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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시와 기회발전특구
    서산시민이 바라는 진정한 서산시 발전의 이정표는 무엇일까? 미래에 가서 서산시의 역할과 기능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산시의 현실 경영은 엄청난 지혜가 필요하다. 18만 서산시민과 공무원들,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밑그림을 세부적으로 그려내야 한다. 하지만 잘못하면 시의 행·재정력을 소모적인 일에 쏟아부을 수가 있고 낭비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더욱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좋은 기회가 왔어도,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다. 사실 기회의 포착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생존 법칙이다. 좋은 기회를 포착해야지만, 훗날 괄목할만한 사업성과를 서산시 몫으로 돌릴 수가 있다. 좋은 도시발전 기회가 찾아와도, 이를 적실성 있게 포착하지 못하고 뒷북이나 치면 서산시의 지역발전수준을 기대하기 어렵다. 서산시의 현 주소는 환황해권의 중심도시로서 기업유치와 석유화학산업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그만큼 경기도 남부권의 광역행정급인 K-반도체 산업벨트와의 경쟁 또는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서산시의 미래 발전 동력으로 현 정부의 기회발전특구(Opportunity & Development Zone)에 찾아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정과제에서 지방주도의 자생력 있는 지역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의 지정 및 운영 근거를 마련하였다. 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역의 투자 촉진을 위해 자치단체-기업 간 협의에 따라 관련 지역을 특구로 지정할 수 있으며, 교육자유특구는 다양한 형태의 공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정된 지역이다. 교육자유특구와는 달리 기회발전특구는 투자기업에 대해 양도소득세, 법인세, 증여세, 상속세 등 최대한 전액 면제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가장 큰 핵심은 세제 혜택이다. 수도권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 배치하고 지역은 외부기업을 기회발전특구로 옮겨오도록 유인하는 대표적인 지역 균형발전 사업이다.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과 신규 투자 촉진을 위한 파격적인 세제 및 규제 특례, 특화된 첨단인력 양성과 R&D 부문의 연구 인프라를 집중해서 육성하는 균형발전 프로젝트다. 이런 이점 때문에,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전략산업 육성과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위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서산시와 규모가 비슷한 당진시와의 첨예한 상호 간 경쟁이 예상된다. 이런 점에서 서산시는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외적 차원이다.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위해 정부간 관계(IGR)를 통해 지역전략산업 육성의 비전 제시와 홍보, 적극적인 도전 의사 표명과 협의 등이다. 둘째, 내적 차원이다. 기회발전특구의 지정과 신청을 위한 사전 준비태세다. 국가 차원에서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위한 합당한 목적과 조건, 자격 요건, 세부지침 등을 충족하기 위한 실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서산시가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위해 전문가 초청 특강을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시점에서 주문한다면 서산시의 기회발전특구 지정은 자생적인 지역균형발전 노력과 수도권 지역의 전략기업 유치를 위한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기회발전특구의 지정은 서산시의 석유화학 산업과 반도체 산업 등 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발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환황해권의 중심도시로서 서산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회발전특구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경제도시로서 도시발전을 추구하려면 도시 내외부의 발전기반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충분하다./이수영(본지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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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6-21
  •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입니다
    아파본 사람은 압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지난주 서산타임즈에 실린 이병렬 발행인의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읽으며 아마도 그런 마음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소망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소망은 소망으로 끝납니다. 건강하기를 소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건강을 위해서 그다지 투자하지 않습니다. 건강은 마치 부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물도 허랑방탕하여 낭비한다면 얼마 못 가서 쪽박 차게 됩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마구 몸을 굴리다 보면 쉽게 무너집니다. 반대로 허약하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건강하게 살게 됩니다. 속담에 ‘고르릉 팔십’이란 말이 있습니다. 젊어서 ‘고르릉’거리며 유약했던 분이 팔십 세까지 산다는 말입니다. 필자가 모시던 직장 선배님 한 분을 엊그제 만났습니다. 이분은 위가 약해 늘 약을 달고 살았습니다. 매사 조심하고 소식하고 술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누구보다도 더 건강하셨습니다. 똑같이 출고된 자동차라도 주인에 따라 그 수명이 달라집니다. 우리 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수명이야 하나님께 있지만, 건강은 자기 몫입니다. 문학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문우 Y 박사가 보내준 수필 문예지 <수필 뜨락>을 받았습니다. 