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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9.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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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쯤 지난 일이다. 해미면사무소 민원실에 날마다 어느 노인이 찾아왔다.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무료하게 앉았다 가곤했다. 주로 점심시간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날 째 계속되었다. 민원실 한 여성공무원의 눈에 예사로 비치지 않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갈 곳이 없고 점심끼니를 때울 형편이 되지 않아서였다. 이야기를 들은 그 공무원은 다음 날부터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했다. 부담을 갖지 않고 드실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오랫동안 이어갔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에 사우나 전전하던 확진자에 집을 내어준 복지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에 폭우가 내렸던 날 오후, 서울 종로구보건소로 전화가 걸려왔다. 형편이 어려워 찜질방을 전전하며 지내던 노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마땅히 격리할 곳이 없다는 구청 담당 직원의 전화였다. 그 노인의 임시 거처를 수소문했지만 숙박업소들도 거부한다며 보건소에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그때 최은정 사회복지사가 제 집에서 머물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최 복지사는 당시 퇴근 시간이 가까운 무렵이었고 비도 많이 내렸다노인 환자분이 비가 내리고 있는데 머물 곳 없이 밤을 보내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먼저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전염 가능성도 있는데 꺼려지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주택이라 가족들과 서로 분리한 채 생활할 수 있고 마침 빈방이 있다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도 했다고 한다. 가족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 복지사는 처음엔 격리할 곳만 제공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약 처방과 식사 마련 등 돌봄이 필요한 것이 많았다아이들도 엄마가 좋은 일을 하는 데 돕고 싶다며 식사 준비를 거들었다고 한다.

강원도 춘천시 효자1동 행정복지센터 김도아 방문복지담당과 황수미 주무관은 관내 한 가정을 방문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103세의 노인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지만, 고령인 데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어 단독 격리상태로 있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파악한 김 담당과 황 주무관은 방호복을 입은 채 3일 동안 식사를 지원하고 처방 약 복용 확인 등 건강 상태를 직접 챙겼다. 두 사람의 헌신 덕분에 이 노인은 무사히 격리기간을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며칠 전 경기도 수원시에서 충격적인 세 모녀 사망사건이 있었다. 8년 전 세상을 울린 송파 세 모녀 사건의 판박이였다. 송파사건 이후 정부에서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짠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메워지지 못한 틈이 있었다. 규정과 제도를 벗어나는 사각지대의 어려운 사람들에 게 공무원이나 관계자, 그리고 이웃의 보다 큰 관심과 문제의식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코로나가 오랫동안 종식되지 않으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딱한 사정에 있는 분들을 제도적으로는 도와줄 마땅한 방도가 막연한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럴 때 스스로 나서서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베푸는 인정,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보시이고 인간애다. 공직자는 규정에 따라 일하는 것만으로도 그 임무를 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함에도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선뜻 나서는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공직자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할뿐더러 공직사회에 대한 믿음으로까지 연결된다. 칭송 받아 마땅한 일이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익 추구와 국민에 봉사를 책무로 하고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과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반대로 벗어나지만 않고 범위 안에서 일한다면 책임을 지거나 문책을 받지 않는다. 앞의 사례와 같은 몇 몇 공직자들의 선행이 마중물이 되어 공직내부는 물론이고 사회에 까지 인정이 스며들도록 하게 되리라 믿는다. 공직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미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는 순수한 뜻으로 봉사하고 어려운 사람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분들에게 주는 의미도 크다. 모두 사회를 밝히는 빛이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마중물이다.

재워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요소를 해결해 주는 선행이다. 3년 째 창궐하는 역병은 끝이 보이지 않고, 국제경기 침체와 더불어 국내 경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계속되는 고물가는 어려운 사람들의 살림을 더욱 팍팍하게 한다. 법에 의한 지원은 한계가 있다.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 바라보고 기대고 싶은 곳이 정부이고 지자체이며 공무원이다. 공무원들은 규정에 따라 일하는 자세에 더하여 인간애를 발휘하는 선행과 봉사심은 그래서 더 빛을 더한다. 의무가 아님에도 베푸는 미담은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글 앞에 소개한 분은 전 서산시 H국장의 옛이야기다./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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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인간애’를 더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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