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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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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1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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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하순쯤으로 기억된다. 문학회 야외 모임(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지 않았던 듯하다)이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당산에서 있었다. 당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아!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산악인 전승진 회장의 역사적 유래를 듣지 않아도, 그저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바둑판처럼 나눠진 들녘엔 파란 물결이 굽이치고 멀리 서산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낮에 보았던 감동이 식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그곳으로 향했다. 정상에 올라보니 벌써 대여섯이 분이 와서 운동하고 있었다. 자연은 변함이 없었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햇살이 비춰주는 전경 역시 아름다웠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고 싶기에 내려가는 다른 길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운동하던 사람 중 누군가가 대답했다. “올라온 길루 가슈. 아는 길이 제일 빠를 께유”

작년 가을에 팔봉산에 올랐다. 4봉까지 올랐다가 약속 시간이 지날 듯해서 급히 내려오는 중, 문득 3봉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지름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생각났다. 3봉 밑으로 등산로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봤다. 마침 덤불도 없고 다소 넓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그 길을 따라 내려왔다. 처음엔 등산로보다 완만해서 편한 듯했지만 얼마간 내려오다 보니 길이 막혔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다시 막힌 것도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내려오긴 했지만,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렸다. 그때 당산에서 들었던 말 ‘아는 길이 제일 빠른 길’이란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인생도 어쩌면 등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하는 사람은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우리 인간도 죽음이란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듯이 우리 인생길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을 터이다.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니듯 산에는 등산로가 따로 있고 인생길도 길이 따로 있다. 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고 힘들다. 땀과 눈물이 있다. 인생길도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고해라 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눈물도 흘려야 하고 땀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산길과 인생길은 다른 점이 있다. 등산길은 쉴 수도 있고 돌아설 수도 있고 건너뛸 수도 있지만, 인생길은 단 한 번밖에 오르지 못한다. 쉴 수도 없고 돌아설 수도 없고 건너뛰지도 못한다. 산에는 지름길이 있을 수 있지만, 결단코 인생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그저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한다.

길에 관한 속담도 많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길 닦아 놓으니 미친년이 먼저 간다‘, ’길로 가라니 뫼로 간다‘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놓고 가라‘ 등등. 모두 교훈이 되는 속담들이다. 그러나 내가 참으로 마땅하지 않은 속담이 있으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다. 이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는 의미다. 이 말이야말로 참으로 버려야 하고 피해야 할 말이다. 과정이 정의로워야 결과도 아름다운 것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LH 사건도 과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공직 정보를 이용하여 부동산을 취득한 행위는 참으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행위다. 바른길, 정도(正道)란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함이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한승원의 「길」이란 시가 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길이 있고/ 구름에게는 구름의 길이 있다/ 사람 같은 개도 있고/개 같은 사람도 있고/ 사람 같은 구름도 있고/ 구름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이 구름의 길을 가기도 하고/구름이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사람이 개의 길을 가기도 하고/개가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나는 구름인가 사람인가 개인가/무엇으로서 무엇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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