책을 펼쳐 보다가 특집 그가 쓴 ‘건강을 위한 습관’을 보고 참으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는 하면서도 정작 건강을 위해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건강도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다음 날부터 바로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를 닦고 물 한 컵을 마신 후 맨손체조를 한다고 합니다. 12개 동작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국민체조를 한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숙달된 동작을 세월과 함께 잊어버려 처음 시작할 때는 컴퓨터 검색으로 회복했다고 합니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제자리 걷기 준비 지세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순서대로 숨쉬기, 다리, 팔, 목, 가슴, 옆구리, 등 배, 몸통, 온몸, 다리, 팔다리, 숨 고르기로 해서 2번 연속한다고 합니다. 이를 매일 실시한 세월이 15년째라고 했습니다. 밤사이 잠자리에서 눌린 근육을 풀어주며 특히 목과 어깨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실내에서 하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기와 관계없이 전천후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면적이 필요 없으므로 집을 떠나 숙박을 하는 문학 세미나, 행사, 등산, 기타 모임 등 국내는 물론, 외국 여행을 할 때도 호텔 방에서 빠짐없이 실시했다고 합니다. 뭉친 근육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이두박근 대흉근 등 어깨 가슴 근육이 젊은 시절 못지않게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공원에 나가 기구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팔과 옆구리 스트레칭을 위한 양팔 줄 당기기, 하체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레그프레스, 크로스칸트리, 유연성 증대를 위한 롤링웨이스트, 등과 허리에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로라 등 기구 운동을 끝내고 근처 냇가를 걷는다고 했습니다. 하루 평균 8,000여 보, 미세 없는 날 같은 날은 1만 여보 이상을 걷는다고 했습니다. 이상은 Y 박사의 건강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그가 하는 운동은 따로 돈이 들거나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의 투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건강을 잃은 후 겪게 되는 고통과 잃어버리게 되는 시간, 그 막대한 비용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쉽겠습니까?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건강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고령인구는 해마다 증가하여 2025년에는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애국의 길이기도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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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1
  • “곱게 늙고 싶다” 는 생각
    얼마 전 10여일이 넘도록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생생한 목격담이 아직도 기억의 수장고에 짙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4인 병실이었는데 할아버지 환자가 3명이나 됐다. 필자에게 묵직하게 다가온 것은 3가지. 하나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 90세 할아버지, 또 하나는 말이 어눌한 70대 후반의 할아버지, 마지막은 한 끼 식사를 거뜬히 해치우고 다소 정정해 보이는 80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모두 ‘침묵의 살인자’인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이들 환자들을 돌보는 이를 살펴보자니 간병인이거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동생으로부터 노노케어를 받고 있거나,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손자가 번갈아 가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노화의 악령이 서서히 잠식하고 있음을 느꼈다. 건강수명이 늘어나면서 평균수명이 세 자리 숫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하는 느낌이다. 이른바 ‘실버 쓰나미’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기게 될 것이다. 통계청의 2022년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01만8000명이며, 이는 전체 인구의 17.5%에 해당한다. 고령인구는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20.6%로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수치는 갈수록 수직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2030년 25.5%(1천 350만 6천명), 2040년 40.5%(1천 724만 5천명), 2050년 45.0%(1900만 4천명)로 치솟을 전망이다. 필자가 생의 끝자락에 이를 때쯤이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령 인구가 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7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점점 높아져 2040년 전체 고령인구 비중 34.4%의 절반을 넘어 53%에 해당하는 18.1%, 2050년에는 전체 고령인구 비중 40.1%의 62%인 24.7%, 2070년에는 전체 고령인구 비중 46.4%의 66%인 30.7%로 늘어남으로써 고령자 가운데서도 75년 이상을 사는 고령자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령 인구의 덩치가 비대해지는 것은 생명공학, 의술의 발전에 기인한다. 나이 들면서 으레 자연스러운 현상, 숙명적 올가미로 여겨졌던 노화는 언제부터인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노화 시계를 늦추거나 정지시키는 연구가 결실을 보게 된다면 20~ 30년 뒤에는 진일보한 생명공학의 도움으로 노화 예방 접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전망이 벌써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긍정적인 전망을 두고 혹자들은 “턱도 없다”라고 콧방귀를 뀔 수도 있을 것이다. 