로 유배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사약을 내려 죽게 했으니 어떻게 마음이 편했을까요? 형님 문종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은 없었을까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말없이 눈물 흘리는 꿈을 꾸었다 하니 마음이 편했을까요? 더구나 그 많은 충신의 원혼인들 그를 편하게 놔뒀을까요? 결국 그는 피부병과 각종 병마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 엄흥도를 생각합니다. 그는 강원도 호장(戶長)이었습니다. 세조의 명으로 단종이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어명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강을 건너와 단종의 말동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을 때 사람들은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서 시신을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 속에도 엄흥도는“爲善被禍 吾所甘心 옳은 일을 하다가 그 어떤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는 말을 남긴 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 엄씨들의 선산에 모시고 나서 모든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