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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 년 동안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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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0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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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겨울을 따라 세밑이 다가온다. 새해 달력을 들고 종종걸음 하는 모습이 눈에 익숙하다. 송년모임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이맘때면 공연히 서둘러진다. 올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굳이 손익계산을 해보자면 플러스였다고 셈할 수 있다. 그늘지고 주름질 만한 일을 겪지 않았다.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계속했고 수필집을 냈다. 문학으로 두 개의 상도 받았다. 이만하면 무난한 시간이었다.

새해가 눈을 뜰 무렵 밀물 썰물이 드나들 듯 당연하게 되풀이되는 나날가운데 그래도 무엇 하나 쯤 뜻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무슨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이웃에게 작은 공감이나마 주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렇게 하여 마음먹고 해온 것이 몇 있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하다보면 주위에 공기가 스며들 듯 번지고 알게 모르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응이 없더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업화,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덩달아 개인주의가 따라왔다. 아파트 생활도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웃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층간 소음이나 담배 연기, 반려동물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굳이 몰라도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 생활이 낫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엘리베이터 안이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멀뚱멀뚱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거나 애맨 거울을 바라보기도 한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이미 몇 번이나 보았을 광고물에 눈길을 준다. 길어야 몇 십초 남짓 동안 머쓱한 분위기가 흐른다. 참 어색하고 지루한 시간이다.

하여, 타거나 내릴 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좋은 시간되세요.”라고 인사를 시작했다. 아기에게는 “예쁘다”, “똘똘하게 생겼네.”라고 했다. 점점 쑥스러움이 사라져갔다. 학생, 젊은이도 반응을 보였다. 어느 날 부터 무뚝뚝하기만 했던 남자가 먼저 인사를 했다. 청소하는 분도, 집배원이나 택배 배달하는 분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적어도 우리 라인에서는 그렇다. 이제 현관 밖으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점점 인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혹시 오는 사람이 있는지 현관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는 변화도 일어났다.

주차문화를 바꿔보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기둥과 기둥사이에 세 대를 댈 수 있다. 세 곳 중에서 어느 곳이든 한 대가 넓게 차지하면 나머지는 공간이 좁아져서 두 대만 주차할 수 있게 된다. 비집듯 세 대를 주차하면 문을 여닫는데 불편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흠집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자동차 대수가 많아지고 큰 차를 선호하면서 주차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관리소에서 도로에 주차한 차에 ‘위반 경고장’을 붙이면 불평도 일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주차장을 제대로 쓸 수 있게 세 곳 중에서 가장자리에 주차를 할 때는 기둥에 바짝 붙였다. 자연히 가운데에 주차를 하는 차량이 비교적 넉넉하게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둥에 가까이 붙여 주차하려니까 어느 때는 차가 기둥에 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 대부분의 차들이 그런 방식으로 주차를 하고 있다. 말이나 글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뒷정리를 하지 않은 채 그냥 나가면 비누거품으로 바닥은 매화그림이 쳐지고 거울에는 병풍도가 그려졌다. 비누에 머리카락이 그물처럼 둘러붙고 비누 놓는 곳에는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남았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건 아니다’싶어 거울과 바닥을 말끔히 씻었다. 비누 놓는 자리를 닦고 비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은 뗀 다음 거품까지 없애서 올려놓았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대개 그렇게 한다. 꼭 내가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달라지고 있다. 

아파트 출입문 옆에 작은 공터가 있다. 이곳에 주민 한 분이 몇 년 째 꽃을 심고 가꾸어 주민들의 마음을 활짝 펴준다. 허리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도 풀 뽑고 물주기에 정성을 다한다. 철따라 꽃이 핀다. 아직도 국화가 향기를 날린다. 나도 옆에 몇 포기 꽃을 심고 마음을 보탰다. 고마운 마음에서 글 판도 걸었다.

「마음으로 심고/ 정성으로 가꿉니다./ 보는 눈 모두 꽃이 됩니다.// 아침에는 환하게 웃고/ 저녁에는 흐뭇하게 미소 집니다./ 여기 이웃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해마다 행복을 만들어 주시는/ 아름다운 손길이 고맙습니다./ 참 장하십니다.」

사람들이 꽃과 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표정을 읽으면 보인다. 순한 심성이 젖어들고 있다.

‘끊임없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다. 작은 행동에 꾸준함을 얹으니 변화가 보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에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을 더 찾아보아야 하겠다./수필가ㆍ전 서산시 부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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