겹겹의 병환, 녹슬어 가는 뇌, 장기 손상 등 갖가지 노화의 징표들이 아주 천천히 우리를 좀먹고 있을 텐데 이를 지연시킨다는 것은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창립자이자 국제장수센터(ILC) 초대 센터장을 지낸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노년기가 끔찍한 것은 나이만 먹다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늙어 가는 과정이 쓸데없이, 그리고 때때로 잔인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우며 고독하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노인, 노화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많이 뒤처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1992년부터 노인의학과를 정식 진료과목으로 채택해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나라 전체가 빠르게 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작금의 추세에서, 그리고 소아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가 있는 상황에서, 노인의학과가 없다는 것은 연령차별, 노인차별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그래서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영국은 한 발 더 나갔다. 2018년 노년층을 더 세심하게 살펴보자며 고독부까지 신설했다. 노화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을 지을 수 없다. 얼마 전 아파트 인근에서 걷기운동을 하다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겹게 뒤뚱뒤뚱 걷는 어르신을 보고 설핏 이런 생각이 스쳤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처럼 노년을 구질구질하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서 자문해 봤다. “그간 내 몸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나의 외피(신체) 나이는? 나의 내피(장기) 나이는?” 훗날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글자글한 주름, 쭈글쭈글한 살갗, 아무튼 몸 여기저기 핀 저승꽃을 끼고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곱게 늙고 싶다”라고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건강할 때 내 몸을 닦고 조이는 게 건강수명을 늘리는 요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습관화된 삶의 태도에 따라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이 좌우될 수 있다. 예로부터 노인을 빗대 ‘지혜의 샘’또는 ‘지식의 창고’라고 했다. 인생 3막 노년을, 작지만 의미 있게 설계해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간다면 더욱 건강수명이 길어지지 않을까./이병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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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13
  • 별처럼 아름다운 달밤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 밤이었습니다. 빛나는 별들이 탱자 성에 내려와 반짝거렸습니다. 춤이 별이었고 별이 춤이었습니다. 시가 별이 되었고 별이 시가 되었습니다. 바로 음력 4월 보름날 밤, 해미읍성 동헌 안에서 별처럼 아름다운 달밤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주었습니다.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밤을 만들 수 있었는가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6월 3일 오후 7시. 해미읍성에서 ‘2023 해미읍성 탱자꽃’이라는 주제로 ‘제1회 시민과 함께하는 달빛 시 낭송’ 공연이 있었습니다. 시민의 정서를 함양하고 시의 저변확대와 시를 통해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서산 시 낭송회’가 주관하여 열린 공연이었습니다. 초청장을 받아보고 기쁜 마음으로 이날을 기다렸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좋은 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공연의 성패는 관객동원에 달려있습니다. 유명 가수를 초청하여 공연하는 음악회도 아니고 재미난 연극도 아닌 시를 낭송하는 행사에 어떤 사람이 와서 자릴 채워줄 것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시 낭송 행사가 부디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어 시간 전에 해미읍성에 도착하였습니다. 읍성 안에는 저녁때가 되어서 그런지 파장처럼 한산했습니다. 안내 포스터를 보고 동헌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를 따라 내아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행사장 준비는 다 되어 있었습니다. 안내소에는 음료와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었고 시민들이 선정한 애송시 모음 ‘탱자꽃’이란 시집이 놓여 있었습니다. 무대 앞 잔디밭에는 어림잡아 300석 가까이 빈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무대에선 리허설이 한창이었습니다. 이미 도착한 몇몇 지인들과 인사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공연 시간은 다가오는데 성안에는 나무들의 그림자만 길게 누워있었습니다. 목까지 올라온 걱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나의 의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숨었다 들어오는지 많은 사람이 좁은 문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채 되기 전에 잔디밭 빈 의자는 다 채워지고 공연이 시작될 무렵에는 공터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섰습니다. 행사 주체자인 시 낭송회 대표 김가연 회장의 내빈 소개가 있었습니다. 성일종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도의원, 시의원, 언론인, 각계 인사와 문인들이 소개받을 때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막이 올랐습니다. 시와 춤이 이렇게 조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요? 얇은 사(紗) 하얀 고깔을 쓴 판소리 가문의 마지막 후손 이애리 전통무용가의 승무에 맞춰 유병일 회원의 조지훈 시 승무(僧舞)를 낭송했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날개처럼 펄럭이는 소매 끝으로 인간의 번뇌를 털어버리듯 무대를 휘젓는 아름답고도 처연한 몸짓에 맞춰 시(詩)도 하나가 되어 영혼까지 부르르 떨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정광수 플루티스트의 플루트연주와 강애심 배우의 멋진 시 낭송과 노래로 온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어서 회원들의 시 낭송이 이어졌습니다. 