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바꿔라
김풍배 칼럼

세상이 참 어지럽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걱정하다가 우연히 앞에 놓인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얼굴에 있는 눈, 코, 입, 귀가 보였습니다. 문득 이목구비에 담긴 창조주의 깊은 뜻을 짐작해보았습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창조주의 오묘한 이치가 경이롭습니다. 귀와 눈은 두 개씩이지만 하는 일은 하나씩입니다. 나와 남을 위한 배려입니다. 나이가 들면 약해집니다. 코와 입은 하나지만 하는 일은 두 가지씩입니다. 생존의 조건이며 수명과 함께합니다.
귀를 보았습니다. 얼굴 좌우에 하나씩 달려있습니다. 치우치지 말고 양쪽의 소리를 들으라는 뜻일진대 한쪽 말만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겁니다. 귀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지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열려 있는 귀를 애써 닫아놓습니다. 닫아놓고 어찌 올바로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남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회라고.
눈을 보았습니다. 눈도 귀와 같이 두 개입니다. 잘 보고 잘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로는 부족하니 두 눈으로 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외눈박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눈은 귀와 달리 감을 수도 있고 뜰 수 있습니다. 깨어있을 때 눈을 떠서 똑바로 보고 잠잘 때는 눈꺼풀을 만들어 편히 쉬게 만든 것입니다. 재충전하라는 뜻입니다. 필요할 때만 뜨고 쉴 때는 감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불의를 보면 똑바로 떠서 감시하고 딱한 사정을 보면 질끈 감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보아야 할 때 보고 보지 말아야 할 때 감으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가 선악과를 보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 써야 했을 겁니다. 다윗왕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지 않았더라면 간음도 살인도 없었을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바뀌고 성경도 바뀌었을 것입니다.
코를 봅니다. 한 개의 코에 구멍이 두 개입니다. 한 지붕 두 가족입니다. 숨도 쉬고 냄새도 맡습니다. 숨은 생명입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습니다. 가장 소중한 통로이기에 두꺼운 살로 덮어 놓았습니다. 코는 숨만 쉬는 곳이 아닙니다. 냄새를 맡아 사물을 분별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코는 그걸 알아 분별하는 것입니다. 보지 않아도 똥인지 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냄새는 거짓이 없습니다. 악취와 향기를 가려냅니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알라고 가르칩니다.
입을 보았습니다. 한일(一)자로 닫혀있습니다. 입을 생각하면 늘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34년이 지나도록 집안에서 대를 이을 남자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젖을 떼고 나서부터 바로 할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 곁에서 잤습니다. 철들 무렵부터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에게 한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과 계몽 편을 배웠습니다. 새벽잠이 없으셨는지 곤히 자는 손주를 깨워 한문을 가르쳤습니다. 누워서 잠을 참으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억하며 항상 마음에 두는 말씀은 ‘수구여병 하라’였습니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은 입은 병마개와 같다는 뜻입니다. 꼭 필요할 때만 병마개처럼 입을 열라는 뜻입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게 세 치 혀입니다.
입은 음식이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더러운 말을 입에 담으면 몸도 더러워집니다.
이목구비를 보다가 이를 조종하는 건 마음이란 걸 알았습니다. 마음은 이목구비의 컨트롤 타워입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마음은 수시로 변합니다. 귀, 눈, 코, 입과 마음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마음이 이목구비를 조종할 수도 있지만, 이들에 의해 마음이 바뀌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긍정적 마음을 가진 사람은 늘 밝은 면을 봅니다. 그러나 부정적 사람은 언제나 어둠을 봅니다.
긍정의 힘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믿으며 문제를 해결할 힘이 됩니다. ‘희망과 긍정적 사고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난국이 닥칠 때는 채널을 바꿔야 합니다. 부정을 긍정의 채널로, 절망을 희망의 채널로, 낙심을 용기의 채널로 바꿔야 합니다. 심히 어지러운 나라를 걱정합니다. 채널을 바꾸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이번 국난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기도합니다./목사, 시인, 수필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