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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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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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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꽃피는 4월이라 한다. 말 그대로 어디를 가나 꽃 천지요 꽃세상이다. 산에는 산 벚꽃, 진달래가 만발했고, 어느 집 화단이나 공터엔 영산홍과 철쭉이 무리 지어 활활 타고 있다. J 교회 근처 영산홍 꽃밭에서 털퍼덕 주저앉아 꽃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귀 기울여보니 사람보다 꽃들의 수다는 더 요란스러웠다. 그러나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모두 주옥같은 사랑의 명언들이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거야’ 앞에 있는 영산홍이 말하자 중간에 서 있는 철쭉이 말했다. ‘아냐, 사랑은 꽃피는 봄과 같은 거야’

또 다른 영산홍이 말했다. ‘아냐, 사랑은 행복의 샘이야’ 그때 제일 키가 큰 영산홍이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꽃들도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말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잖아?” 나도 입이 근질거려 한마디 참견했다. 꽃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입을 다물고 얼굴만 더 빨개졌다.

일본 사람들은 벚꽃을 무서워한다고 들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에서도 어떤 어머니가 유괴범한테 아이를 납치당하고 그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활짝 핀 벚꽃 나무 꽃잎 그림자에서 아이의 환영을 보고 미쳐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의 단편 소설을 보면 주인공인 산적(山賊)이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 앉았다가 벚꽃 마녀를 만나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 귀신을 죽이고 풀려나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나는 우리나라 꽃엔 마녀라든가. 귀신같은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앉아 있어도 맑은 웃음소리만 들렸지. 음산한 기운은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천기누설이 될지 모르나 꽃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오히려 우리나라 꽃에는 사랑의 묘약이 있다는 걸 장담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인터넷 ‘다음’ 창을 검색해보니 2020년 12월 기준, 통계청 KOSIS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월 9.181쌍, 연간으로는 11만831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연간 23만 쌍의 커플이 결혼하고 11만 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또한 연간 1.000명당 4.7쌍의 커플이 부부가 되고 2.2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조혼인율은 점점 떨어지는데 조이혼율은 일정하다며 이는 실질적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귀밑머리 파 뿌리가 되도록 해로한다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부부의 절반이 이혼한다는 말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개인 사회가 되다 보니 이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옛날에는 이혼하는 걸 몹시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웬만하면 꾹 참고 살았다. 또한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도 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며칠 후면 가정의 달 5월이 된다. 그래서 내가 영산홍 꽃밭에서 들었던 사랑의 묘약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작가인 내가 주관적으로 들었던 내용이라 전혀 과학적 증명은 할 수 없음을 사전에 밝혀둔다.

사랑의 묘약은 채집 시기가 중요하다. 바로 4월이 적기다. 눈부시게 화창한 4월 중순부터 하순 사이가 좋다. 4‧50대 부부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봄꽃 숲에 와서 꽃들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적어 복주머니에 담아 밀봉해 두었다가, 제갈량의 봉서를 받은 산상 조자룡처럼 사랑의 갈등이 올 때마다 열어보면 백발백중 사랑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는 4‧50대 부부에게만 해당하고 젊은 청춘도, 나 같은 늙은이도 전혀 효과가 없다고 했다. 달갑지 않은 이혼율을 낮출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은 못 하랴? 전혀 과학적 증거가 없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시도는 해볼 일이다. 혹자는 어째서 젊은이와 노인에게는 사랑의 묘약이 없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문제다. 젊은 청춘은 그런 약 같은 게 없어도 활활 타고 있으니 굳이 약을 쓸 일이 없고, 어르신들 부부는 사랑이 아니라 정(情)으로 사시니 사랑의 묘약 같은 건 줘도 소용없는 것 아니겠나? 사랑의 묘약을 많이 채집하여 올해부터라도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하는 불명예이혼율을 낮췄으면 좋겠다.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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