김가연 회장의 세련된 진행이 분위기를 더욱 높여 주었으며 대한민국 전통 명무 제3호이며 단국대학교 김지림 평생교육원 주임교수의 소고춤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저런 유명한 춤을 이런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요? 회원들이 낭송하는 시(詩)들은 모두 아름답고 안타깝고 정감 어려, 눈으로 보는 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낭송을 잘하는지요? 얼마나 노력했으면 그 경지에 오를까요? 속으로 무척 부러웠습니다. 어둠이 짙어지고 밤도 깊어지는 시간, 김가연 회장이 밤하늘을 가리키며 달을 보라 했습니다. 마침 노란 둥근 보름달이 해미읍성 위로 봉긋 솟아오르는 중이었습니다. 시에 젖어 한껏 고조된 감성에 달을 바라보는 순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신음,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시의 힘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정신없이 공연에 몰입하다 보니 벌써 끝이 났습니다. 그때야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놀랬습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를 부르면, 시도 우리 곁으로 오는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가 선진 국민이 되었구나! 불과 몇 십 년 전에 유럽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격조 높은 공연을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의 문화 의식 수준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득 기러기 행진이 생각났습니다. 제일 앞장선 기러기는 공기의 저항을 제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뒤를 따라 날아가는 기러기는 힘내라고 그렇게 소리쳐 응원한다는 것입니다. 제2회, 제3회 시낭송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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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13
  • 자동차 이전 등록 전 반환요구 거부는 횡령죄(?)
    [요지] 자동차 매수인이 매도인으로부터 승낙을 받고 이전등록 전 이를 사용하다가 차량 반환 요구를 거부한 것이 횡령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2023. 6. 1. 선고 2023도1096 판결) [개요] 피고인이 피해자 측으로부터 이 사건 차량을 매수하면서, 피고인이 매매대금의 지급에 갈음하여 피고인이 OO캐피탈에 대한 차량할부금을 납부한 후 피고인 운영의 회사 명의로 이전등록을 하기로 약정하고, 이 사건 차량을 인도받아 사용하던 중 할부대금 및 과태료 등을 납부하지 않았음. 이에 피해자 측이 이 사건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이 이를 거부한 행위가 횡령에 해당하는지? [대법원 판단]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이므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고, 형사재판에서의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 재물이 당초 피고인에게 보관된 타인의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후 타인이 피고인에게 이를 양도하거나 임의사용을 승낙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사정이 재판에 나타난다면 이러한 의문이 해명되지 아니하는 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1. 12. 14. 선고 2001도3042 판결 참조). 자동차에 대한 소유권의 득실변경은 등록을 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고 등록이 없는 한 대외적 관계에서는 물론 당사자의 대내적 관계에서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사자 사이에 소유권을 등록명의자 아닌 자가 보유하기로 약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내부관계에 있어서는 등록명의자 아닌 자가 소유권을 보유하게 된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2도15303 판결, 대법원 2014. 9. 25. 선고 2014도8984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피고인이 이 사건 차량에 관한 매매약정에 따라 정당한 법률상 지위·권리를 보유한 채 이를 사용한 것일 뿐 피해자와의 위탁관계를 전제로 이 사건 차량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 측이 피고인에게 이 사건 차량의 등록명의 이전과 무관하게 사용을 승낙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판시 횡령의 점을 섣불리 유죄로 단정할 수도 없으며, 적어도 피고인과 피해자 측 사이의 대내적 관계에서는 이 사건 차량의 등록명의에 관계없이 이 사건 차량에 관한 소유권을 매수인 측인 피고인이나 이 사건 회사가 보유하기로 정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여, 판시 횡령의 점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 ‘타인 소유 재물에 관한 보관자의 지위’를 전제로 한 횡령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 중 횡령을 유죄로 판단한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사례제공] 박범진 변호사(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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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13
  •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라는 생각
    중앙호수공원 ‘문화시설 용지’에 도서관건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사연을 불러냄이 과연 적정한지 망설임이 없지 않다. 10여 년 전, 그 땅에는 어린이도서관, 청소년수련관, 여성회관 등 4개 시설을 건립하기로 하였으나 ‘장래를 위하여’ 아껴두고자 예정지를 다른 곳으로 변경했다. 이 시설들을 따로따로 세우는 것은 부지 활용이나 관리면 등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어린이도서관과 청소년수련원은 주변 환경으로 볼 때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이 문화시설 용지에는 다수의 시민들이 이용하고 서산을 상징할 만한 시민회관이나 종합문화예술회관 등 다목적시설을 짓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을 물색하게 되었고, 서령로 변에 현재의 문화복지센터를 건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호수공원 땅을 보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목적과 이유가 지금도 유효한지 아닌지는 견해가 다를 수 있겠으나, 애초 예정대로 사업을 시행했더라면 오늘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하게 된다. 중앙호수공원 옆 문화시설 용지는 누가 보아도 탐나는 노른자위다. 옛날 버려지다시피 했던 저수지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개발하니 ‘상전벽해’로 탈바꿈됐다. 호수를 둘러싸고 상가와 택지가 조성되고 공원이 만들어졌다.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이고 외지인들에게도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한편 ‘어금니처럼 아껴서’ 지금의 공간으로 남겨 둔 문화시설 용지는 어떤 시설이 들어가도 좋은 요지이다. 그런 여건을 활용하여 도서관 건립 예정지로 결정하였다고 이해한다. 현재 제기되는 논란의 중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입지와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전임 시장 때 결정된 사업을 변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자리에 지어야 한다는 측에서는, 접근성이나 이용 편의성 면에서 볼 때 적지이며 이미 이곳에 세우기로 결정된 만큼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변경하여야 한다는 측의 주장은 주변이 술집과 노래방 등 유흥가로 형성되었고 많은 사람이 모여 운동, 공연, 집회하는 곳으로 학습권과 지식 탐구권을 저해 받는 부적절한 입지로써 다른 곳을 선정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 가지 관점에서 짚어본다. 첫째 도서관 건립 용지로써의 적정성 문제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는 사회적 여건, 자연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어떤 시설의 입지를 선정할 때도 기준과 방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는 상황에 따라 시각을 달리할 수 있다. 도서관의 경우, 이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중점으로 볼 것인지, 도서관 특성에 걸맞은 환경을 갖추고 시민과 학생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야 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먼저 도서관 건립 용지로 현재 호수공원을 최적지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또한 과연 다른 곳에서는 좋은 입지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곳인가 하는 면도 그렇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 가지를 주목적으로 하는 시설을 조성한다면 그 땅이 너무 아깝다. 도서관의 기능과 가치를 가볍게 보거나 아무데나 지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혹자는 그곳에 도서관을 지어 서산의 랜드마크로 삼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도서관을 랜드 마크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나 호수공원에 지어야 가능하다는 데는 의문을 갖는다. 오히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곳에는 각계 시민들이 폭넓게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시설로 조성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둘째, 전임 시장 때 결정한 것을 번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든다. 물론 맞는 말이다. 행정의 일관성이나 시민들의 신뢰를 위하여 애초대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상황과 판단에 따라 더 좋은 대안을 찾아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거저 쓸 수 있는 시유지를 놔두고 다른 곳을 매입하려면 예산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곳에 짓지 않는다고 호수공원 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다른 용지를 매입하거나 적절한 방안을 찾으면 또 하나의 시유 재산을 확보하는 셈이다. 시 재정에 부담을 고려하여 시내에 있는 다른 시유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서관 건립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지를 찾고 시기를 조정하여 추진할 방침이 확고하다면 그 계획을 존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호수공원 문화시설 용지에 특정 단위 시설이 아니라 회의, 공연, 전시를 할 수 있는 시민회관이나 문화예술의 전당 등 종합문화시설을 세워야 한다며 아껴 둔 취지는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라는 생각이다. 도서관을 지을 때는 미뤄둔 문학관도 옆에 함께 세웠으면 하는 뜻도 덧붙인다. 아무쪼록 이견을 잘 조율하여 순조롭게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전 서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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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6
  • 역사는 말한다
    한 장의 사진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바로 키이우의 한 언론사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우크라이나 어린이 몸에 쓴 글씨의 사진 때문이었다. 어린이 등에는 아이의 이름과 출생일 그리고 연락할 수 있는 친척의 연락처가 씌어 있다. 우크라이나 엄마들이 언제 자신들이 죽을지 몰라 아이만 남게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들의 몸에 그런 글을 써놓은 것이다. 벌써 1년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소련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수많은 재산과 고귀한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참혹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도 그런 비극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런 위협이 상존(常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동족상잔의 포성이 멈춘 지도 벌써 70년이나 되었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용사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거나 아흔을 넘긴 고령이 되셨다. 필자도 당시 겨우 만 다섯 살. 그 어린 나이에 무슨 기억이 남을 수 있을까? 어른들이 도망치던 기억, 아무개네 아들이 전사했다는 어른들의 속삭임, 당숙이 가지고 왔던 105미리 포탄 탄피를 잘라 만든 재떨이,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소설의 장면들처럼 기억의 조각들이 남았을 뿐이다. 또 다른 전쟁, 월남 전쟁도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았다.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이국땅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역사의 옹이다. 필자도 그 전쟁이 치열했던 시기(1965-1968)에 군에 복무 중이었다. 월남전 참전을 신청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군단사령부에 근무했던 관계로 파월 장병들이 전하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마침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훈장과 굴레’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이는 월남전을 소재로 쓴 이원규 작가의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품이었다. 작가는 1947년생으로 직접 월남전에 참전한 참전용사였다. 그는 30만 명이 바다를 건너가 3천여 명이 고귀한 피를 흘린 전장 터에서 그 전쟁의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잊혀가는 것이 안타까워 집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소설은 세 개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그리고 있고 두 번째는 한국군 주둔지역의 변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세 번째는 월남인과 한국인의 친화 관계를 나타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박성우 중위는 6.25 동란 때 부모를 잃고 매부의 도움으로 학교를 마친 뒤 자신을 얽어맨 운명의 고리를 끊겠다는 마음으로 월남전에 뛰어들었다. 월남에 도착한 그는 연대 지휘부 민사과 민사심리전 장교로 배속받는다. 그가 주둔한 지역은 베트콩과 한국군의 사이에 낀 200여 호가 사는 촌락이었다. 이 지역 타이풍 마을의 주민은 양편 사이에 끼어 시달리며 고통을 당하거나 보호색 같은 두 개의 얼굴로 스스로 지켜야 할 조건에 놓여 있었다. 마치 6.25 직후 밤낮으로 깃발을 달리 달아야 했던 지리산 지역과 같은 곳이었다. 주인공 박성우 중위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결국 한국군 편이 되어 스스로 반공 무장하기까지 성공했다. 한국군은 그들에게 교량을 놓아주고 그들의 숙원사업인 학교 건물을 지어주며 겉으로 보기엔 완전 평정에 가까울 정도로 진전하였다. 그 공로로 박성우 중위는 충무 무공 훈장을 받는다. 그러나 그해 마지막 날 타이풍 마을은 게릴라들의 철저한 보복을 당해 수많은 주민이 학살당했고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여인까지 잃었다. 주인공은 만기가 되어 귀국하지만, 그가 했던 성공적 민사 활동이 오히려 타이풍 마을을 참혹한 비극의 현장으로 만든 결과가 되었음을 괴로워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씻어 낼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이제 6.25 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역사 속에 나이테처럼 뚜렷이 새겨져 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고귀한 피를 제물로 바친 그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는 번영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겪은 전쟁이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에서 약하면 당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나라는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야 생존할 수 있다. 역사는 말한다.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그 비극은 반복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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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6
  • 벌침과 아나필락시스
    중학생 때의 일이다. 큰아버지께서는 의학도의 꿈을 접고 오랜 세월 교직생활을 하셨다. 하지만 유년 시절의 장래 희망에 미련이 남으셨는지, 민간요법을 체득하는 것에 심취하셨다. 그중에서도 유독 ‘벌침’에 크게 매료되셨는데, 신뢰할 수 없는 책들을 여기저기서 참고하여 나름의 벌침 기술을 습득하셨다. 그리고 그의 치료법의 실험 대상은 언제나 아내인 큰어머니가 되곤 했다. 하루는 큰어머니가 습관처럼 자신의 오십견을 투덜대자, 큰아버지는 자신이 잡아둔 벌을 이용해, 큰어머니의 어깻죽지 몇 군데에 벌침을 놓았다. 머지않아 큰어머니는 전신에 가려움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119 구급차를 타고 지역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큰아버지와 더는 같이 못 살겠다고 울음보를 터트린 큰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글쎄, 저 양반이 응급실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제 감 잡았으니 다음에는 다른데 놓을 거라고 하더라니까!” 실제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벌침에 수상하여 내원하는 환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상처 부위는 벌침의 독성분에 의해 붓고 뜨거우며 통증이 발생한다. 또한 알레르기 반응에 의해 두드러기와 유사한 형태의 가려움, 부종, 발적, 심한 경우 전신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응급실에 내원하여 이러한 증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제, 진통 소염제 등을 처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지속적인 독성 물질의 주입을 막기 위해 벌침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 이차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항생제를 함께 처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응급실에 벌에 쏘여서 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간호사나 의사가 “숨이 차지는 않으세요?”라고 묻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나필락시스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알레르겐이 IgE라고 하는 항체를 감작 시켜 비만세포 등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에 의해 생기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뒤이어 히스타민 등의 물질이 과다하게 방출되고, 전신 반응으로 이어진다. 전신의 혈관이 이완되어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빨라지며, 기관지 수축과 부종 등으로 이어져 호흡곤란으로까지 발전한다. 의사로서 급박한 상황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아나필락시스를 설명하려면 간단히 “알레르기 반응이 너무 심해서 전신 반응이 생기고 온몸에 혈관이 다 늘어나고 목도 부어서 숨쉬기 어려워지는 거예요.”라고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알레르기 반응이나 아나필락시스 반응은 비단 벌침뿐만이 아니라 해산물이나 땅콩, 복숭아 같은 음식이나, 흔히 쓰는 응급실의 의약품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실제로는 어떠한 약물로도 유발이 가능하며, 글러브나 콘돔과 같은 라텍스 제품에 의해서도 발생 가능하다. 실제로 감기 증상으로 병원에서 진통제를 한 대 맞았을 뿐인데 혀가 잔뜩 부어오르더니 기도를 막아 호흡 곤란과 의식 소실을 주소로 응급실에 실려온 중년 여성도 있었다. 이러한 응급상황에서는 기관 삽관하여 기도를 확보하고, 수액 처치를 할 뿐 아니라 앞서 말한 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 제제에 앞서, 에피네프린이라는 약도 적정한 용량을 써야 한다. 119 구급대가 의료 지도를 받아 환자 허벅지에 냅다 꽂는 에피펜 이라는 도구도 같은 성분의 약이다. 하루는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가 “저도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더라고요.”라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한다. 어린 시절 양념 게장을 먹기만 하면 입술이 퉁퉁 부어올라,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고 자신이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며, 소위 ‘맵부심’을 부렸던 것이 사실은 알레르기 반응이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갑각류를 먹기만 하면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움을 느껴서야 비로소, 그 시절 양념 게장에 목숨을 걸었던 자신의 무지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이 식중독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오는 환자들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알레르기 반응이다. 현대에 수많은 물질과 접촉하고 사는 우리는 자신이 무엇의 알레르기가 있으며, 그게 얼마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굳이 벌침을 꽂아 자신의 면역 반응을 시험해 보는 일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불연히 가려움이 발생한다면 숨이 차오를 때까지 지체하지 말고 119에 신고하여 응급실을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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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6
  • 풀이냐 꽃이냐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모처럼 도타운 정을 주고받아야 할 때 아내와 다퉜습니다. 다퉜다고 하기보단 그저 두어 마디 큰소리가 오간 것이지만, 어쨌든 다툼은 다툼이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보니 우리 집 담장 밑에 자라고 있는 풀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얼마 전에 뽑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잊고 있었던 풀입니다. 샛길을 따라 연이은 담장인데 유독 우리 집 담장 밑에만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담장과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풀이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느끼면서 한 포기 한 포기 잘라내었습니다. 크지도 않은 풀이 벽에 바짝 붙어 있어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제거하고 보니 정갈하고 깨끗한 길이 되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게으른 주인을 흉보았을까? 내심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어제 배달온 수필집을 읽고 있노라니 밖에서 아내의 자지러질 듯한 고함이 들렸습니다. 그 날카로운 소프라노 소리는 열어 놓은 현관문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누가 담장 아래 꽃을 다 잘라 놨다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내가 그랬다고 하니 그걸 기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아느냐며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어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풀이지 무슨 꽃이냐고 했더니 보면 모르느냐면서 반지꽃과 민들레꽃이라 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은 풀이란 생각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로 몇 마디 주고받다가 생각해보니 얼핏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아내의 입장이 뒤바뀐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명색이 시인이고 아내는 시 한 편 읽지 않는 생활인입니다. 풀을 꽃으로 보는 사람이 시인이어야 하고 꽃을 풀로 보는 사람이 생활인이어야 합니다. 그쯤에서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더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 몇 번 주고받고 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기분은 좋지 못합니다. 풀로 보느냐, 꽃으로 보느냐의 시각은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도대체 풀 아닌 꽃이 어디 있고 꽃 아닌 풀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풀로 보면 풀이고 꽃으로 보면 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나 지금이나 풀이냐 꽃이냐로 사회적 갈등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지금은 아주 당연하게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7~80년대엔 대부분 화장실이 밖에 있었던 시절, 어느 교회에서 새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문제로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설계를 끝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건축 위원 장로들 가운데 일부는 거룩한 성전에 어떻게 화장실을 교회 안에 짖느냐 반대를 하고, 다른 장로들은 요즘이 어느 땐데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서로 우기다 보니 그렇게 지체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 기도 중에 묘안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반대하는 장로에게 묻기를 장로님, 항문이 몸 안에 있나요? 아니면 밖에 있나요? 물으니 몸 안에 있다고 하자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했는데 몸 안에 항문이 있으니 화장실도 교회 건물 안에 지어도 무방한 것 아니냐 물어 드디어 고집을 꺾고 승낙했다는 교회 건축사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풀이냐 꽃이냐의 다툼이었습니다. 문득 오래전에 있었던 청성산 도롱뇽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청성산터널 공사 때 한 스님의 반대로 공기가 3년이나 늦어졌고 무려 145억 원 정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염려하던 도롱뇽은 잘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스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조선 시대에 있었던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던 당파 싸움도 따지고 보면 풀이냐 꽃이냐의 싸움이었습니다. 1년 복(服)이면 어떻고 3년 복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정치 현상을 바라보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거창한 명분이나 가치관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풀이냐 꽃이냐의 다툼일 뿐입니다. 담 밑의 풀이든 꽃이든 우리 가정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놔둬도 되고 뽑아도 되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는 것도 담 밑의 풀이냐 꽃이냐의 싸움밖에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정의 달, 부부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에도 풀이냐 꽃이냐로 갈등을 빚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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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0
  • 택시운수종사자의 유류비 부담 약정은 무효
    [요지] 택시운수종사자가 유류비를 부담하는 약정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유류비 상당 임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2다307003 판결) [개요] 택시 운행 비용 등을 택시운수종사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을 금지한 구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제12조 제1항이 강행규정인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구「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2020. 6. 9. 법률 제1745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택시발전법’이라 한다) 제12조 제1항(이하 ’이 사건 규정‘이라 한다)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구역의 택시운송사업자는 택시의 구입 및 운행에 드는 비용 중 다음 각 호의 비용을 택시운수종사자에게 부담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면서, 각 호에서 유류비(제2호) 등을 들고 있다. 유류비를 택시운수종사자에게 전가시킨 택시운송사업자에 대하여는 국토교통부장관이 택시운송사업면허의 취소, 일정기간 사업의 정지, 감차 등이 따르는 사업계획 변경을 명할 수 있고(제18조 제1항 제1호),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제23조 제1항). 구 택시발전법은 택시운송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여 택시운수종사자의 복지 증진과 국민의 교통편의 제고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서, 이 사건 규정의 취지는 택시운수종사자가 부당한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열악한 근로 여건에서 초래되는 과속운행, 난폭운전, 승차거부 등을 미연에 방지하여 승객들이 보다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에 있다(헌법재판소 2018. 6. 28. 선고 2016헌마1153 결정 참조). 위와 같은 택시발전법의 제정목적과 이 사건 규정의 도입취지 및 내용, 이 사건 규정을 위반한 행위가 각종 행정제재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 점, 택시운송사업의 공공성과 택시운송사업자에 대한 택시운수종사자(택시운전근로자)의 종속적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택시운송사업자의 운송비용 전가를 금지하는 이 사건 규정은 강행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택시운송사업자와 택시운전근로자 노동조합 사이의 합의로 이 사건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유류비를 택시운전근로자들이 부담하기로 약정하는 것은 무효이다. 나아가 택시운송사업자가 유류비를 부담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노동조합과 사이에 외형상 유류비를 택시운송사업자가 부담하기로 정하되, 실질적으로는 유류비를 택시운전근로자에게 부담시키기 위해 택시운전근로자가 납부할 사납금을 인상하는 합의를 하는 것과 같이 강행규정인 이 사건 규정의 적용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적인 행위 역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원고를 포함한 피고 소속 택시운수종사자들이 초과운송수입금에서 유류비를 부담하기로 하는 이 사건 유류비 부담 약정은 강행규정인 이 사건 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이고, 원고가 이 사건 규정 시행 이후에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피고에게 기준운송수입금을 납입하고 이를 제외한 초과운송수입금을 보유하면서 피고로부터 일정한 고정급을 지급받는 방식인 정액사납금제 형태로 임금을 지급받으면서 무효인 유류비 약정에 따라 유류비를 부담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그 유류비에 상당하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례제공 : 박범진 변호사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상담전화 : 041-668-7999)
    • 오피니언
    • 칼럼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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